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고트(goat)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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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땐 그저 '실험적인 작품(그 벽을 심리적인 은유로 해석하던) 인 것 같았다' 정도가 내 감상이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내 기준에서 원작을 너무 잘 표현한 몇 안되는 작품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심리적(일종의 환상적) 경계로써의 벽에 갇혀 필연적으로 왜곡되거나 붕괴되는 자아분열의의 작품들(주로 현실과 분간이 안되는 은유들로 구성된 부조리나 실존주의를 다루는)과는 흥미롭게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질감이 있다. 특히 '투명한 물리적 벽'이라는 설정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공간적인 성격이 다른 면이라고 해야할까 고립된 자연 공간에서 일어나는 주체의 재구성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경험되는 화자의 글쓰기로 나타나는데 그 과정에서 화자가 말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같이 성찰해보는 것이 이 작품의 즐거움이 아닐까..



인간들도 안쓰럽다. 그들은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 삶 속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인간이 가장 불쌍할지 모른다. 인간에겐 이성이 있어서 자연의 순환을 막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고 절망적으로 만들었으며 흉하게 만들고 말았다.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보다 더 현명한 감정은 없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사랑받고 있는 사람 모두가 삶은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만이 나은 인생을 살아갈 유일한 희망,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죽은 자들은 이제 그 유일한 가능성을 잃고 말았다. 그 생각이 계속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왜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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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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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해야할까? 악의에 대한 총 5편의 연작 단편집이다.

늘 그렇듯... 미묘한 단서와 논리적 추리가 상당히 건조하게 진행되며 몇명은 밥숟가락은 놓기도 하며 당연히 진실을 알게 되어도 구원받는 사람은 없다. 많은 기대를 하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윤기없이 마른듯한 사건의 해결의 과정에 동기(심리)를 끼워 맞춘것이 심심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님 가쓰라처럼 달콤한 빵과 카페오레로 끼니를 때우지 않아서였을까 불만스럽게 까지는 아니었지만 새어나오듯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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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의 비극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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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고령화와 도시 중심의 인구 집중으로 인해 농촌 지역이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본이 앞서 있고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이 소설은 일본 농촌 마을 미노이시(美濃石)를 배경으로, 인구 유입을 촉진하는 **'I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소생을 시도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와 농촌 소멸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추리 소설의 틀 안에서 요네자와 호노부 스타일로 그려내고 현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을 살리기 위함이며 'I턴'이란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함.

한국도 농촌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된다고는 하나... 늘 그렇듯 아무리 떠들어봐야 마이동풍....

정부와 지자체는 다양한 정책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언제나 미생지신(尾生之信),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결과였지만....

(결코 냉소와 빈정거림은 아니다.. 이게 현실이라서...)

가상이긴 하나 사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주민들의 애로사항,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거나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발생...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최전선에서 '돌아와'프로젝트로 분투하는 공무원들이 겪게 되는 사건과 미스터리를,

달리 말하면 이주민 유입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심리적,문화적, 폐쇄성과 정책의 비현실성은 보너스... 마지막 반전에서는 지역 소멸의 근본적 원인과 공무원들의 무력감, 농촌 문제의 복잡성으로 마무리 된다.

일본과 한국 농촌 소멸의 맥락에는 차이점도 존재한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농촌 소멸 문제를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대응해 왔지만 그 결과?를 I의 비극에서는 장기적인 노력의 좌절감을 반영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로 일본은 2024년 기준으로 인구의 29%가 65세 이상이며, 한국은 20%이다.

과거 2040년까지 약 900개의 지자체가 소멸 위험에 처할 것이라 발표한 일본이나 228개 시군구 중 46%가 30년 안에 사라질 수 있다고 하는 한국이나 아주 막상막하라서 일본 내에선 귀농 귀촌 정책,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 세금 감면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농촌의 경제적 기반 약화와 인프라 부족으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따라하는 것인지 참고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인구 유출과 지역 공동화, 인구감소, 저출산, 지방과 농촌의 현실 그리고 정책적 노력에도 이미 늦었다라는 느낌과 도시인들의 마이동풍.....

하기야 지역 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 낮은 소득, 부족한 일자리, 문화적 격차, 낮은 수준의 의료와 교육 등 인프라... 등등의 주요 요인에 확실한 해결책이 없는 것은 맞다.

시골에 내려가 봐도 젊은 층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계시고... 그 노인들마저 돌아가시면 귀촌자가 새로 유입될 이유도 없고...

하지만 소설이기에 반면교사 삼아 뭘 어떻게 하자는 교훈이나 테마까지 바라볼 필요는 없다.

(지방 또는)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 같은 문제에 우리는 늘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안의 사건 그리고 미스터리를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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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말씀드립니다
유키 신이치로 지음, 권일영 옮김 / 시옷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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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의(91년생이면 30대 중반이라 젊다고 해야할지 애매?하지만) 단편 추리소설이기에 비교적 직접적인 시스템, 사회 풍자의 뉘앙스나 문제의식 보다는, 인간 군상과 사건 현상에 초점 맞추고 있는데 도리어 이런 부분이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쳐낼 것은 쳐낸, 가볍게 정리된 느낌이 들어서 잘~ 읽었다. (트릭보다는 관계속에서의 반전이 핵심이라 흥미롭고, 분량들이 짧고 어차피 믿을 수 없는 놈_화자_의 이야기라 진득하게 분석할 필요가 없어 다 읽는데 1시간도 안 걸린 것 같다. 그래도 진실의 불확실성을 만끽하는 새로운 재미가 있다.)

뒷표지에 문구처럼 감탄과 찬사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의 추리소설 트렌드가 이렇게 변모하고 있구나 하는 신선함은 있었다. 작가가 91년생이라고 하니 기성 작가들과는 주제와 소재의 결이 완전히 다르다. 요즘의 사회 트렌드가 많이 반영된 것이 납득이 가던... (인터넷, 캠을 통한 화상 모임, 유튜브, 즉석만남 어플...)

