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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연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그 각각을 지칭하기도 하고, 두 사람을 아울러 지칭하기도 한다.’ 연인의 의미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즉 한쪽이 부재한다면 ‘연인’은 성립할 수 없다. 물론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만 존재한다 해서 ‘연인’은 성립할 수 없다. 현존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는 그 어떤 ‘연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이 작품은 부재 하는 대상을 작품의 제목으로 삼는 반어적 기법을 쓴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나’와 중국인 남자는 연인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보기엔 ‘나’가 가장 사랑하고자 했던 대상은 ‘어머니’에 가깝다. ‘나’는 (모든 유년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어머니는 망나니 같은 ‘큰오빠’만 사랑한다. 그렇다면 ‘큰오빠’는 어머니를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순간 순간의 쾌락일 뿐이다.
“가난이 우리 집의 사면 벽을 허물어뜨려버렸기 때문에 모두들 밖에서 맴돌았다고, 각자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서 떠돌았다고 대답한다. 우리는 방탕아들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과 함께 있는 거예요.”
방탕아처럼 떠돌았던 ‘나’는 중국인 남자와의 ‘성애’로 도피한 것뿐이다. 갈구했던 애정의 좌절. 그 결핍을 즉각적인 성애로만 채우려는 소녀의 기근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인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중국인 남자의 진심은 어떤가? 그는 ‘나’에게 사랑의 표현을 자주하지만, 이것은 공허한 말뿐인 것 같다.
“그의 영웅심, 그것은 바로 나이고, 그의 노예근성,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재산이다.”
그에겐 행동이 말을 뒷받침해줄 실천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노예근성이 그의 실천 의지를 주저앉혔다. 사랑한다면 주저앉아선 안 된다.
사랑의 형식만을 취한다고 하여 두 사람이 연인이 될 순 없다. 그래서 어쩌면 사랑의 내용만이 연인의 진정한 필수 조건처럼 여겨진다. ‘나’와 중국인 남자가 연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단순히 연상 연하의 커플, 다른 인종의 커플과 같은 사랑의 형식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었다. 서로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관계가 아닌데, 어떻게 연인이 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