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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요리사
박수미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토리가 굉장히 재밌다!!!!!!!★ 그래서 별점 두 개.
마녀를 소재로 다루는 작품이라면 책, 영화, 만화 가리는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판타지라니! 소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이 꽤 두꺼운데 표지에는 창작동화상 수상이라고 적혀 있어서 대상독자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동화상을 받았으면 동화를 읽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되겠지? 하고 봤는데 볼수록 더 헷갈리게 되었다. 마녀와 요리, 그리고 동화같은 판타지에 다양한 신화를 섞어서 너무 매력적인 소설인건 맞는데..... 2020년에 나온 소설 맞나? 싶은 순간이 조금 있었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과연 모성인지, 시련을 헤쳐나가는데 필요한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개인의 의지인지, 둘 다 인지 딱 고르기가 어려울 뿐이지 긍정의 뿌리가 다양한 감정과 의지로 분화되어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책 전반의 사건이 모두 주인공에게는 이상하리만치 개연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몽환적인 느낌은 애니메이션 <Over the garden wall>이 떠올라서 좋았다. 꿈에서 그렇듯이 신기한 건 신기한거지만 막상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는 생각 잘 안하는 것처럼 몽글몽글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너무 신선하고 재밌었다. 다만!!!
주인공은 왜 자꾸 남성적일까!!!!!!!!!!!!!!!
이 문제가 내 시선을 자꾸 헷갈리게 만들었다.
핀이 스스로 분에 못이겨 화내는 것도, 나름 잘 해보려고 애썼지만 풀지 못한 사건에 대해 후회하는 것도, 호기심이 일자 행동에 바로 옮기는 것도 초등학교 6학년 아이라면 모두 그럴 수 있어서 이해됐다. 어른의 시선으로 동화를 평가하려고 읽는 건 정말 부질없는 일이기에 책을 읽기 시작한 첫 시선은 '주인공의 또래' 정도로 생각하고 재밌게 읽어나갔다. 그런데..
1. 소설을 읽는 성인의 시선으로 읽기가 곤란했다.
왜 자꾸 모성의 상징인 마라를 볼 때마다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묘사를 하는 것인지.. 속눈썹이 길고, 희고 고운 얼굴에 아름다운 이목구비, 심지어 검은 드레스 사이로 나타난 흰 맨발이 왜 아름다운지를 왜 그렇게 여러번 말해야하나 싶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모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처음에는 핀이 남성으로서 마라를 바라보는건가?하고 좀 기겁하기도 했다. 마라를 볼 때마다 아름답다 그래서 그냥 존재가 아름답군 했는데 매번 그럴 때마다 '미모'가 아름답다고 책이 정정해줬다. 마라의 얼굴이 예쁜데 모성애와 연결해도 되나? 예뻐서 눈을 뗄 수 없고, 아름다워서 떨릴 정도인 마라의 미모와, 안아주자 '엄마'라고 할 뻔한 포근함이 단번에 연결이 잘 안됐다. 나는 잘생긴 사람 보면 아빠라고 하고 싶진 않던데..; 저 묘사가 있을 때는 작중 상황이 현실세계가 아닌걸 모를 때다. 아무튼 그래서 빠르게 시선을 잘못 설정했구나 반성하고 다시 읽어나갔다.
2. 주인공 또래의 시선으로 읽기도 참 곤란했다.
반지에 목걸이라니, 내가 무슨 여자애냐고요. 부끄러워서 저런 걸 끼고 사람들이 있는 곳을 어떻게 다녀. - 103p
켁, 25명이라고? 그건 너무 많긴 하네. 하지만 나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어. 그중엔 여자아이도 있을 거고, 여차하면 오랜만에 검은 진주반지에서 골렘을 불러내면 되니까. - 234p
소녀는 제멋대로 나를 다리가 부러진 사람으로 만들더니 그게 또 불쌍한지 눈물까지 글썽거렸어. 근데 가만 듣다 보니 이 아이, 예쁘장하긴 한데 말이 어지간히 많더라고. -266p
내가 공교롭게 여자라서 주인공 또래로 돌아가도 여자아이가 되더라. 근데 주인공이 왜 자꾸 여자아이를 언급하는지 잘 모르겠다. 예쁘장한거랑 말이 많은게 왜 같은 문장에 나온거지? 물론 주인공은 결국 반지에 목걸이를 끼고 다니게 되고, 25명 중 섞여있을/열외당할 여자아이들과 싸울 일도 없고, 발부르가는 자신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저 말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독백으로 이어지는 동화의 위험성을 잘 안다. 이걸 읽으면 언젠가는 꼭 내면화된다. 머리와 마음에 박히지는 않는데, 무심한 듯 지나가는 말은 수채화 물감이 옅게 퍼지는 것처럼, 그러나 색이 진하게 물들지 않는 것처럼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동화로서 읽지 못했다. 반지와 목걸이나 끼고 다니는 여자애를 주인공이 한심하다고 여기는데, 어떻게 동일시를 하나..... 왜 단언하냐면 내가 읽고 자란 어지간한 동화들이 이랬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들이 시련을 이겨내려면 희생이 필수인 줄 알고 자랐다. 못 이겨내면 마녀가 되는거고. 근데 아니더라고.
3. 가족의 마음으로 읽기도 어려웠다.
읽다 보면 주인공의 아버지도 어머니만큼이나 참 주인공을 많이 사랑한 것 같고, 여동생도 어린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어머니만을 작품내내 찾고, 여동생은 '고 계집애 여우같다'는 말과 함께(근데 이건 혈육들이 다 그래서 이해는 한다) '앞으로는 안 때릴게. 미안하다.' 이렇게 독백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절절한 마음을 담은 약속으로 끝이 나는데... 아버지는...? 여동생은....?
동화상 수상작이기에 좀 더 이런 부분에 있어 세심하게 배려됐을 줄 알았다. 동화가 아니라 소설이어도 그렇고. 요즘 나오는 소설들이 다 발전해가듯이 시대적인 관념이 녹아있지 않길 바랐다. 솔직하게 이건 내 편견이지만 여성 작가님이셔서 더 이런 문제에선 맘편히 볼 수 있을 줄 알았다.............(이 마음은 이 책으로 인해 고쳐먹게 되었다.)
그 많은 페이지 중에서 고작 저 짤막한 구절들로 이 책의 별점을 두 개만 준다고? 싶을 수가 있긴한데 나는 그 짤막한 구절때문에 자꾸 소설로부터 유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너는 주인공이 아니야. 이입하고 있었니? 빨리 빠져나가. 니 이야기가 아니야. 이런거. 그래서 그냥 저런 묘사를 굳이 해야했나 싶다. 저 또래 남자 아이들이 보편적으로 그런 것도 아니고... 보편성을 학습시키는 것이었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유리되는 느낌이 나의 '유달리 예민함'이 아닌, '독자로서 소외되는 불쾌함'임을 구분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요즘 판타지소설들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오는 이유가 이런 문제들을 수정해서 내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