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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세계
마틴 피도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이라면 굉장한 우연이었다.
마침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손에서 내려놓았던 어제가...1월 6일이 홈즈의 생일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1월 6일은 셜로키언들이 희박한 근거를 가지고 정한 홈즈의 생일이다.
어느 자료-www.yes24.com의 주석달린 셜록홈즈 리뷰-에서는 셜록 홈즈의 생일인 1월 6일을 몰리가 점성술에 의해 밝혀냈다고 하고, [공포의 계곡]이 시작되는 1월 7일에 홈즈가 아침을 먹지 않은 것은 그 전날 저녁에 생일 파티를 했기 때문일지 모르며, 또 홈즈가 세익스피어의 다른 희곡은 제쳐 두고 주로 [십이야]에서 인용하는데 십이일절은 바로 1월 6일이라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들이 희박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첫번째의 점성술은 넘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ㅡ.ㅜ
작가 코난 도일이라면 능히 그 몰리인지 누구인지를 믿고도 남았겠지만 철저한 불가지론자였던 홈즈의 생일을 규명하는데 점성술까지 끌여들여야 했을까?
어쨌거나 아무리 희박한 근거라고 해도 차라리 셜록 홈즈의 사건집들속에서 그의 생일을 추측해낸 두 세번째의 근거가 훨씬 그럴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의문을 던졌다. 어느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아마 나는 이런 질문에 "예"라는 대답을 했을거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건 작품의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한 인간에 대한 내 개인적 호기심의 발로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코난 도일이라는 인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당혹감을 느꼈다.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작가 자신을 셜록 홈즈와 동일시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여러번 작가 자신이 셜록 홈즈의 원형은 그의 대학 은사였던 조지프 벨이었다고 인정했어도, 기사 작위를 받은 의학박사 출신의 작가는 차갑고 날카롭고 이지적인 셜록 홈즈의 성격과 가깝지 않을까 했던게 나의 편견이었나보다. 오히려 도일은 현실적인 왓슨에 가까운 것을!
물론 나는 코난 도일이 정직하며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위대한 작가에겐 그 이상의 것이 없었다는거다. 게다가 그런 장점들이란 말만 약간 비틀면 단순하고 둔하다고도 표현될 수 있는거 아닌가?
몇년 전에 얼핏 본적이 있는 아서 코난 도일의 대략적인 프로필에는 말년에 신비주의에 빠졌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유령이나 심령술에 조금 관심이 있었나보다라고 생각했을 뿐 자세히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마틴 피도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된 코난 도일은 죽기 한 10년 전부터 심령술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상식마저 잃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는 영매가 사후의 삶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고 그 확신을 글로 표현했으며, 영매들을 찾아 다니고 집에서 교령회를 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코난 도일의 단순함을 보여주는 절정은 '코팅리 요정' 사건이었다.
코팅리 요정을 목격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1917년인데, 목격자는 열다섯 살의 엘시 라이트와 그녀의 사촌 여동생 프랜시스 그리피스였다. 두 소녀는 소형 카메라로 요정을 모습을 찍었고 엘시의 아버지가 이를 인화했다. 1920년, 도일은 <<라이트>>의 편집자를 통해 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 사건을 조사한 에드워드 가드너의 전철을 밟았다. 가드너는 두 소녀와 아버지의 주장을 전적으로 믿었고 자신이 직접 몇 장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도일은 믿었고,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이번에 도일은 곤경에 처했다. 올리버 로지경-영매를 통해 전사한 아들 레이먼드와 접촉함으로 심령술을 믿었던 유명인사-은 요정을 안믿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양초 제조 회사 프라이스 사에서는, 사진 속의 요정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광고의 삽화 그림과 똑같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절대로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리고 순진한 소녀들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그런데 도일의 주장의 근거가 단지 믿음 뿐이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어처구니 없게 만든다. 차라리 말도 안되는 이유라도 사진에 합성에 흔적이 없다거나 뭐 그런 이유를 드는게 낫지 않았을까?
물론 50년 뒤에 엘시는 심술궂게 웃으며 그것이 사실은 사기였다고 인정했다. 만약 그때까지 도일이 살아있었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자신이 그토록 어리고 순진하다고 굳세게 믿은 그 가증스러운 소녀들에게 발칙하게 속은 것에 대해 예의 그 사람좋은 웃음으로 웃고 넘어갔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정이 있다는 그 괴팍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그당시 조지 5세를 비롯하여 로이드 조지, 윈스턴 처칠 같은 그의 오랜 팬들은 절망을 느꼈다. 정말 지금의 나도 절망스러운데...동시대를 살았던 그들은 오죽했을까? ㅡ.ㅜ
우리가 아무리 도일의 작품과 셜록 홈즈를 좋아한다지만, 요정에 대한 그의 믿음까지 지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마지막으로 코난 도일에 대한 실망감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무지했던 나는 이제껏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로 인해서 그가 기사 작위를 받은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나 그는 보어전쟁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지 3개월이 지났을때 본국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영국인의 지지가 줄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국 정부를 옹호하는 글을 오천 단어씩 써댔는데 그것은 영국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유럽 언론에 항변하는 팸플릿이 되어 급히 나왔다.