그리고 제목에 대해서....

해시태그(#)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 많이 쓰이는 기호이자 형식이다. ‘#’ 기호 뒤에 단어나 문장을 붙이는, 예를 들어서 #문학, #일본소설, #서점대상, #진상을말씀드립니다, #추리소설, #유키신이치로, #권일영, #바이포엠 등등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검색 및 주제 분류의 역할 등을 수행한다.

이 아이디어가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아님 그냥 유행처럼 차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어도 '미스터리' 장르의 특징인 진실을 조작하거나 선택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의 그 어떤 증언이나 설명 그 자체가 진실을 결코 완전하게 담을 수 없는 것임에도 그걸 공유하고 확산 (출판)한다는 뉘앙스는 아주 독특하다.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첫번째에 수록된 단편을 읽고 '아.. 이런 스타일이구나'하고 가볍게 보다가 그런 생각과 기대와 달리 *AID를 다룬 '판도라'와 유튜브를 다룬 '#퍼뜨려주세요'가 뜻밖에라고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선 영화가 4월말에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예고편을 보면 이 소설의 다른 시리즈가 메인인 듯한 옴니버스 형태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만화로도 출간되었는데 만화 1,2,3권이 소설의 5가지 단편을 다루고 있다. (만화까지 읽어 볼 필요는 없다.만화는 더 축약되어 있다.)

*AID : (Artificial Insemination by Donor)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AID를 다룬 읽어볼 만한 소설

夏物語, 여름의 문, 川上 未映子, 가와카미 미에코, 홍은주



#판도라....

AID를 다룬 소설 여름의 문(夏物語)을 읽었을 때도 느꼈었지만 우리보다 앞서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사, 비혈연)가족, (AID로 태어난 아이들의)정체성, 윤리의 문제에 대해서 기존의 가치관과 현대적 현실 사이의 긴장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히 쇼코라는 인물의 정체성(의 위기)을 이 소설의 단편에서 간략히(단순히) 보여주고 있는데 AID에 대한 윤리적 불온성(不穩性 ; 정자 기증자 =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에 관한 문제,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사회규범적 시선, 침묵헤야 하는 문제인지 또는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의제 확장이 진행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기도 하다. 출생의 비밀에 있어서 앞으로 AID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적잖이 많아지지 않을까...

"쇼코(翔子)라고 합니다. 날아오른다는 뜻의 비상(飛翔)에서 상(翔)자를 따서 쇼코(翔子)라고 쓰죠."

..

"아버지의 취미가 새 관찰이었죠. 그래서 쓰바사, 즉 그 날개(翼)로 드넓은 하늘로 날아오르라는 바람을 담았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

제 이름은 엄마와 쓰바사 씨의 이름에서 가져왔어요. 요시코의 아름다울 미(美)는 부수가 양(羊)이다. 쓰바사라고 읽는 날개 익(翼)의 부수는 깃털 우(羽)."합치면 날아오른다는 뜻을 지닌 ‘상(翔)’이 되죠."

..

"그렇지만 그건 상관없어요. 아버지 후보인 두 분의 혈액형이 양쪽 다 틀리는 일은 역시 있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만약 쓰바사 씨가 B형이라면 저는 쓰바사 씨를 ‘아버지’로 믿고 살아갈 거예요. 엄마가 내내 믿어온 것처럼."

..

그날, 이렇게 말하며 아내는 선선히 정자 제공을 허락했다. 혹시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이런 '샛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판도라



늘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그리고 누군가가 또는 나의, 누군가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과연 진실일까.....

우리는 결코 진실을 알 수 없다. 실제 진실이란 너무나 복잡하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https://blog.naver.com/mix1110/223893817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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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의 것들 이판사판
고이케 마리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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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불안을 동반한 공허나 고독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좌절된, 이탈된?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이 경험하는? 이형의 이야기들...

이해 불가능하고 표현하기에 충분치 않은(다르게는 묘사할 수 없는 정신적-정서적 붕괴) 것들을 이형이라는 것으로 언어화 시키면 묘하게 납득이 가면서도 깊은 여운이 스며든다.

무서운? 느낌에 대해서 좋아한다기 보다도 명명할 수 없는 그것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하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독(깊게 묘사되지 않기에 그게 또 이형에 대한 여운과 슬픔이 함께 한다, 그 이면에는 작가의 필력이 한 몫한다)과 기이한 사건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질 때의 심리적인 공포를 그려내는(정서적으로 체감시켜주는)..

작가로써 이쪽과 저쪽의 기척 그 이음매로써의 역활은 아주 탁월하다.

살고 있는 환상과 죽고 있는? 기댈 현실이 파괴되는 환상을 너무 잘 그려넣어서.... 항상 감탄하는데, 말로 글로 포착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서 이 언니 딱 안성맞춤의 공간에서 참 글 잘쓴다...


공포라는 것은 단순히 ‘이상한 존재’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를 말할 수 없는 상태(상황)에서 발생한다... 우리에게 공포란 말해지지 못하는 실재가 상상 속에서 계속 증식할 때오히려 더 강력한 ‘괴이’로 자리잡는 것이 아닐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


https://blog.naver.com/mix1110/223817917159

그렇게 나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음매 같은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이음매에는 언제나 그 여자가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많은 일들을 떠올려 봐도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고 아무런 설명도 들은 적 없지만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해지곤 한다. 동시에 한없이 그립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의 아득한 정경이 거기 있다. 내가 죽어 재가 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타오르는 듯한 불길한 저녁놀이 비치는 창문에 이번에는 내 모습이 비쳐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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