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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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읽을 책을 고를 때 신중히 생각해서 고르기보다, 준비하고 나가기 직전에 조급한 마음으로 책장 앞에 서서 눈에 띄는 책을 고른다. 들고 다닐 수 없는 두꺼운 책들은 당연히 패스, 책 두께도 적당하고 제목이 눈에 띄면 그 책이 '오늘의 읽을 책'으로 선정 된다. B급 좌파도 '그냥' 그 날 눈에 띄어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추천해 줬던 친구가 내용이 쉽고 읽기 편하다고 미리 언급해준 것도 선택에 영향을 줬겠지. 책 두께가 얇은 감이 아닌데 비해 안에 활자 수가 턱없이 적었다. 매 회 들어있는 삽화가 차지하는 공간까지 따지면 순수한 활자 수가 적었다. 내용도 쉬이 읽혀서 정말 빠르게 읽었다. 김규항씨가 씨네 21에 썼던 칼럼을 모은 칼럼집. 얼마 전에 읽은 시칠리아의 암소가 떠올랐다. 마침 시기도 비슷했다.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B급 좌파가 훨씬 대중적이었다. 시칠리아 보다는 B급이 내게 더 잘 맞았다. 한줌의 비속어들과 전문적이지만 비전문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혹시 내가 A급 보다는 B급을 좋아해서 그런가? 그래서 학점도 A는 없고 B들만.........


 모두 다른 주제의 칼럼 모음집을 읽고 그 책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그나마 책이 쉽게 쓰인 덕분에 책 전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몇 가지 주제로 묶어보려는 시도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주제로 묶은 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며 필자의 견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계급


우리나라에는 헌법으로 보장된 평등이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과연 그럴까? 우리는 정말 어떠한 계급적 차별이나 불평등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걸까? 홍세화씨가 말하는 '사회귀족'은 존재한다. 귀족들은 그들만의 성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안간힘 중에 하나가 '교육'이다. 교육은 학벌사회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다. 그들은 남과 다른 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 SKY에 들어가려 애쓰고, 현실도 부모의 재산 차이가 학벌을 결정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는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학벌 사회와 연계한 대학 입시는 계급 결정시험이 되버렸다. 0.1%의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는 '나도 혹은 내 자식은 저런 성공 신화를 쓸 수 있겠지'라는 헛된 희망을 심어준다. 그러한 희망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입시체제를 유지시키는 힘이다. 이런 성공 신화를 심어준 것은 과연 누구인가? 또 다른 층위의 계급이야기도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서로 연대하지 않는다. 1%의 사용자와 대략 30%의 자영업자를 제외한 69%의 사람들이 모두 '노동자'인데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라 불리는 걸 거부한다. 사용자는 철저히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걸 막는다.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않는 정규직 노동자의 이면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철저히 차별, 분리시키는 사용자들이 있다. 파업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매번 곱지만은 않은 것도 우리 스스로 노동자라는 자각이 부족해서인 측면도 있다. 책에는 계급과 민족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민족적 파시즘은 계급을 가려 연대를 방해한다. '우리는 모두 한민족이니 그 안의 계급이 무슨 소용이겠어?'라는 말에 우리는 언제나 속는다. 책에 나온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시위는 민족적 파시즘의 전형이다. 우리가 당시에 스크린 쿼터를 보호해야 했던 이유-지금은 어느 정도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었지만-는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찾아야 될 형질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 거리에 나왔던 영화인들은 평상시에도 민족적 연대를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당시나 지금이나 최악인 영화판 스탭들의 처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히려 계급의식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태반인 것으로 아는데-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겨나는 것은 모두 민족적인 것이고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파시즘을 부른다.




진보 지식인


나는 진보 '지식인'은 아니다. B급 좌파도 아니다. 급수를 따지자면 B급 좌파 지식인 지망생 쯤 되려나.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많이 고민하는 요즘이다. 그러다 마음에 박힌 말이 '이념의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이다. 조지 레이코프가 말했듯이 진보주의자라 자칭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념은 진보적이되 생활은 보수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당장 나만해도 그렇다. 반연령주의를 외치며 살지만 그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적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나도 모르게 '예의'를 생각하곤 한다. 그런 상황을 발견하면 꽤나 씁쓸하다. 이 세상에서 좌파로 살기 어려운 이유가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최소한의 내 양심을 지키는 일조차 버겁다. 1월 초 나는 정말 오래간만에 사경을 헤맬 정도로 아팠다. 혼자 사는 까닭에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1월1일에 근처에 문을 연 병원이 없어 병이 더 커졌다. 꼬박 2박3일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아프면서 정말 '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프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와 아무 상관없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내'가 우선이고 나머지는 그 차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었다. 내가 공부했던 생각했던 것들 중에는-필자는 이걸 '지성'이라 말했다- 죽음을 포함한 모든 절박함이 들어있었다. 내가 편안하고 먹고 살만한 시절에는 지성이 사고의 축이 되다가 절박해지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공부해온 것일까. 앞으로 할 공부들은 이런 모순들을 없애주는 것들이길.




사회


나는 전라도 출신 사람이다. 어디에 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피하기 위해 가급적 현 거주지인 서울을 대지만, 그래도 거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라도에 살았다. 고향 친구들이나 어른들 대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하고-지지하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그게 실제로 투표에 반영되는 것도 보아왔다. 대학도 잠시 동안이었지만 5.18 대학을 다녔다. 그런 나는 29년 전 광주를 잊어 간다. 강풀의 만화 26년과 영화 화려한 휴가가 아니었다면 잊어간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살 뻔 했다. -26년이 꼭 영화화되길 바랐는데 무산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아쉽다.- 29년 전 광주엔 내 아버지도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군인으로 광주에 있었는데, 직접 투입된 건 아니었고 비행장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화려한 휴가를 보며 참 많이 우셨다고도 했다. 그런 우리는 5월 18일을 잊어 간다. 매 년 5월이면 나오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모두 그날의 공범들이다. 대략 학살범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고 학살 공범을 대통령에 올렸으며 심지어 지금 그 사실을 잊어가기까지 한다. 매번 이상한 쪽으로 관용을 베푸는 '우리'가 있는데 지금의 대통령이라고 무서울 게 무엇일까.


기타


이 책은 헌 책으로 구입했는데 상현이라는 분이 나나라는 분에게 선물하는 책이었다. 한 페이지 빼곡히 편지가 쓰여 있었는데, 무척이나 인상 깊은 구절이 보여 옮긴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단지 '우연'이지만, 그러한 우리가 앞으로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은 그 우연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그 무엇이라 생각해. 그래서 나나와 더욱 많은 것 경험하고 더욱 많은 것 느끼고도 싶다. 두학번 위의 선배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나나로부터 많은 것 배우고도 싶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는 게 있다면 가르쳐 주고도 싶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부디 서로가 더욱 솔직하게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그리하여 서로의 삶이 더욱 행복해 질 수 있기를."
03년 3월 9일 상현 선배가-

읽고 나서 마음이 짜르르했다. 이런 게 헌 책의 묘미 중 하나겠지. 올 한 해 내가 있는 동아리나 학과에 이 구절을 적어서 책을 선물할 수 있는 후배가 들어오기를, 들어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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