에드워드 7세는 1902년 왕위에 오르자, 도일의 이러한 애국적 노력에 대한 보답으로 기사 작위를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너무 코난 도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어쩌면 이런 에피소드들은 인간 코난 도일 자체에 대한 결점이라기보다는 내가 어릴적 아니 지금까지도 좋아하고 있는 인물을 탄생시킨 작가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일종의 선입견에 대한 배신감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렇듯 순진하고, 단순하며, 현실에 굳건히 두 발을 붙이고 있지만 때로는 놀라우리만치 비과학적인 작가는 그 모든 면에서 작가와 반대 성향을 갖고 있는 상상할 수 없을만치 매혹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키 180에 극단적으로 마른 체형 때문에 실제보다 더욱 커보이는 체형.
성격은 아주 차갑고 절제된 감정과 쌍벽을 이루는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만불손함-그러나 본인은 겸손함의 부족으로 그러한 사실을 파악못함-.
취미는 아주 다양한데 지식인답게 독서는 물론, 바이올린 연주, 거실에서 화학실험하기, 중세의 문서 연구하기, 가벼운 읽을거리로는 외국어로 된 고전을 선호한다. 이렇게 취미 생활을 하고도 권태로울때면 홈즈는 권태로움에 대한 처방으로 7% 코카인 용액을 주사하기도 한다.
마약복용만 뺀다면 더할나위없이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는 그가 전형적인 부르주아 계급에 관습적인 인간형이었다면 얼마나 지리멸렬했을까?
다행히도 지적 오만함으로 무장한 반면에 석탄통에는 시가를, 페르시아 슬리퍼의 앞축에는 담배를 넣어 두고, 아직 답장을 보내지 않은 서신은 벽난로 선반 한가운데 잭나이프로 콱 찍어 놓기도 하며, 마약을 하는, 관습에서 벗어난 다소 기이한 천재 괴짜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홈즈는 지저분한 습관의 소유자였지만 자기 몸에 대해서만큼은 까다로웠는데 그는 고양이처럼 깔끔했고, 실내복 차림(왓슨의 관찰에 따르면 회색이나 쥐색, 혹은 눈부신 진홍색)으로 집 안에서 어슬렁 거리거나 시골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우아한 정장 차림을 하고 다녔다.
시드니 파젯이 그린 삽화 때문에 우리는 셜록 홈즈를 떠올릴 때 얼스터 코트를 입고 사냥 모자를 쓴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사실 내가 가보았던 셜록 홈즈 박물관에도 거실 테이블에 그 모자가 홈즈의 필수품인양 올려져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집어서 머리에 써보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사실 런던 시내에서 그런 사냥 모자를 쓰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게다가 사냥 모자라는 말은 셜록 홈즈의 사건 기록에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때는...그래놓고도 열렬한 팬이라 자칭하던 나의 행동이 어찌나 부끄럽던지...-_-;;
원래 홈즈의 한결같은 취향은 몸에 꼭 맞는 정장 차림인데...그 중에서도 부드럽게 접힌 셔츠 칼라 밑에 나비 넥타이를 매는 것이다.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서 보여준 홈즈의 패션 감각을 보자.
헨리 바스커빌 경과 모티머 선생의 뒤를 따라 옥스퍼트 가와 리젠트가를 걷고 있는 순간에도 보헤미안 스타일로 나비 넥타이를 졸라매고 있었는데, 그때 그는 프록코트, 왓슨은 모닝코트 차림이었다. 그리고 둘 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실크해트를 쓰고 있었다. (이 묘사는 정말 삽화를 봐야 한다. 그래야만 우아함이라는 단어를 홈즈에게서 느낄 수 있다.)
괴짜같은 천재가 패션감각까지 뛰어다나니...
정말로 셜록 홈즈는 어떻게 규정짓기가 너무나도 힘든 인물이다. 차갑지만 가끔씩 그의 눈에 어리는 자비, 범인을 추적하러 새벽까지 길거리를 쏘다니다가 아침에서야 집에 들어올 정도로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고서적을 구입하고 음악회에 자주 갈 정도로 문화적 교양 또한 상당한 홈즈. 독단적이고 오만불손하지만 그는 타인에게 그 오만함이 그저 상당한 자신감의 표출 그 이상의 감정도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카리스마와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렇듯 멋진 캐릭터를 창조한 코난 도일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셜록 홈즈를 그냥 위대한 캐릭터가 아닌 마치 실존 인물처럼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닐까?
고백하자면,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 나이에...나도 문제다.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