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상상력
C. 라이트 밀즈 지음, 강희경.이해찬 옮김 / 돌베개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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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자유 같은 전승된 가치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불안 그 자체가 개인 문제이며, 무관심 그 자체가 공공 문제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불안과 무관심이라는 상황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현저한 특징이다.

 

정신분적학자들이 늘 지적하는 바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규정할 수 없는 막연한 내적 힘에 조종당하는 듯한 느낌을 점점 갖는다"

그러나 "인간의 주요 적과 위험물은 자신의 제어하기 힘든 본성과 자기 재부의 어두운 힘" 이라는 어니스트 존스의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정반대로 오늘날  '인간의 주된 위험'은 현대 사회 자체의 제어하기 힘든 힘과 함께 인간을 소외시키는 사회적 생산 방식, 점점 조여오는 정치적 지배 기술, 그리고 국제적 무정부 상태 등,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성' 자체와 인간 생활의 조건 및 목적 들의 변형에 있다.

 

감정은 일반적으로 학습되고 획득된다. 더구나 행위의 지향에서 감정의 역할은 주로 인지되고 '적응되는' 문화적 대상으로서의 역할이 아니고, 내면화된 문화 유형으로서의 역할이다. 감정은 행위자 자신의 인격 체계 구조의 일부이다.

 

지금 널리 퍼져 있는 권력 수단 가운데에는 사람들의 동의를 조종하고 조작하는 권력이 있다. 우리가 그러한 권력의 한계를 모른다고 해서, 그리고 우리가 권력에  한계가 있기를 바란다고 해서 오늘날 대부분의 권력이 피지배자의 이성이나 양심의 인가를 전혀 받지 않고도  성공적으로 사용된다느 사실을 없앨 수는 없다.

 

오늘날에는 강제력이 결국 권력의 '최종' 형태라는 것을 굳이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그 최수 수단에만 호소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와 조작도 강압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권력의 성격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이 세 가지 형태를 구별하여야 한다.

 

한 개인의 생활은 그의 일생을 형성하는 제도와 관련시키지 않고는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일생은 여러 역할의 획득,포기, 수정, 그리고 아주 은밀한 방식의 역할 전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과학적 기술과 합리성이 사회 내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신화나 기만, 미신 없이 합리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보통 교육은 지성 있고 자율적인 지식인이 아니라 기술적인 백치와 민족주의적 편협성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역사 문화의 대중 보급은 문화적 감수성의 수준을 고양시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진부하게 만들어버리고 창조적인 혁신 가능성을 철저히 억제할지도 모른다. 관료주의적 합리성과 기술 수준이 높다고 하여 개인 또는 사회의 지적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자의 정치적 임무는 개인 문제를 공공 문제로, 그리고 공공 문제를 다양한 개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의미의 관점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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