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서문에 대한 노트에 가까우므로 조만간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1/맑스의 자본론과 비교한다면..?-노동과 저항의 우선성을 파악해야 한다. 

 맑스의 <자본론>은 자본이 영원하고 자연적이라는 것에 반대하면서 자본의 성격을 파헤친다. 그래서 자본이 실상은 노동이 창출하는 가치에 의존하며, 잉여가치의 착취를 통해 자기증식한다는 것을 규명한다. 즉 자본은 가치를 증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서, 이 목적을 노동자의 잉여가치의 착취로 실현한다. 그리고 자본은 이러한 원리를 은폐하는 모든 수단들을 동원한다. 물론 맑스의 정치경제학 연구와 <자본론> 서술목적이 단지 자본을 규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 공산주의 혁명의 가능성과 그 정당성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 것이었다. 즉 맑스는 자본주의가 기존의 전통(봉건주의)을 깨뜨리면서 새로운 사회형태, 즉 가치를 생산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가는 지배적 경향이었음을 주목하고, 여기에서 자본의 원리의 모순과 허구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것을 변혁할 수 있는 혁명적 주체성의 발견과  새로운 사회의 실현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래서 맑스에게는 자본을 파헤치는 것이 제 1차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고전파 정치경제학과의 이론적 대결의 목적을 갖는 것임과 동시에 현재(당시) 사회 변화의 형태변화를 경향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맑스의 정치경제학 연구와 <자본론>서술은 이 목적에 부합한다. 그러나 <자본론>에서 서술은 고전정치경제학파들과의 대결과 자본의 원리를 규명한다는 목적에 혁명적 주체성의 문제가 간과된다. 즉 맑스는 분명 노동이 자본보다 우선적이고, 자본의 지배보다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우선적임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론>에서는 자본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어서 노동과 저항의 우선성이 잘 드러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자본의 원리 해명의 논리적 서술이라는 목적에 이것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론>에서는 노동 (혹은 노동자 계급)은 자본에 착취당하는 '부정적'방식으로만 제시되고, 단지 노동자 투쟁의 역사적 사례만이 부분적으로만 제시될 뿐이다. 그리고 맑스는 자본론 1권을 출간하고, 나머지 자본론의 노트들만을 남긴 채 사망한다. 그렇다면, 맑스에게 공산주의의 가능성과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적 주체로서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내용은 미완인 채로 남겨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공산당 선언>과 <독일이데올로기>,<고타강령비판>에서 그 문제를 찾아 볼 수 있지만, 맑스의 정치경제학 연구와 <자본론>에 비한다면, 그 중요성과 분석내용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고, 그래서 혁명적 주체로서의 노동자 계급과 공산주의 실현이라는 과제는 신비화된 채로 남겨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혁명에 대한 기획과 실현이라는 과제는 노동과 저항의 우선성의 관점에서 맑스의 독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노동과 저항의 우선성아래에서 현재의 생산(과 노동의 관계)과 주권형태(권력형태)를 해명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전복하는 혁명적 가능성과 힘을 찾아야 한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과 <다중>은 이러한 관점에서 위치지을 수 있다. <제국>에서는 현재의 전지구적 질서형태를 '경향'적으로 해명함과 동시에 다중의 기획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에서는 주권형태의 분석과 생산의 형태분석이 중심내용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다중의 기획은 다소 부분적으로만, 추상적으로(혹 신비적으로)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다중>은 <제국>의 속편으로서 다중의 기획을 중심적 내용으로 다룬다.

2/<다중> '서문'-공동의 삶

 <다중>은 <제국>(2000년 출간, 2001년 한글번역본 출간-윤수종 옮김)의 속편이다. <제국>은 전지구적 질서의 경향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현재의 전지구적 질서의 형성은 기존의 국민국가적 관점에서 제국주의 담론으로 해명할 수 없다. '제국'은 전지구적 질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성공할 유일한 권력형식(이라는 맥락에서 일종의 '경향'으로서), 즉 새로운 주권형태이다. 즉 그것은 '네트워크 권력'으로서 기존의 국민국가들을 요소로 갖거나 마디들로 포함하는 권력형식이다. '제국은, 내부적인 구분과 위계에 의해 찢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전쟁에 의해 오염된 전지구적 질서를 지배한다. 제국에서 전쟁상태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전쟁은 지배의 도구로 기능한다.'(다중, 17쪽-한글본) 오늘날이 평화라고 한다면, 그것은 항구적인 전쟁상태에 기반하는 허위적 평화일 뿐이다.

