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의 유언장
봅 가르시아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오늘 아침,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몇년 전에 황금가지에서 셜록 홈즈 전집이 출판되었을때 자칭 셜록키언이라 칭하던 나는 한꺼번에 9권 전집을 사들여 오랜만에 다시 한번 셜록 홈즈의 세계로 빠져드는 반면에 마지막 장이 다가올수록 나는 앞으로는 모작 말고 더이상 홈즈를 만나기 힘들겠다고 나름대로 미래를 예측하면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었다. ㅡ.ㅜ

 그런데 나는 그 정신적 공황상태가 거의 완치되었을 무렵 홈즈 아저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셜록 홈즈의 유언장...이 책은 코난 도일의 열렬한 팬인 저자가 코난도일과 셜록홈즈에게 헌납한 오마주가 아닐까?

원작을 충실하게 연구한 덕분인지 책의 등장인물들은 원작의 캐릭터와 유사하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한층 복잡해지고 사건은 더욱 잔인해졌다.

 15년전 은둔생활에 들어갔던 셜록 홈즈의 사망소식-그의 욕실에서 셜록 홈즈라고 추정되는 젤 종류의 물질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그의 사망추정의 근거다. 그래서 나는 홈즈 아저씨가 이 소설에서 죽지 않았다고 믿기로 했다.-_-::-이 전해지고, 그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 왓슨과 마이크로프트, 레스트레이트가 공증인 윌리엄 홀본의 사무실에서 모인다.

셜록 홈즈는 유언을 통해 왓슨에게는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형 마이크로프트에게는 추리력을, 레스트레이드는 의혹과 회환을, 홀본에게는 유작이 든 봉투를 물려주고...수정 보완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왓슨의 마지막 원고 [런던의 공포]를 그 자리에서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15년전 런던에서는 15건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시체들의 이마에는 거꾸로 된 십자가 모양이 찍혀 있고 살인의 유형들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악무도하다.

생매장당한 아이들, 토막살인, 아내 토막살인 후 민트소스를 곁들인 아내 심장구이와 손가락 샐러드를 요리해 먹은 은행원, 마치 잭처럼 여자를 난도질한 살인, 몸통은 온데간데없이 얼굴만 남은 아기 시체, 사람 뱃속을 파먹은 쥐, 임산부의 배에서 태아를 꺼내어 독살하기 등등...

시민들은 악마의 소행이라고 수군거렸고, 당시 경감이었던 레스트레이드는 엉뚱한 용의자들을 검거하고, 그들을 교수형에 처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당시 레스트레이드의 인기는 치솟아 그는 런던 경찰청장으로까지 승진한다.

그러나 홈즈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진범은 마지막 사건 당일까지 공개적으로 홈즈에게 도전장을 내밀지만 마약에 쩔어있던 홈즈는 이미 통찰력을 잃었다.

사건 실패 후, 우울증에 빠져 지내던 홈즈는 어느날 왓슨을 자기 발에 묶여 있는 쇠공에 비유하며 자기는 그 무거운 공을 질질 끌고 다닐 힘이 더는 없고 무력한 왓슨이 옆에 있으면 퇴보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이상 참을 수가 없다며 시골에 내려가 은둔하며 방문객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고 살겠다며 떠난다.

(흐흑...사실 나도 이 부분에서는 왓슨 아저씨만큼이나 슬펐다. 왓슨 아저씨가 그의 말이 그토록 무자비한 공격성을 띤 적이 결코 없었다고 지적한 것처럼, 나역시 홈즈 아저씨가 좀 차가워 보이고 말을 가끔씩 까칠하게 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세 명의 개리뎁]이라는 단편에서 홈즈가 왓슨에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을 잊지 못한다.

정말 홈즈가 한 행동이 맞나 싶어서 몇번이고 보고 또 봐서 이젠 외우다시피 한 문장이 되어 버렸고, 왓슨의 해석 장면에서도 또 거의 울 뻔 했었으니까. ㅋㅋ

 "You're not hurt, Watson? For God's sake, say you are not hurt!"

It was worth a wound- it was worth many wounds- to know the depth of loyalty and love which lay behind that cold mask. The clear, hard eyes were dimmed for a moment, and the firm lips were shaking. For the one and only time I caught a glimpse of a great heart as well as of a great brain. All my years of humble but single-minded service curminated in that moment of revelation.

 셜록 홈즈의 실패로 끝난 왓슨의 [런던의 공포]의 원고는 어찌보면 미완이다.

그것은 셜록 홈즈가 유언을 통해 남긴 부록이 곁들여질때 드디어 완성이 된다.

부록은 몇년 동안에 걸친 셜록 홈즈의 재수사 보고서이다.

부록을 읽다보면 홈즈 아저씨 역시 녹슬지 않았어! 라는 말과 함께 왓슨 아저씨에게 행한 무례한 행동에 대한 오해도 풀리게 된다.

공공연하게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왓슨과 마이크로프트에 대한 애정없음을 표현함으로써 범인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지키려는 홈즈 아저씨만의 배려였던 것이다. ㅡ.ㅜ

그렇다면 범인은 홈즈를 어떻게 공격했던가?

범인은 진부하게 총을 쏘거나 홈즈 아저씨의 뒤통수를 내리치면서 위협하지는 않는다. 홈즈를 너무나 잘 알았던 범인은 그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 하나 때문에 미쳐버릴 수도 있고, 마약을 주사해 자신을 서서히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한가지가 아니라 무려 열다섯 가지라니!

