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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 / 열화당 / 2007년 3월
평점 :
이 책은 '장 주네'가 5년여에 걸쳐 '자코메티' 와 대화하고, 그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작품들을 느끼면서 그에게, 그의 작품들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는 지도다.
계속 읽기가 아까워 멈췄다 읽고 싶은 책이고 모든 문장에 줄을 긋고 싶은 책이며 모름지기 글이란 이런거야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책이고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 표면을 만지는 것만으로 즐거워지는 책이며 완전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온 몸으로 흡수하고 싶은 책이다.
자코메티에게로 가는 지도를 친절하게 그려준 책, 그의 문장들이 강렬한 쾌감을 준다. 책을 읽어야만 느끼는 기쁨, 나를 책으로 인도해 준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경증의 독서의존증을 중증으로 악화되게 만드는 책이다.
아!!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이 짜릿하고도 즐거운 만족
그래 이 맛에 내가 책을 읽는 거였지, 잊었던 독서의 쾌락을 화들짝 기억하게 한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위의 문장과 상통하는 "빛은 상처를 통해 들어온다" 라는 루미의 시를 우연히 봤다.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 온 것들에 대해 '순수한 아름다움'이라 칭송할 수 있을까? 상처가 나를 단련시켰고 만들었다. 빛날 때도 있었고 초라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과거에 빚졌다. 상처만이 아름다움(일반적으로 보기 좋다는 차원을 넘어서는)으로 가는 통로라는 것을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하는 문장이다.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숙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 왕복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다. 이 오고감은 끝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조각들에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그의 지도에서는 조각상들은 시간의 밑바닥, 모든 것의 기원에 자리하여 어떤 동요에도 꿈쩍하지 않는 절대부동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다가서고 물러서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나는 혼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 지금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그려낼 대상들에 가까이 가기 위해 자코메티는 우선 자신의 눈으로, 그 다음은 연필로, 섣부르고 맹목적인 모든 선험적 생각들을 벗겨낸다. 종이 위에서 아무런 꾸밈없이 벗겨진 모습으로 있게 되는 것, 홀로 있을 수 있기에 아름다운 것, 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순수한 지점에 이르러 버리는 것이 자코메티의 작품들이라고 장 주네는 정의한다.
자코메티에게 가는 첫 걸음을 떼었으니 이제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보면서 장 주네의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는 파이널 포트레이트를 보자!
* 파이널 포트레이트 : 자코메티에 관한 영화로 제프리 러쉬가 '자코메티'로 분했고 너무나 아름다운 '아미 해머'가 자코메티의 작가 친구 '제임스 로드'의 분해 그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작품을 완성시키는 과정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