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이 남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을 읽기 시작한 엊그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음이 울렁거린다. 보통의 책을 읽듯이 밑줄 칠 펜과 표시해 둘 스티커를 준비하고,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처음 몇 장까지는 밑줄도 치고 스티커도 붙이고 그랬다. 어느 지점이 지나자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몇 번 정도는 집 밖에서 책을 보다 울 뻔 한 적이 있었다.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울컥할 때면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게 다였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출퇴근길에 책을 보다 갑자기 눈물 흘리는 사람을 목격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게 되지 않았다. 버스, 지하철, 학교, 집에 걸어오는 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 눈물이 났다. 집에 도착해서는 통곡을 했다. 책은 아직 1/3도 읽지 않은 지점이었다.
엄마는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존재였다. 고등학교 때 엄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선 항상 눈물이 났다. 나보다 훨씬 어렸던 동생은 내가 울면 따라 울곤 했다. 택시 안에서 엄마를 두고 했던 다짐들은 형철이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엄마를 위해 뭐든 해야 겠다 눈이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를 생각해도 눈물이 나지 않기 시작한 건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혼자 사는 엄마 집에 자주 왕래하게 되고 거의 매일 전화를 하며 차츰 그런 감정들-나도 모를 가슴 아픔-이 사라졌다. 여전히 엄마를 위해 효도 해야겠다- 생각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자주 만나게 된 만큼 막말도 하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일들도 여럿 있었다. 책을 보며 자꾸 엄마가 겹쳐졌다. 어릴 적 엄마를 만난 후 택시 타고 집에 갈 때의 마음,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그 때의 저림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학생 시절 상처 많았던 나와 지금의 나는 서로를 어느 정도나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를 부탁해>>는 애초에 한 권은 내가 읽고 다른 한권은 엄마를 드리려고 두 권을 샀었다. 엄마는 이 책을 읽으며 '엄마의 엄마'를 떠올릴 것이다. 엄마의 엄마는 박소녀 아주머니와 더 닮아있었다. 80 평생 쓰러지는 날까지 일만 하셨던 엄마의 엄마,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 시절 5남매를 키우려고 악착같았던 할머니는 돌아가시던 순간에는 어린 아이가 되어있었다. 엄마는 가끔씩 할머니를 떠올리며 참 매정한 분이라고 말했다. 엄마를 고등학교에 보내준 건 막내 삼촌이었고 할머니는 여자가 그만하면 다 배웠지 뭘 고등학교까지 가려고 하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공부와 관련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해보라고 했다. 학교를 자퇴하겠노라 말했을 때 니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려무나,라고 했고 옮긴 학교에서 또 한 번 자퇴하겠노라 말했을 때도 그래라-라고 하셨다. 뭘 하든 잘 할 거라 믿는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초등학교 때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딸은 엄마의 삶을 닮아간다-'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 때는 아직 어려서 딸이 엄마를 닮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할머니의 삶을 30대의 엄마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라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젊었을 때 고생 안 하면 나이 들어서 엄마처럼 고생하잖아-'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책의 '너'도 말했지만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다. 엄마 인생이 뭐가 어때서-
집에 갈 때마다 엄마는 핸드폰에 내 사진을 찍어두곤 하셨다. 차려입고 가거나 머리 모양이라도 바꾸면 꼭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하셨다. 철철 마다 새로 찍은 나와 동생의 증명사진을 챙겨가곤 하셨다.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엄마 사진이 몇 장인지 궁금해졌다. 엄마의 20대 증명사진 한 장과 최근에 찍은 증명사진 한 장, 9년 전쯤 동생과 셋이 찍은 사진 2장, 내 핸드폰에 찍혀있는 막 찍은 사진이 3장 정도 있었다. 제대로 된 엄마 사진은 최근-이래봤자 5년 전 사진인데-에 찍은 증명사진뿐이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 사진 한 장 제대로 없는 지헌이네 가족들과 나는 다를 게 없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주문했다. 다음에 엄마 집에 갈 때는 사진 많이 찍어드려야지-
소설에 등장하는 1인칭 화자는 박소녀씨 하나뿐이다. 너, 그, 당신, 2인칭과 3인칭 화자들은 시점은 1인칭이되 2,3인칭으로 나타났다. 엄마는 한 번도 1인칭인 적이 없었다가, 없어지고 나서야 1인칭이 되었다. 엄마는 날 때부터 엄마였다가- 없어지고 인간 박소녀가 되었다. 나는 늦지 않아 다행이다- 엄마는 엄마가 아닌 한 주체적 인간임을 지금에라도 깨달아 다행이다.
자고 일어나니 눈이 부어있었다. 눈이 부을 정도로 펑펑 울어본 게 몇 년 만이지 모르겠다. 정신이 혼미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책을 읽는 내내 저기압이었다. 이 정도로 여운이 오래갈지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내 이야기였다. 소설에 이 정도로 감정 이입이 되는 것도, 그래서 끝난 후에도 정신 차리지 못 할 정도로 허우적대고 있는 것도 모두 신경숙씨의 힘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의 힘은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100% 멀미가 오곤 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번도 멀미가 오지 않았다-'로 발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