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홍세화, 홍세화, 홍세화 선생님. 강연이 끝난 뒤 어느 술자리에서 선생님 자신을 '독거노인'이라 표현해 함께 있던 학생들을 웃겼던, 가슴 찡하게 만들었던 홍세화 선생님. 혹자는 나이가 40살이나 많은 선생님께 세화형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나는 감히 선생님을 형이라 부르지는 못했다. 그런 선생님의 책이기에 나의 리뷰는 어쩌면 제대로 된 리뷰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작가의 20여년의 망명생활 그 자체다. 고달픔과 방황하는 마음들,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이방인이 되어야했던 괴로움.

뒤통수로 보는 풍경, 앞통수로 보는 풍경

이 책이 나온 건 1995년, 당시나 지금이나 clicker들은 존재했었나보다. being보다 having been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이 순간이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생각하기보다,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기를 원한다. 여행을 하고나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진 찍다가 놓치는 수많은 것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책에서 언급하는 뒤통수로 보는 풍경은, 모든 아름다운 광경을 사진의 배경화면으로 만들어 버리는 대부분 여행자들의 놀라운 재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책에서는 '증명사진'이라 칭하고 있는데,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사진을 증명사진이라 칭한듯 했다. 나 또한 언젠가는 클릭커였다.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즐기기 시작한 후로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나를 찍어줄 사람도, 내가 찍어줄 사람도 없는 그곳에선, 온전히 나와 나를 둘러싼 공간밖에 없었다. 앞통수로 풍경을 보기시작한 때도 이맘 때 쯤 이었을 것이다. “여행의 목적이란 다른 게 아니라 환상을 없애는 것”(p.12)은 비단 여행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치에 적용 되는 말 같았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환상이고 허상이었다. 알 게 되는 순간이 환상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


이 책에선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사회와 프랑스 사회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1970년대 당시의 프랑스의 데모현장을 보고 작가가 흘린 눈물이었다. 데모에서 작가는 아버지인듯한 이의 무동을 타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데, 한국의 데모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상황이었다. 그 뒤로 30년이 지난 2000년대 한국의 시위는 촛불문화제로 불리는데 70년대 프랑스의 데모와 그대로 닮아 있다. 작년 한 해 시위에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위였다. 현장에서 함께 뛰었던 작가는 많은 격세지감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똘레랑스

우리나라에 정이 있다면, 프랑스엔 똘레랑스가 있다고 했다.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결국은 똘레랑스가 아닐까 싶다.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에서 중요한 것도 결국은 똘레랑스 였고,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도 똘레랑스가 아닐까? 한동안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같이 교회에 다니던 팀 사람 중에 두 명이 다른 교회로 옮겼을 때 보였던 교회의 반응 탓이었다. 물론 3년이란 시간을 가족처럼 동고동락한 사람들이 순식간에 다른 교회로 옮기겠다고 했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배신감일 것이다. 나 또한 처음엔 당혹스러웠고 난감했으니까. 그렇지만 그 뒤에 나타난 그들의 반응은 정말 무서웠다. 저주의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뒷담화가 난무했고 결국 그 둘의 이름은 금기어가 되었다. 나는 곧 교회를 그만두었다. 그 당시 교회 사람들에겐 똘레랑스가 부족했었다.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한다는 건 종교에선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신은 절대자인데 다름을 인정하는 건 신의 절대성이 흔들리는 일일 테니까.

책을 읽는 동안 내게 똘레랑스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남과 나의 차이를 얼마나 인정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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