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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ㅣ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고전을 지금의 언어로 다시 쓰는 일은 저자에게는 힘겨운 일이지만 일반인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일이 되기도 한다. 고전 평론가로서 자신이 불려지기는 바라는 저자 고미숙은 일반인에게 단편적으로만 알려진 연암 박지원 선생의『열하일기』를 이야기하듯 경쾌하게 복원해 내었다.
총 5장과 보론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에서 인간 박지원의 삶에 대해 조명하고, 2장에서는 1792년에 발생한 문체반정과 그 촉발계기였던『열하일기』의 역사적 상황을 설명한다. '연암체'로 불려질 만큼 독특한 연암의 문체가 당대 지식인 사회에 미친 영향력과 그 의미를 짚어낸다. 3장에서 5장까지는 본격적인『열하일기』의 참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웃음과 역설 그리고 우정이 넘쳐나는 연암의 열하기행을 상세하게 추적한다. 짓궂기까지한 연암의 호기심은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삶의 이면들을 성찰하게 이끌어준다. 보론에서는 조선시대 대유학자 연암과 다산의 삶과 사상을 비교하면서 근세 조선의 지식인의 사유와 성찰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축하 사절단에 동행하여 6개월에 걸친 중국 여행을 담은 단순한 기행문 정도로만 평가한다면 조선시대 최대의 베스트셀러이자 금서(禁書)였던『열하일기』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리라.
『열하일기』는 포복절도할 웃음과 역설의 일화들이 흘러 넘치는 독특한 맛과 멋을 지니고 있다. 낯선 여행에서 몸은 고되고 지치지만 어린 아이처럼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곤경과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연암의 모습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연암은 스스로 조선시대 지식인으로서 주류사회에 속하길 거부하면서 방외인으로서 맘껏 자유를 누리며 나이를 초월한 속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행복한 선비였다.
저자 고미숙은 고전은 지루하고 답답하다는 편견을 말끔히 씻어줄 수 있을 만큼『열하일기』를 우리시대에 알맞은 언어로 적절한 깊이와 폭을 담아 유쾌하게 복원하였다. 가끔씩 등장하는 들뢰즈의 용어들이 일반독자들에게 이해의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열하일기』의 재미를 맘껏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열하일기』를 직접 읽고 싶은 독자라면 최근 출간된 완역국역본『열하일기(전 3권)』(보리, 2004)를 읽어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