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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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순한 소설이다. 지금까지 읽은 정유정의 소설 중 '7년의 밤'이 최고였었지만 따뜻하고 정감 있는  '진이, 지니'를 읽고 난 지금 이 소설을 첫번째로 꼽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정여울 저자는 '따스하고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뭉클하고, 그윽하고, 애잔해진' 정유정의 변신이 난데 없는 건 아니라고,  '작품' 뿐 아니라 '인간'으로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은 이런 변신이 정유정의 '숨은 매력'임을 격하게 공감할 것이라고 한다. 나도 정여울 작가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인간의 악을 잔인하게 그렸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소설은 인간과 동물의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따뜻하게 그렸다.

이진이와 김민주 그리고 보노보 '지니'에 대한 이야기,

침팬지 연구자이자 사육사인 '이진이'는 아프리카 콩고, 왐바 캠프의 보노보를 본 후 사랑의 대상을 바꾸게 된다. 깊고 예민한 감수성, 높은 지적 능력, 생동감 넘치는 몸짓, 풍부한 표정, 겁많고 수줍은 성격의 보노보와 사랑에 빠져버린 그녀, 그곳을 떠나오면서 잠깐 들른 마을에서 운명의 보노보를 만나지만 외면해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집에서 버림받다시피 하고 노숙인이 되어 떠돌다 정주의 영장류연구센터까지 흘러들어온 김민주, 출입금지 산에서 잠을 청하는데, 한밤 중 끔찍한 차사고 소리를 듣는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려 간 그곳에서 그는 운명의 존재들을 만난다.  

콩고에서 잡혀 온 보노보 '지니'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떤 희생으로 다른 존재가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에 매번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만이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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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19 소설 보다
김수온.백수린.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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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소설보다 봄 -2019"를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나왔다
이 시리즈는 가장 최근의 소설을 만날 수 있기에 새로운 계절편이 나올 때마다 되도록 빨리 사려고 노력한다.

 

이번 봄 편은 세명의 소설가 작품인데 백수린만 알고 김수온과 장희원은 모르는 소설가다. 지금까지 접한 적 없는 작가를 처음 만나는 이런 기회는 꼭 잡아야 한다.

매번 고백하지만 난 우리나라 소설이 좋다. 이 단편집을 기다리면서 읽는 이유는 자유로움과 새로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생경한 감각때문이다.

 

서사가 생명인 장편보다, 단편은 이미지만으로, 읊조림만으로, 어떤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이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도 울림을 줄 수 있다.


백수린 작가의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퇴직한 여성이 체념해왔던 욕망을 갑작스레 맞닥뜨리고 관계의 어긋남을 체험하는 내용이다. 미묘한 감정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백수린은 여전히 좋은 소설가다.  

 

김수온 작가와 장희원 작가는 1994년생, 93년생으로 상실을 그리는데 대조적이다.

 

김수온의 "한폭의 빛"은 상실의 표정을 계속 기록한다고 할까, 지금의 현상을 일으킨 과거의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없이 현재의 햇빛, 쟁반, 호수 등 풍경만으로 상실의 느낌을 온전히 전달한다.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소설이 되는 이상한 소설이다.

 

장희원 작가는 어떤 쪽에는 상실을 다른 쪽에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인 이야기를 말한다. 아들을 방문하기 위해 호주를 방문한 부부가 어떤 상실을 체감하는 이야기인데, 단단하고 설득력이 있다. 소설가 정용준같은 이야기꾼이지만 심각한 이야기를 발랄하게 다룬 좋은 소설가가 탄생한 것 같다..

 

한국소설은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나라도 대답해줘야겠기에 너무나 미미한 노력이지만 작고 작은 것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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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 / 열화당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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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 주네'가 5년여에 걸쳐 '자코메티' 와 대화하고, 그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작품들을 느끼면서 그에게, 그의 작품들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는 지도다.

 

계속 읽기가 아까워 멈췄다 읽고 싶은 책이고 모든 문장에 줄을 긋고 싶은 책이며 모름지기 글이란 이런거야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책이고 완벽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 표면을 만지는 것만으로 즐거워지는 책이며 완전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온 몸으로 흡수하고 싶은 책이다.

 

자코메티에게로 가는 지도를 친절하게 그려준 책, 그의 문장들이 강렬한 쾌감을 준다. 책을 읽어야만 느끼는 기쁨, 나를 책으로 인도해 준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경증의 독서의존증을 중증으로 악화되게 만드는 책이다.

 

아!!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이 짜릿하고도 즐거운 만족

그래 이 맛에 내가 책을 읽는 거였지, 잊었던 독서의 쾌락을 화들짝 기억하게 한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위의 문장과 상통하는 "빛은 상처를 통해 들어온다" 라는 루미의 시를 우연히 봤다.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 온 것들에 대해 '순수한 아름다움'이라 칭송할 수 있을까? 상처가 나를 단련시켰고 만들었다. 빛날 때도 있었고 초라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과거에 빚졌다. 상처만이 아름다움(일반적으로 보기 좋다는 차원을 넘어서는)으로 가는 통로라는 것을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하는 문장이다.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숙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 왕복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다. 이 오고감은 끝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조각들에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그의 지도에서는 조각상들은 시간의 밑바닥, 모든 것의 기원에 자리하여 어떤 동요에도 꿈쩍하지 않는 절대부동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다가서고 물러서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나는 혼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 지금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그려낼 대상들에 가까이 가기 위해 자코메티는 우선 자신의 눈으로, 그 다음은 연필로, 섣부르고 맹목적인 모든 선험적 생각들을 벗겨낸다. 종이 위에서 아무런 꾸밈없이 벗겨진 모습으로 있게 되는 것, 홀로 있을 수 있기에 아름다운 것, 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순수한 지점에 이르러 버리는 것이 자코메티의 작품들이라고 장 주네는 정의한다.

 

자코메티에게 가는 첫 걸음을 떼었으니 이제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보면서 장 주네의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는 파이널 포트레이트를 보자!

 

* 파이널 포트레이트 : 자코메티에 관한 영화로 제프리 러쉬가 '자코메티'로 분했고 너무나 아름다운 '아미 해머'가 자코메티의 작가 친구 '제임스 로드'의 분해 그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작품을 완성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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