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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 한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게 만든 공지영씨는 정말 대단하다. 처음엔 어머니에게 책 선물을 드리려고 샀다. 내가 먼저 깨끗하게 읽고 포장해서 드리려고 했는데 계속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읽어서 책이 지저분해졌다. 어머니에겐 새로 책을 사서 드려야지-. 책을 읽을 땐 책의 겉면과 책날개를 먼저 읽는다. 책 뒷면에는 저명한 인사들의 서평이 간략하게 나와 있는 경우도 있고 신문기자들의 평이 소개되어있는 때도 있다. 어떨 땐 아무것도 없는 경우도 있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에는 책 내용이 몇 줄 적혀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구절을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 집이었다면 엉엉 울었겠지. 지하철에서 울 수는 없었다. 지하철 밖으로 고개를 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 문단을 읽었을 뿐인데 마음이 요동쳤다. 어릴 적 운동회의 엄마도 위녕을 부르는 공지영씨처럼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그때의 엄마도 지금의 엄마도 언제나 나를 응원하고 있다. 요즘엔 자주 이 사실을 까먹는다. 그래,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가 인생길에서 후진을 하고 있어도 응원했다. "그때 엄마가 너를 밀어주길 참 잘했지." 가끔 엄마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4년 동안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나이가 들며 점차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기억력이 감퇴하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일을 해도 자꾸자꾸 까먹으니까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이고, 그래서 일 년이 한 달처럼 지나가고 나중에는 일 년이 일주일처럼 지나가는 건 아닐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반복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해보는 일은 모두 처음해보는 일 신기한 일투성이였는데 20대 중반이 된 내 나이만 되어도 새로운 일들은 손에 꼽는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니 기억할 만 한 것도 특별한 것도 없다. 재수 생활을 할 때의 시간흐름과 작년 한 해를 따지면 재수학원에서의 1년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작년 한 해는 정말 길었다. 학교도 다니고 봉사활동도하고 여행도 하고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했다. 하루는 짧았지만 한 달은 길게 느껴졌다. "삶을 길게 산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은 시간의 잔인함에 내맡겨진 일이 아니라는 사실" 내 하루는 언제나 길기를 소망한다. 매순간을 특별하게 살아가는 것은-살아지는 것이 아닌-온전히 나의 몫이다.
언젠가부터 머리가 굳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나마 20대는 생각이 유연하고 30대부터는 사고가 경직돼서 바꿀 수가 없다는 말이 와 닿았다. 옳다고 믿는 것들, 당연하다고 의심치 않는 것들을 두고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조차 사라졌다. 나이가 들며 질문이 사라지는 것과 머리가 굳어가는 것 사이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되려나. 어릴 적엔 세상이 부조리했다-부조리해 보였다-. 항상 반항했고 '대학 같은 건 개나줘'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참으로 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지금은, 멀쩡히 대학에 다니며 착실히 공부할 계획을 세우며 어떻게 하면 불투명한 미래를 밝고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하며 산다. 살고 있는 세상의 체계를 습득해 만든 아비투스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는 시류에 편승했다고 인정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을테니까- 같은 자기 위안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한다. 머리가 굳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다. 여전히 연령주의가 싫고, 권위주의와 마초를 배척하고, 생활의 진보화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이념의 진보화, 생활의 보수화가 정착되어 가는 게 눈에 보인다. 이걸 막으려면 끊임없이 질문해야한다. 질문은 굳어가는 머리에 윤활유가 될 것이다.
친한 친구들 몇 명과는 격의 없이 대화한다. 이 '격의 없음'은 곧 비속어와 욕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인데, 비속어는 친함의 척도라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었다. 친하지 않으면 욕 할 수 없으니까 오히려 욕하는 행동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을 읽고 나서 심한 부끄러움과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부끄러움은 지금까지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고 안도감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아 다행이라는 마음에서 나왔다. 내뱉은 욕들과 말들은 그대로 허공에 흩뿌려지는 게 아니었다. 허공을 떠돌다가 어딘가에 가라앉게 되는데 그게 우리가 먹을 농작물이라면 욕이 뭍은 작물이 몸으로 그대로 들어오게 된다. 끔찍했다. 말은 함부로 내뱉을 게 아니었다. 생각하다보니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똑같은 증류수를 몇 컵 떠다놓고 한 개의 컵에는 사랑해, 좋아해 같은 말들과 아름다운 음악들을 틀어주고 다른 컵에는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똑같은 행동을 며칠 정도 하고 나서 물 결정을 살펴보니. 좋은 말과 사랑을 준 물은 물의 결정이 정확히 육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반면에 욕을 했던 컵의 물은 결정이 깨지거나 알 수 없는 형태로 흩어져 있었다. 또 다른 일화로는 어떤 원시 부족에서 나무를 베어다 쓰는데 돌도끼로 벨 수 없는 큰 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나무에 대고 온갖 험한 말들과 고함 욕을 한다. 그러면 나무가 금방 죽어서 쉽게 벨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은 그냥 말이 아니라 엄청난 힘을 가진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그 뒤로는 욕을 자제하려고 애쓴다. 아직은 가끔씩 튀어나오지만 좀더 자제하다보면 언젠간 내 입에서 욕 나올 일은 사라지겠지.
"네 자신에게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네 자신뿐이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이 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아무리 상처 입히려 애써도 내가 상처 받지 않으면 그 뿐이고, 의도치 않은 다른 이의 말에 상처를 만드는 것은 내 자신이다. 결국 상처 받는 건 나에게 달린 문제다. 언젠가 친구와 노는 동안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상처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안의 자격지심이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려는 순간 이 구절을 떠올렸다. 친구의 의도를 유치함으로 간주하고 그 안에서 순진성을 발견하려 노력했다. 그러자, 답답한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걸 느꼈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었다.
무작정 리뷰를 쓰다 보니 글의 흐름이 끊어져 있는 게 보인다. 이런 옴니버스 식 책은 어떤 걸 주제로 잡고 어떻게 감상문을 써야할 지 아직 모르겠다. 한 가지 주제로 굳이 엮기보다 내가 원하는 주제를 뽑아 간략하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박힌 구절 "인생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것이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책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