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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와 연년으로 출판되었다. 김훈씨의 글은 소설보다 산문집이 훨씬 더 끌려서, 사는 책들도 산문집 밖에 없다. 의외로 <<칼의 노래>>는 도서관에서 빌려본 후 사지 않았다.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김훈빠를 자청하는 사람 중에 칼의 노래를 최고로 치지 않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김훈이 쓴 모든 글들 중에 산문이 최고다. 소설은 김훈스러움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저번 고전 모임 때 김훈씨 이야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김훈스럽다'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김훈스러움'이 싫은 사람들로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다. 김훈의 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싶어서 좀 놀랐다. 김훈씨의 보수적 가치관과 내 가치관은 서로 상이하지만 글은 누구에게나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튼 나는 그런 '김훈스러움'을 사랑한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제목부터 끌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든 좋아했던 일이든 그것이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그 일은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일이 주는 스트레스의 크기는 그것이 취미일 때는 티끌만 하다가 강제성을 띠고 승패 혹은 실적과 연관되는 순간부터 태산만해진다. 아주 일부의 사람만이 개인의 적성과 밥벌이가 일치해서 직업이 취미이자 곧 밥벌이가 되는 행운을 거머쥔다. 지금 다니는 학교를 그만두겠노라고 처음 말했을 때 나를 말리던 사람은 광고 회사에 다니다 그만두고 학교에 온 분이었다. 그 분은 광고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신방을 전공해서 바로 광고 회사에 취직했다. 처음 2년간은 정말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그 분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는 매일 해야 하는 야근 탓도 있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느끼고 나서였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봐야 후회가 안 남겠지만, 그래도 정말 말리고 싶다'는 게 그 분 말씀의 요지였다. 밥벌이는 밥벌이대로, 하고 싶은 일은 취미 생활로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도 말했다. 생각하는 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경험해온 것도 다르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은 말씀대로 받아들였다. 작년 같았으면 그건 아니죠-로부터 시작해서 이상에 다다를 순 없어도 가까이 가려고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 같은 헛소리를 열심히 내뱉었을 텐데..
김훈이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은 이런 게 아니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고 별 도리도 없다. 죽는 날까지 입에 밥을 채워 넣기 위해 무조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떠들어댄 것보다 좀 더 근원적인 밥벌이의 지겨움이다. 책을 좀 더 들여다보면 구성이 너는 어느 쪽-과 똑같다. 그래서 그런지 너는 어느 쪽- 2권 같기도 했다. 시의성 있는 이야기들 두 파트에, 말 그대로 산문이 두 파트이다. 이번에도 시의성 있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특이하게도 월드컵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는데 책을 집필하던 당시가 2002월드컵이 열리던 때라 그런 것 같다.
산문 중 좋았던 글은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이었다. 아직 자가 운전을 하지 않지만 조금만 먼 거리를 갈 때마다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내게 제대로 한 방 먹인 글이다. 차나 오토바이를 타며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런데 김훈씨의 눈에는 그 모든 사람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도로로 나오는 사람들로 보인다. 사람들은 '쾅' 한번이면 생사가 뒤바뀌는 것을 알고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책을 보던 시기에 집에 내려갈 일이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고속버스를 타는데다가 책을 읽고 나니 시속 100km로 달리는 쇳덩어리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오며 가며 읽으려고 책을 3권이나 챙겼는데 한 장도 넘기지 못했다.
김훈의 글을 보면 '이건 누가 봐도 김훈의 글이다' 싶은 게 있다. 아직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핸드폰을 쓰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김훈의 아날로그적 삶과 글쓰기가 부럽다. 펜과 종이 앞에서 벌벌 떠는 나와 달리 김훈의 글쓰기는 지우개를 동반하고 거침이 없다. 글쓰기 수업 때 컴퓨터 글쓰기는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컴퓨터로 옮기고 글을 조각내서 잘 이어붙이면 되니까 글이 쉽게 써진다고 했다. 펜과 종이의 글쓰기는 그럴 수가 없다. 안에서 다 정돈하고 완성된 이야기를 바깥으로 끌어내야 한다. 현시대 작가 중에 원고지를 고집하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김훈의 글이 대단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