태양이 사라지던 날
유르겐 도미안 지음, 홍성광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사라진다면?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사라진다면?

그것이 어느 원인에 기인한 것이든지, 이러한 극한 상황을 소재로 한 재앙 소설은 (혹은 영화는)

수없이 변주되어 왔다.

더 이상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지 의아할 정도로.

 

독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라 할 수 있는 저자가 첫 소설로 이러한 재앙 소설을 택했다는 것이 흥미를 끌었다.

많은 텍스트와 사회 현상을 접했을 저자는 과연 재앙적인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을까?

 

결과적으로 이 책은 재앙 소설이 아니었다.

극한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의 수기를 통해서

온전히 혼자된 자의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심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게 더 맞을 것.

그리고 자신을 싸고 있는 껍데기를 온전히 벗어던진 채 가장 솔직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서

마치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속시원하면서도 아팠다.

 

온 세상에 자신만이 남아 있는 절대적 고독감에 속에 주인공인 로렌츠가 계속하여 떠올리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했었던 여인 마리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가운데

그가 떠올린 '남자'로서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이기심과 나약함, 그리고 받은 사랑은

나를 가슴아프게 했다.

최근 유행했던 남녀탐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듯

남자와 여자의 생활하는 방식은 많이 다를진대,

그것을 서로 이해하거나 공감하기란 너무 힘들어서

원하지 않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아픔을 겪기도 한다.

결국 죽음으로써 그녀를 영원히 상실하고만 로렌츠의 후회섞인 회상은 많은 남자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과연 후회없이 사랑하는 것은 어찌 해야 가능할지..

 

종교라든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거쳐

로렌츠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그것은 그와 같이 고독 속의 세상에 살아남은 또 한명의 사람인 핀.

그에 대한 믿음과 사랑 속에서 동성간의 사랑에 대한 육체적 번민 등과 심리적인 우정과 사랑.. 등의

미묘한 차이에 대하여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거나 인정하기 힘든 로렌츠는 또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핀이 사라짐으로써  마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한번 고독 속에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수기의 형식으로 담담히 적어내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로렌츠의 많은 이야기들은,

일기를 쓰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한다.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될 것이다.

나 자신도 오랫동안 일기를 쓰고 있으나,

아직도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할 때 거르고 있음을 항상 느끼고 있다.

과연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고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고려와 생각을 하는 것은

이런 극한 상황에만 가능할까?

한번 조용한 이 새벽에 명상의 시간을 가질 일이다.

 

끝내 이 책에서는 이 수수께끼와도 같은 기상 변화와 사람들의 사라짐이라는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는다.

수기를 마치고 떠나는 로렌츠의 모습에서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온전히 독자에게 맡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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