 <다중>은 이러한 제국의 분석에 기반하여 '제국 내부에서 자라고 있는 살아 있는 대안에 초점'을 맞춘다. 지구화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는데, 하나는 통제와 항상적 갈등이라는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위계와 구분의 네트워크를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제국, 다른 하나는 국가와 대륙을 가로질러 무한히 많은 마주침을 가능케 하는 협력과 협동의 새로운 회로를 창조하고, 그래서 서로 소통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공통성을 발견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제국. 그래서 여기에서 다중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해될 수 있다. 모든 차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표현될 수 있는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네트워크, 우리가 공동으로(in common) 일하고 공동으로 살 수 있는 마주침의 수단들을 제공하는 네트워크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다중>은 다중의 기획에 관하여 다룬다. 다중의 기획은 ①평등하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고, ②개방적이고 포괄적인 전지구적 민주주의 사회를 요구하고 그것을 성취할 수단을 제공해준다.

3/다중(The Multitude), 민중(The People), 대중(The Masses), 노동계급(the working class)

 <다중>에서는 개념적 수준에서 다중을 민중, 대중, 노동계급과 같은 사회적 주체들과 구별한다.

 '민중'은 통일의 관점에서 파악된 것으로서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환원하며 인구를 하나의 동일성으로 만든다. 즉 민중은 하나이다. 반면 다중은 다수이고 하나의 통일성이나 단일한 동일성으로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수많은 내적차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문화들, 인종들, 민족들, 성별들, 성적 지향성들, 다양한 노동형식들, 다양한 삶의 방식들, 다양한 세계관들 그리고 다양한 욕구들(desires)로 구성되어 있다.

 '대중' 은 민중처럼 하나의 통일성이나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온갖 유형들과 종류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대중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본질은 무차별적이다. 모든 차이들은 대중속에 가라앉아 익사한다. 대중속에 인구의 모든 색깔들은 회색으로 바래고, 이 대중들은 회색으로 일치해서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은 대중이 무구별적인 동형의 집합체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중은 다채색이다. 다중(개념은) 사회적 다양체가 내부적으로 다르게 남아 있으면서도 공동으로 소통하고 공동으로 활동하는 것이 성공적일 수 있음을 지시한다.

 '노동계급' 은 배타적이다. 노동계급은 소유주와 노동자를 구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좁게는 노동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구분한다. 즉 좁게는 노동계급은 산업 노동자만을 지시한다. 산업노동자는 농업노동자, 서비스업 노동자, 그리고 여타의 다른 부분 노동자를 분리한다. 넓게는 임금노동자만을 지칭한다. 이때는 임금노동자를 가사노동자, 빈민등 임금을 받지 못하는 여타의 모든 사람들(네그리에서는 이 사람들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을 분리시킨다. 반면에 다중은 개방적이고 포함적인(inclusive) 개념이다. 다중은 전지구적 질서(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변화가 갖는 중요성을 포착하는 개념이다. 오늘날의 생산은 경제적으로 이해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생산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다중은 (잠재적으로)사회적 생산을 하는 온갖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4/다중과 민주주의

 다중의 특징은 절대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1) ‘삶정치적(biopolitical) 생산’. 소통, 협동, 협력은 공통된 것의 기반을 두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계속 확장하는 나선형 관계에서  공통된 것을 생산하기도 하다. 이 삶 정치적 생산은 엄밀히 물질적인 재화의 생산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것에 걸친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들을 생산한다. 이 삶정치적 생산과 이로 인한 공통된 것의 확장은 오늘날 전지구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지탱하는 하나의 강력한 대들보이다. 2)‘정치적 조직화’. 다중의 특징은 네트워크 조직으로 나아가는 더욱 민주적인 조직화를 향한 경향을 보여준다. 오늘날 국지적, 지역적 그리고 전지구적 수준에서 전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해방을 위한 저 많은 투쟁들과 운동들을 관통하는 공통적 흐름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다. 물론 이 열망이 실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전지구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가질 수 있는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많은 사례들을 제시하지만 구체적으로 실천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나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일차적 목표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획이 정립될 수 있는 개념적 기초를 다듬어 내는 것이다.

 다중은 대안적인 전지구적 사회를 창조하기 위하여 제국을 관통해서 움직이고 있다. 다중의 탈근대적 혁명은 제국의 주권을 넘어서 앞을 바라본다. 부르주아지나 다른 모든 배타적이고 한정적인 계급형성체들과는 달리 다중은 사회를 자율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 이것이 다중의 민주적 가능성의 핵심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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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1 0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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