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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아직도 통일 후유증을 앓고 있는 독일을 보면서,
우리는 한 핏줄, 한 민족이라고 하지만 누구보다 경계하는 남한과 북한의 모습을 보고
한 탈북자와 대화 속에서 은근히 비치는 남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을 느끼면서
통일이 되면 ‘무척’ 혼란스럽겠다. 생각은 해봤었지만 그 ‘무척’이란 부분이 세세하게
어떤 혼란일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경제적 부담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 책 속에 통일 대한민국은 지옥이었습니다.
주인공인 리강은 북한에서 군인이었고 통일이 된 이후 북한사람들로 이뤄진
대동강이란 이름의 조직에 부장이란 직함으로 조폭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리강을 둘러싼 조직의 배신과 범죄가 뒤섞인 무겁지만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사전조사를 얼마나 오래, 자세히 하셨는지 이 속에 설명되어 있는 북한의 모습은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 이후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불행들... 실업난으로 인한 범죄,
문화 차이로 인한 자살과 탈선, 주민등록이 실패해 대포인간의 탄생 등은
진짜 이런 일이 일어 날수도 있겠구나,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겠다 싶어
조금은 무섭기도 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통일과 북한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강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만
오랜만에 이렇게 흡입력 있는 소설, 힘이 느껴지는 강한 소설, 반가웠습니다.
150~160쪽은 통째로 리뷰에 쓰고 싶을 만큼 속이 시원하면서도 가슴 아프고
‘어떠한 변화도 기대 하지마... 너무 많이 알고 있으려면 힘이 있어야 해,
힘이 없으면 말을 하면 안 되는 거고 왜? 죽으니까...’157p
너무 많이 알아서 힘도 없이 말을 했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요즘에도 있지요.
여기서 죽는다는 건 꼭 목숨을 잃는다는 의미라기 보단
소신을 지키려다 파면당하는 교사들, 노동운동을 하다 자살하는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 더욱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책의 형식과 내면은 근미래 가상 역사와 추리, 느와르와 스릴러, 블랙코미디와 멜로, 신화와 우화 등등이 원래 그런 것처럼 혼혈되어 있다.’ 작가의 말-59p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하기만 조직이지만 무당인 조직원이 있고
그가 쓴 부적을 붙이기도 하는 모순 된 장면이나
사람고기를 먹는 북한 사람이 있다는 루머에 황당해하는 대동강 조직원들의 모습 뒤로
누군가가 사람고기를 썰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 되는 장면은 영화 못지않은 스릴이 느껴집니다.
하나하나 소개하고 싶은 장면들과, 대사들이 이렇게 많은 책도 드물 것 같습니다.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 꼽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