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선 하루에 대략 2만 명의 사람이 절대적 빈곤으로 죽어간다. 2만 명이면 내가 살던 고향에선 인구의 1/10 수준이고, 제법 규모가 있는 대학 한 개에 다니는 사람 수이다. 말이 좋아 2만 명이지 규모를 추산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빈곤으로 죽어가고 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지구 한편에선 기아로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또 다른 한편에선 비만으로 인해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 문제는 생산이 아닌 분배다. 각 나라가 겪는 빈곤의 원인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서 한, 두 가지 매뉴얼을 통해 빈곤의 원인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제프리 삭스가 제시하는 체크 포인트를 통해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 임상경제학의 관점에서 빈곤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 문제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고 생명체처럼 모든 관계가 역학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빈곤을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들은 경제 문제를 기계적인 것으로 치부하였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임상경제학은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경제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경제학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학문이라고 쓰여있지만 사고의 전환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나라의 지리적 위치가 빈곤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은 책을 통해 배웠다. 정부의 무능이나 부패, 잘못된 풍습으로 인한 남녀차별, 적절한 교육의 부재로 인한 가난의 대물림도 빈곤의 대표적 원인 중 하나다. 이러한 빈곤 탈출을 위해 기본적인 공공 인프라 구축과 교육이 필요하다. 가난한 나라는 스스로 이런 정책을 펼 능력이 없으므로 다른 나라의 원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원조는 help의 개념에서 이해되면 안 된다. 지금껏 부국은 빈국을 착취하는 형식으로 전체의 부를 증가시켰다. 잘못 지속되어온 부의 편중을 해결한다는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잘 사는 나라에서 못 사는 나라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론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안타까웠던 사실은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해방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도움을 주기는커녕 빈곤의 상태를 지속시키는 게 자국에 유리하면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부패한 정권을 유지시킨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기자 2명의 목숨은 매일 죽어가는 2만 명의 삶보다 우월한 것인가. 그 기자들은 클린턴의 방북으로 생명을 건졌지만 빈국의 사람들은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아직도 이 세상에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문제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의 문제는 관심으로 해결할 수 있다. 빈곤의 종말에서 내가 체내화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국제구호나 경제학에 식견이 없는 나로선 그냥 그렇구나- 수준의 책 읽기였다. 두꺼운 책 두께에 압도당하기도 했고 처음부터 정독하려니 쉽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부분은 정독하고 그렇지 않은 사례들은 빨리 넘겼다. 다 읽고 <그라민 은행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빈곤의 종말이 좀 더 거시적 측면에서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이었다면 그라민-은 미시적 측면의 해결책 이었다. 쨌든 두 책에서 내리는 결론은 같다. "물고기를 잡아 주는 방법으로는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그들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낚시를 할 '최소한의 도구'를 지급해주자." 지구가 착한 쪽으로 발전하고 있느냐?란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노력들로 적어도 굶어 죽거나 치료약이 개발된 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