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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 한 사회생물학자가 바라본 여자와 남자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제목의 '남자도 화장을 한다' 를 외모 지상주의로 오해 해서는 곤란하다. 이 말은 사회적 지위나 재력 이외에 인간적인 매력 즉, 외모, 자상함, 성실함, 지성등을 지칭 하는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요즘 어떤 여자가 얼굴만 뻔드르르하고 성격은 더러운 남자랑 같이 살려고 하겠는가. 이 책의 제목은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남자에게서 독립하는 시대가 오면 이제 남자의 사회적 지위나 재력보다는 그 사람의 인간적인 매력을 보고 배우자를 선택할 것이다'라고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이 책은 진화 생물학의 관점에서 남녀의 차이와 평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진화 생물학에서 보는 여성 즉 암컷은 난자라는 귀중한 자원을 가진 쪽으로 남성 즉 수컷을 선택한다. 이는 책임과 권력에서 비롯되는 지극히 수학적인 결과이다. 반대로 수컷이 알을 품는 도요새 같은 경우는 암컷이 외모가 화려하고 수컷이 암컷을 선택한다. 인간의 경우도 자식의 양육에 들어가는 투자가 남성과 여성이 비슷하므로 남자에게도 선택권이 주어진 것이다. 특히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력을 의존함에 따라 여성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를 성적 매력의 주요한 지표로 삼게 되었다. 즉 인간은 동물 중 거의 유일하게 양쪽 성이 모두 보다 매력적인 이성을 차지 하기 위해 동성끼리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성들간의 경쟁이 훨씬 치열하며 이는 일부다처제가 존재했던 과거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흔히 일부다처제를 남성에게 유리한 제도로 생각하는데 이는 틀린 생각이다. 능력있는 소수의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독점하는 것은 다수의 수컷이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암컷으로서는 능력있는 수컷의 유전자에 그 수컷이 가진 막대한 자원까지 이용할 수 있고 쓸데없는 경쟁을 피할 수 있어서 1석3조인 셈이다.(비유가 조악하지만 회사원의 아내보다는 재벌 후계자의 5번째 첩이 여자로서는더 매력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남성이 자식을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일이므로 일부일처제는 남성끼리의 일종의 타협인 셈이다.
어쨌든 남성은 사회적 성공 , 출세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 매달린다. 지금으로선 성형수술이나 화장보다 그것이 좋은 신부감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앞으로 여성의 시대가 오면(이 말을 여성들이 남성들을 전부 쫓아내고 남성의 일을 대신하게 될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책에도 써있듯 여성도 생활과 자식의 양육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시대라는 뜻이다.) 경제적 능력을 가진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남성의 돈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남성의 매력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것이다. 이는 더이상 남성이 원치않는 무한경쟁 사회에 뛰어들어 출세를 위해 싸우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 아니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출세를 원하는 남성도 많겠지만 남성에게도 바깥일은 여성에게 맡겨놓고 가사를 돌보며 아이를 기르고 남는 시간에 자아를 실현하는 선택도 가능하게 됨을 의미한다.(미국이나 기타 다른 선진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흔하다.) 혹은 맞벌이를 통해 남성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자아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있다. 이런 선택의 폭이 확대되는 것은 결국 사회에서 재능을 펴기를 원하는 여성에게나 출세보다는 평온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남성들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물론 출세를 원하는 남성들은 의욕도 재능도 없는 동성 대신 의욕에 넘치고 재능도 있는 이성을 상대해야하니 두배로 힘들어지겠지만 이런 인재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이득이다.)
장황하게 썼지만 이 책에서 이런 정치적인 담론들은 앞쪽과 뒤쪽의 몇페이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동물과 식물을 아우르며 성선택과 그런 선택이 나타나게 된 진화적 배경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생물학적이야기 만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뇌에 차이가 있을까? 과연 남성호르몬이 폭력성을 유발하는 것일까? 등등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이 실려있다.
이 책을 읽고 진화사회학과 성선택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