 그 범인은 정말 거의 성공할 뻔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밝혀지는 범인은 정말 내가 상상도 못한 인물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정보를 혼자 독식하고, 사건의 뒷배경으로 우리를 아주 외딴 곳으로 데려다놓던 코난 도일과는 다르게 봅 가르시아는 친절하게도 책 속에 복선을 충분히 깔아주었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할 것도 없이 늘 책 속에서 답을 찾는 모법생같은 독자라면 충분히 범인을 찾을 수 있었을텐데...내가 너무 어렵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걸까?

 하지만 범인은 못맞춰도 괜찮아!

셜록 홈즈 아저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까!

홈즈 아저씨가 유언을 통해 추리력을 나한테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이크로프트 형이야 원래 머리가 좋은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건 여담이지만, 코난 도일은 홈즈를 중간에 은퇴한 것으로 못박은 덕분에 홈즈 이야기의 배경은 1880년대와 1890년대 즉 빅토리아 시대의 마지막 20년간으로 정해졌고, 그래서 홈즈는 1880년대와 1890년대의 안정된 런던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도일은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서 그랬던 것처럼 홈즈의 모험의 배경을 계속 1880년대로 고정시키고 싶어했다고 한다. 1880년대는 그가 이십대를 보낸 시기로 그는 그때를 "세계가 다 젊은 소년이었고 모든 나무가 다 싱그러운 녹색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홈즈의 나이를 계산을 해보면, 1880~1890년대에 홈즈는 26살에서 36살이었다. 최대 삼십대 중반으로 잡는다 해도 홈즈 역으로 유명한 제레미 브랫이나 피터 쿠싱-실제로 내가 홈즈역으로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피터 쿠싱이다-은 홈즈의 실제 나이보다 더 나이들어보이고, 초기 원작 속의 홈즈의 말투 또한 왓슨을 박사라고 호칭하는 등 너무 노땅스럽다.^^;

 - 잠깐 피터 쿠싱과 제레미 브랫에 대해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면, 물론 그들이 셜록 홈즈의 이미지에 가장 적합하게 어울리는 배우라는거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지만 이렇게 홈즈의 나이까지 정확하게 계산에 넣었을때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봅 가르시아가 설정한 홈즈의 나이를 계산해 보자. 런던의 공포 사건이 제일 처음 시작된게 1886년 겨울이니까 홈즈는 서른 두살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책을 읽으면서 원작의 홈즈와 그리고 어쩔수 없이 오버랩되는 피터 쿠싱이나 제레미 브랫같은 홈즈의 이미지들보다 왠지 이 책에서의 홈즈가 조금 앳되보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정확한 나이를 계산해 보니 어쩌면 나이에 가장 걸맞는 행동을 한 캐릭터가 봅 가르시아의 홈즈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하나 흥미로룬 사실은...최근에 홈즈는 범죄말고도 영국 관공서 직원들에 대한 논문까지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홈즈의 연구는 범죄의 세계 뿐만이 아니라 관료들의 심리 연구에서도 아주 적확한 인식과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였다. 홈즈가 분류한 공무원들의 일시적 청각장애, 수면병 등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다.

예를 들어, 일시적 청각 장애란 아주 흔한 경우로 민원인이 말을 걸어오거나 졸음을 방해할 수 있는 문제에 접근하는 즉시 청력을 상실한다는거다. (뭐 까놓고 말해서 귀찮으니까 못들은척 한다는거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가끔 일시적 청각 장애를 앓을 때가 있다. ㅜ.ㅜ) 그 다음으로 수면병이란 호포 페트리피쿠스처럼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 인간이 내 말을 들은건지 안들은건지 구분을 할 수가 없게끔 화석처럼 꿈쩍안하고 있는 인간들.  홈즈는 이런 경우 그냥 본론만 이야기하고 들어가버린다. 그러면 담당 공무원이 어딜 그렇게 가냐고 되묻고 홈즈는 다시 다시 나는 방금 말했지만 네가 자고 있어서 못들은 거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99프로의 공무원이 이렇게 대답한다.

"전 자고 있지 않았습니다. 일을 하고 있었죠."

ㅎㅎ 정말 대단한 셜록 홈즈만의 유머다!

 이렇게 홈즈 아저씨를 즐겁게 만난 것도 잠시...나는 또 홈즈 아저씨 없는 정신적 공황 상태를 극복해야한다. ㅡ.ㅜ

 * P.S : 이 책에서 제일 이해할 수 없던건, 홈즈와 왓슨이 그 유명한 그들의 아지트 베이커 스트릿 221B에서 나와 마차를 타고 대영박물관으로 가던 장면(p. 109)이었는데...문제는 마부가 런던교를 지나야 하는데 길이 많이 미끄러워 많이 미끄러워 막힐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부분이었다.

런던 북쪽의 베이커 스트릿에서 조금 남쪽일 뿐인 지금의 홀본 지역쯤-그래봤자 역시 런던의 강북이다-인 대영박물관으로 갈 뿐인데 왜 굳이 런던교를 지나서 강을 건너야 한다는거지?

봅 가르시아가 프랑스 인이라서 헷갈린걸까?

그래도 이건 런던 지도만 봐도 알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사실인데.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서 작가의 이메일을 알려달라고 해서 문의를 해봐야지. 만약 내가 맞다면 개정판에는 수정을 해야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셜록 홈즈 아저씨가 이런 실수를 용납하는걸 내가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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