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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쓰려고 맘먹은 리뷰는 되도록이면 바로 쓰는 게 여러 모로 좋은데 요즘은 그러지 못한다. 책 읽을 당시 느끼던 생생한 감정들은 휘발성으로 이루어져있는 건지 모두 날아가 버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끼적여놨던 메모들만 한 줄씩 남아있다. 그 메모를 보고 감정을 되살려서 독후감을 쓰고 있다. 내가 내 감정을 돌이켜 추측(?)하는 상황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보통 고전은 지루하고 내용을 알 수 없거나, 환상적으로 재밌거나 둘 중 하나로 수렴하는데 <<달과 6펜스>>는 후자였다. 재밌는 게 하늘을 찔러서 시도 때도 없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버스 안에서 책을 읽을 때 시달리던 멀미와 완전히 작별한 게 달과 6펜스부터였다. 그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고 예전에 읽었을 때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내용 파악에 중점을 두고 텍스트를 놓치는 부분 없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두 번째 읽을 때는 꼼꼼히 읽었다고 생각한 부분에서 구멍이 발견되면 그 장면을 집중적으로 읽는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 전혀 다른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처음 읽었던 게 몇 년 전이긴 하지만 비문학이 아닌 문학에서 이정도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번에 달과 6펜스를 읽을 때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책을 읽었다. 1)<<달과 6펜스>>라는 제목에 충실하며 2)인물들이 가지는 특성에 집중하며. 또 다른 접근 방법들이 있겠지만 소설의 겉면에 드러나는 알아차리기 쉬운 것들을 중심으로 읽었다.
1)은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책을 읽을 때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나 문화를 모르면 그 소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진심으로 정답이었다. 처음 읽을 때 달의 의미(≒lunatic)는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으므로 차치하고, 6펜스는 막연하게 '돈'이겠구나- 했는데 거기서 생각을 심화시켜 '물질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스트릭랜드가 첫 번째 부인과 인연을 끊는 순간이 속세 혹은 물질세계와 인연을 끊는 순간인 건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는데 제목과는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작품 해설을 보고 나서야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 지향하는 삶은 달과 같은 삶이다. 현실이 6펜스에 얽혀있을지라도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달에 다가가고 싶어 한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스트릭랜드의 차이는 불확실한 이상을 위해 현실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확실한 현실에 남아있을 것인가에서 나타난다. 현실에서도 이상을 위해 6펜스를 버리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이상적 삶이 어려운 것은 현실의 모든 문제가 항상 <먹고사니즘>과 직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먹고사니즘을 떠나서 살 수는 없기에 이상을 좇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동시에 갖는다. 모든 이상적 삶이 6펜스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극소수의 사람들은 달과 6펜스를 동시에 갖는 천운을 누린다. 하지만 퍼센트로 따지면 1%도 안 되는 삶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예외로 두자. 스트릭랜드도 달의 위해 6펜스를 버리지 않는가. 사실 그는 특수한 상황인 것이 6펜스는 갑자기 무가치해져버렸기 때문에 버렸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구석이 있다. 수십 년간 중요하다고 생각해오던 것이 어느 날 먼지 같은 것이 되었다면 그건 그냥 상관없어진 것뿐이지, 먼지를 버리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날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이나 계시를 받은 종교인이 비슷한 경우가 될 수 있겠다.
달과 6펜스의 인물들은 흥미로운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스트릭랜드가 가장 알 수 없고 신비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 외의 인물들은 스트로브를 제외하고는 적당히 현실적이고 적당히 소설적요소를 가진 것으로 나온다. 스트릭랜드 자체는 입체적이고 기이한 면을 보이고 있지만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가는 '스트릭랜드는 예술에 미쳤군'으로 집약된다. 그가 하는 기행들이나 여타의 행동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하는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집중했던 건 스트로브와 스트릭랜드 였는데 한 사람에게 결여된 것이 다른 한 사람에게 보였다. 그래서 이 둘은 원래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스트릭랜드에게 없는 인간다움이 스트로브에게 넘쳐나고 있었고, 스트로브에게 결여된 관능적이고 야수같은 면이 스트릭랜드에게는 야생 그 자체로 느껴졌다. 분명 서로를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책을 다 읽고 나서 접었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를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처음 알아본 것도 헌신한 사람도 결국 용서를 하는 것도 스트로브다. 이 정도면 성자 수준의 인격인데 스트릭랜드의 괴팍함 매혹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도구적 장치로 사용된 것 같았다. 흠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
소설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중략) 그것은 사회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p.260 이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먹고사니즘이 중요한 사람은 현실에서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고 현실을 떠나 이상을 좇는 사람은 그렇게 살면 된다. 소설을 읽으며 마음 한편에서 통쾌한 기분이 들었던 장면은 내가 죽어도 떠나지 못할 세상을 주인공은 홀가분하게 떠나는 장면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붙여주기만 하면 떠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