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네그리-하트의 <다중>의 한글본 역자들은 비르노의<다중(A Grammar of the Multitude)>과의 비교해 볼 것은 제안한다.

"다중 개념을 포스트 포드주의 문맥에서 새롭게 정의하는 빠올로 비르노의 <다중>은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을 정치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특히 빠올로 비르노는 네그리와 이탈리아 아우또노미아 운동의 오랜 실천동지이자 옥중동지라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스피노자, 홉스 아렌트, 하이데거에게서 다중 개념을 읽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두권의 <다중>을 비교하며 읽는 것은 생산적인 사유공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다중, 510쪽, 역자후기)

그러나 비르노의 <다중>접근이 쉽지가 않다. 어려운 철학적 개념의 등장과 이것을 비르노가 전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그리-하트의 <다중>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지구촌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예시와 분석, 투쟁과 저항의 사례들, 역사적 사례들의 제시는 내용적 접근과 관심을 좀 더 쉽게 해준다.

-네그리, 하트의 <다중>과 비르노의 <다중의 문법>을 함께 읽으며 비교하면, '다중'에 대한 개념이 좀 더 부각되고, 각각의 저자들의 강조점이 무엇인지 분명이 드러날 수 있다. 

-비르노의 <다중의 문법>은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다중'이라는 주어에 어떤 술어가 있을 수 있는가의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일단, 이 책에서는 압축적인 철학적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음. 비르노가 다중의 언어적 능력(과 연결되는 개념인 것 같은 수행성개념)을 중요시한다는 것이  이미 책의 제목에서도 표현되어 있음 )
-네그리, 하트의 <다중>은 <제국>의 속편으로서 <제국>이주권의 현재적 구성형태를 그리는 것에 초점을 두는 반면, <다중>은 노동과 저항의 우선성의 관점으로 '다중'의 절대적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구성과 조직화를 그려보는 것이 초점이다.

그냥 생각하는 것들을 스케치해본다. 정말 이것은 근거 없는 인상과 스케치에 불과함.

다시 정리하면 올릴계획이다. (언제 하려나~~~)


네그리, 하트의 <다중>


비르노의 <다중의 문법>


노동과 저항의 우선성으로 고찰.

1부 2장까지는 지배적 관점(즉 역반란의 관점, 삶권력의 관점)으로 내용이 설명되다가 1부 3장에서 관점을 역전시킴

 


‘다중’을 위험하게 본 사람들의 논의를 추적하면서 이 논의를 전복시킴.

-홉스, 아리스토텔레스, 하이데거의 논의를 추적하면서, 이들의 접근 개념들 및 구분들이 현재는 무효화되었음을 보임.(민중, 특별한 장소, 공통된 장소, 잡담과 호기심)

 


-비물질노동은 네트워크적 형태를 띠며 삶정치적 생산이다.(거꾸로 말하는것도 가능)

(정보, 지식, 소통, 정동적 노동, 이미지....)

 


언어적, 지적능력에 강조점이 있음.

(언어적, 지적능력을 인간의 유적인 특성으로 보고 이것이 공통화되었다는 것을 강조)

->수행성(performance)


 

-삶정치(biopower)에 강조점이 있음. 

-삶정치는 노동의 우선성의 관점에서 설명되는 것인 반면

 


삶정치 개념은 애매하다. 그래서 ‘노동-역량(labor-power)로 접근해야 한다. 노동-역량이 삶정치의 전제이다.

-비르노는 현재의 생산형태 ‘포스트-포드주의’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자본의 관점임.


스피노자, 마키아벨리, 맑스(의 방법)에 중심점을 둠.

-스피노자(특이성과 공통성, 절대적 민주주의)

-마키아벨리?(공화주의적 전통?)

-맑스의 방법(경향, 실재적 추상, 적대..)

-푸코(훈육권력, 삶권력, 삶정치..)

...


맑스의 일반지성에 중심점을 둠.

(요강의 기계에 관한 단장)

-시몽동의 개체화 원리

-홉스(민중)

-아리스토텔레스(공통된 장소, 탁월한 기예)

-하이데거(잡담과 호기심, 편의주의 냉소주의)

.... 


특이성과 공통성의 나선형적 순환관계


목적론적 일자가 아닌 전제된 일자(언어적-지적 능력)의 분화-다소 유출적, 선형적?


삶권력과 삶정치의 적대구도가 명확함.

-삶권력의 행사형태로서의 전쟁

->제국과 다중의 적대구도 속에서 정치적 조직화의 문제(절대적 민주주의)를 제기함. 


적대구도보다는 다중의 양가성이 강조됨.

->비-대의적 민주주의와 엑소더스를 말하지만, 네그리, 하트의 <다중>과 같은 적대구도가 그려지는 것 같지는 않음. 정치적 조직화의 문제가 공백으로 남는 듯. 


잠재적 힘, 구성적 힘으로서의 다중


잠재적 힘으로 보는 것 같으나 다중의 양가성에 초점.

네그리-하트와 비르노가 내용적으로 대립되는 지점이 있다기 보다는 강조점이 달라지는 것으로 이해됨. <다중>248쪽에서는 비르노의 언어적 수행과 관련된 내용은 긍정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권(권력:국가)-노동]의 삼각관계에서 보면,

맑스: [자본(시민사회:부르주아)-국가-노동]?

네그리:[제국-다중]: 삶 자체가 정치적이고 생산적임에 따라서, 주권권력도 삶권력이 됨. 다중이 네트워크적 형태를 띠기 때문에 제국도 네트워크적 형태를 띠게 됨. 그래서 권력과 자본이 한데 뒤엉킴? 맑스시대에 혹은 국민국가적 시대까지 자본(시민사회)와 국가의 어떤 매개적인 형태를 띠는 듯한 관계(물론 국가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지만)가 제국적 시대에서는 통일됨? 더 이상 어떤 외부도 어떤 매개도 없는 제국과 다중의 적대, 삶권력과 삶정치의 적대.

비르노: 포스트-포드주의(자본의 꼬뮤니즘)과 다중의 대립구도. (이것이 네그리와의 차이점으로 대두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주권 및 권력의 행사 문제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음. 맑스의 자본-노동의 관계가 포스트포드주의-다중의 관계로 대체됨. 비르노가 언어적-인지적 능력의 공통화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생산형태의 변형을 경제적 영역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인상을 받게됨. 반면, 네그리와 하트는 삶정치적 생산이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강조점이 있음. 그래서 네그리,하트에게 삶정치와 삶권력이 중요한 반면, 비르노에게는 삶정치의 개념은 애매하고 노동-역량이 강조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