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일종의 편집증적인 성격과 문화적 편식의 취향 때문에 나의 독서의 범주는 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범주를 넘지 못한다.

나의 취향이라는게 일단 좋아하는 작가(사실 배우나 감독 혹은 화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긴 하다.)가 한 번 생긴다면, 그의 전작에서부터 신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시리즈물들을 섭렵한다는건데...이건 모든지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나의 성격과도 맞물려 있었다.

 그런데 새해에는 바뀌기로 했다.

이젠 나이도 한 살 더 먹었으니 좀 더 다양한 장르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알라딘을 기웃거리는데 우연히 눈에 띄는 제목이었다.

 "호어스트 에버스?

처음드는 이름인데...독일 작가인가부지?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이 인간도 나만큼이나 게으른 인간이 틀림없어.

그래도 세상이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라는건 알 정도로 무대뽀는 아닌거 같고, 제목을 자세히 보면 오히려 체념과 냉소의 느낌마저 드는걸."

 "대체로 무해함" 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나는 이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읽는데...나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솔직히 때로는 허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터지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큰 소리로 웃어본 적이 얼마만이었던지...정말 놀라웠다.

 작가의 이름과 똑같은 주인공 호어스트 에버스.

 그가 할 일을 쌓아두고도 그 일을 하는 대신 세시간째 일의 목록표만 보며 한숨만 쉬고 앉아서 귀차니즘의 절정을 보여줄때는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인정하기 챙피할 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무기력하고 게으른 인간이다.)... 살기 위해 그 게으름에서 탈피해야 하는 순간에 보여주는 그의 재기발랄함에는 무릎을 끓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먹은 밥그릇 수만큼 잔머리도 그가 한 수 더 높은거다.

호어스트는 설거지가 쌓여있는 꼬라지를 보다 못해서 설거지 밑에 통장 계좌번호라던가 보안카드 암호 혹은 여러가지 비밀번호 등을 방수 테잎으로 잘 싸서 붙여놓는다.

결국 그 번호들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을텐데...그 번호들을 찾기 위해서라도 설거지들을 해야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엔 필요에 의해서라도 설거지를 했지만 결국엔 그가 모든 비밀번호들을 다 외워버렸다는거다. -_-;;

그러다가도 버스에서 잠이 들어 자기가 내릴 곳에서 못 내리고 계속 종점에서 내려서 왔다갔다 고생하다가 종점마다 방을 얻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마치 처음 이사한 집으로 들어가던 날, 집근처 네에서 한시간을 헤메다가 디지털카메라를 사서 루트를 찍어놓는 방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내 모습을 상기시켜 주기도 하는 등...호어스트 에버스는 책을 읽는 몇시간 동안 최근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우울했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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