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잊지 말게. 자네가 인문학도임을. 인문학은 원가를 위로하는 거야."
떠난다는 건 시퍼렇게 행복한 일이야. 흐!
처음 그 글을 본 순산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런데 반복해서 읽다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퍼렇게'라는 수식어의 뉘앙스는 돌부리에 걸리듯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을 멍 자국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이제야 그날 밤과 새벽의 이미지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 건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그녀의 뒷모습을 기억한 뒤 비로서 다가온 이해였다.
나는 그 새벽의 미명 속에서 계희의 뒷모습에 얼핏 뭔가가 있음을 보고 말았다.
그곳에는 얇고 부드러운 실크 커튼처럼 희미한 뭔가가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디론가 끝없이 유영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머무는 순간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어떤 질긴 지느러미 같았다.
사랑의 목마름에 시달리는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사랑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화살을 맞은 다프네를 쫓아다니게 돼.
아폴론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녀는 끝없이 달아나지.
그렇게 쫒고 그렇게 달아나다가 드디어 아폴론의 숨결이 다프네의 등에 닿을 정도까지 가까이 갔을 때, 결국 다프네는 그 자리에서 월계수로 변해버려.
이런 생각이 들었어.
매일 다프네를 쫓아다녔으면, 아폴론은 그녀의 뒷모습만 보았겠구나. 뒷모습조차 사랑했겠구나.
사력을 다해 쫓아가 드디어 그녀의 얼굴을 보겠지.하며 기대하는 순간, 나무로 변해버린 그녀 뒤에서 아폴론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이 그렇게 뒷모습에 비쳐질 줄 상상이나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