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과의 산책
이지민 외 지음 / 레디셋고 / 2012년 6월
절판


"항상 잊지 말게. 자네가 인문학도임을. 인문학은 원가를 위로하는 거야."


떠난다는 건 시퍼렇게 행복한 일이야. 흐!
처음 그 글을 본 순산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런데 반복해서 읽다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퍼렇게'라는 수식어의 뉘앙스는 돌부리에 걸리듯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을 멍 자국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이제야 그날 밤과 새벽의 이미지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 건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그녀의 뒷모습을 기억한 뒤 비로서 다가온 이해였다.
나는 그 새벽의 미명 속에서 계희의 뒷모습에 얼핏 뭔가가 있음을 보고 말았다.
그곳에는 얇고 부드러운 실크 커튼처럼 희미한 뭔가가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디론가 끝없이 유영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머무는 순간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어떤 질긴 지느러미 같았다.

사랑의 목마름에 시달리는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사랑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화살을 맞은 다프네를 쫓아다니게 돼.
아폴론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녀는 끝없이 달아나지.
그렇게 쫒고 그렇게 달아나다가 드디어 아폴론의 숨결이 다프네의 등에 닿을 정도까지 가까이 갔을 때, 결국 다프네는 그 자리에서 월계수로 변해버려.
이런 생각이 들었어.
매일 다프네를 쫓아다녔으면, 아폴론은 그녀의 뒷모습만 보았겠구나. 뒷모습조차 사랑했겠구나.
사력을 다해 쫓아가 드디어 그녀의 얼굴을 보겠지.하며 기대하는 순간, 나무로 변해버린 그녀 뒤에서 아폴론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이 그렇게 뒷모습에 비쳐질 줄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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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 타임 아이스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꿈틀거리던 욕망의 기억에 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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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 타임 아이스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절판


"DON'T."
"DON'T,뭐?"
내 마음에는 벌써 공식이 완성되어 있다.
2sweet + 2be = 4gotten
(Too sweet to be forgotten.)
"스푼, 잊기에는 너무 달콤해."
"나, 계산 못 해."
그런 건 벌써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스푼은 나라는 아주 작은 칠판에 수식을 썼다.
그것이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의 낙서였단 말인가.

만일 그가 내게 범한 죄가 있다면, 그것은 내 마음에 기억을 남겼다는 것이다.
나는 여태 기억에 남는 그런 사랑을 몰랐고, 기억에 남는다는 것 자체를 증오했음에도.
이제 자신이 없다.
그가 내 눈앞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그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있을지. 왜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스푼이 도저히 구제할 길 없는 멍청이로 곁에 있을 때 내게는 아무 걱정거리도 없었다.
그것을 하나의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에도.

나는 처음으로 스푼을 만난 날 밤을 떠올렸다.
엄청나게 서둘러 사랑을 나누었던 그날의 감동이 응고한 채 몸에 남아 있다가 그 윙크와 동시에 캡슐이 녹아들듯 내 마음에서 약효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 볼을 일그러뜨리는 깊은 맛이 나는 움직임. 그것이 내 열병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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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양이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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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3월
구판절판


"그래서, 돈이 잘 벌려?"
가게를 시작한 이후 사람들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그거였다.
친구들 중에도 묻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키코는 '이 사람과는 계속 만나기 힘들겠네' 하면서 아쉬워했다.
교양 있는 사람은 그런 걸 묻지 않는다.
묻는 쪽은 궁금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것이겠지만, 아키코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대답하지 않으면 괜히 더 캐려 들었다.
그렇다고 수입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적당히 돌려 말했다.


아키코는 가게 일을 하지 않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이 행복했다.
젊었늘 때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거나 선물을 받는 이벤트가 즐거웠다.
하지만 나이를 이렇게 먹고 보니 일상 속의 소소한 부분에서 행복을 느끼게 됐다.
아키코는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는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머리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꼬박꼬박 졸고 있는 타로를 바라 보았다.


부인은 자신도 들은 얘기라고 하면서,
동물은 인간과 달리 생사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애정을 쏟으며 자신을 키워준 주인을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이 필요이상 슬퍼하거나 자신을 질책하면 동물도 마음 아파한다, 하고 위로해주었다.
"그러니까, 즐거웠던 일만 생각하면서 고마웠다고 말해주는게 그쪽에게도 타로에게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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