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고전적 공리주의,직관주의 비판

 롤즈는 공리주의와 직관주의에 대한 비판을 이론적으로 세밀히 따져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롤즈의 주요한 목적은 공정으로서의 정의와의 비교를 통해서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더 나은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 원초적 입장을 통하여 정의의 원칙을 정당화하는 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과 직관주의에 대한 한계점은 각각 일반적인 논의의 수준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비판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공리주의와 직관주의를 일반적인 수준에서 논의를 전개하더라도 롤즈의 비판은 그 일반성으로부터 본질적인 핵심을 비판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롤즈가 비판하는 것으로서 공리주의의 종류는 시즈워크에 의해 가장 명료하고 접근하기 쉽게 정식화된 엄밀한 고전적 이론이다. 롤즈에 의하면, 이것은 한 사회의 중요제도가 그에 속하는 모든 개인이 만족의 최대 순수 잔여량을 달성하도록 편성될 경우 그 사회는 정당한 질서를 갖춘 것이며 따라서 정의롭다는 견해이다. 롤즈에 의하면, 이러한 고전적 공리주의에서 사회정의는 집단의 복지라는 집합적 개념에 적용된 ‘합리적 타산(rational prudence)’의 원칙이다. (60쪽) 이것은 일견 매력적인 것이며 또한 합리적인 것인 듯 보임에도 불구하고 치명적 난점을 갖는다. 이것은 ‘옳음’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기각하기 때문에‘좋음’과 ‘좋음’의 문제가 상충되었을 때 답변할 수 없는 난점을 갖는다. 그래서 윤리학의 지평에서의 ‘옳음’과 ‘좋음’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목적론이 갖는 일반적 성격을 비판함으로써 공리의 원칙을 비판한다.

 또한 직관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에서 롤즈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직관주의를 생각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롤즈는 직관주의는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여러 개의 제1 원칙들이 있으며, 그들 간에 어떻게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인지는 우리의 숙고된 판단에 비추어 상호간의 비중을 잼으로써 결정할 수 밖에 없다는 학설로 본다. 직관주의자들은 정의의 대등한 원칙들간에 적절한 우열을 가려줄, 보다 고차적인 구성적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도덕현상의 복합성으로 인해 여러 가지 상이한 원칙들이 요구되므로, 그들을 설명하고 그 비중을 가려줄 단일한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실질적으로 다원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귀결되고 이에 대하여 롤즈는 단일한 구성적 기준을 보여줌으로써 논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논의전개를 보여줌으로써 직관주의는 당연히 논박되는 것이라 보는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하여 자신의 논의를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

 물론 롤즈가 직관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다원주의로 귀결되는, 어떤 하나의 단일한 기준을 거부하는 것을 포기하는 직관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롤즈 또한 ‘직감적으로 생각하건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원초적 입장에서의 직관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몇 가지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2-1.고전적 공리주의 비판

 윤리학에서의 두 주요개념은‘옳음(the right)’과‘좋음(the good)' 이다. 그래서 윤리설의 구조는 이 두 가지 개념을 규정하고 관련짓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그 중에서도 간단한 것은 목적론이다. 롤즈에 의하면, 목적론은 좋음을 옳음과는 상관없이 규정하고 그리고 옳음은 그 좋음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정확히, 옳은 제도나 행위란 쓸 만한 대안들 중에서 최대의 좋음을 산출하는 것이든가 아니면 적어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다른 제도나 행위만큼의 좋음을 산출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론은 합리성을 구현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직관적 호소력을 갖기 쉽다. 물론 합리성이란 어떤 것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도덕에 있어서 그것은 좋음(선)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최대의 선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사회가 편성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쉽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문제가 발생한다. 즉 목적론에서는 좋음이 옳음과 상관없이 규정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의 의미는 두 가지이다.

 (1)첫째, 옳음이란 이같이 이미 명시된 선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2)둘째,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옳음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사물의 좋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 옳음이란 이미 명시된 선을 극대화시키는 것이거나, (2) 옳음 그 자체의 기준 없이도 좋음(선)으로서 가치평가의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고전적인 형식에 있어서의 공리의 원칙은 좋음(선)을 욕구의 만족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이러한 입장은 어떤 것이 사회협동체의 적합한 조건인가는 그 여건 아래서 개인들의 합리적인 욕구들에 대한 만족의 최대 총량을 달성해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의해 정해진다. 이러한 입장은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난점을 갖는데, 그것은 이러한 공리의 원칙이 원칙적으로 어떤 사람들의 보다 큰 이익이 다른 사람들의 보다 적은 손실의 정당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리의 원칙에 충실하다보면 다수가 보다 큰 좋음(선)을 명분으로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롤즈에 의하면, 여러 선을 분배하는 그 자체도 또 하나의 선으로, 어쩌면 보다 상위의 선으로 간주된다면, 그리고 이러한 이론이 우리들에게 최대의 선을 산출하도록 지시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고전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목적론적인 입장을 취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분배의 문제는 옳음의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배의 문제는 옳음의 문제로 귀결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2-2.직관주의의 한계와 제한적 수용

 롤즈에 의하면, 직관주의적 이론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1)첫째, 이 이론은 특정한 유형의 경우에 있어서 상반되는 지침을 주는 상충하는 제1원칙의 다원성으로 이루어진다.

 (2)둘째, 이러한 원칙들의 순위를 가려 줄 명확한 방법이나 우선성 규칙이 없다.

 그래서 직관에 의해서, 가장 그럴 듯하게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의해서 조정점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우선성 규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얼마간 변변찮은 것이어서 판단을 내리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직관주의는 다원주의로 귀결될 수 있으며 그래서 직관주의를 다원주의라고 할 수도 있게 된다.

 직관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대한 판단에서 제1원칙은 다름 아닌 다수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직관주의는 이러한 다원성을 일정한 방식으로 조정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다원성이 더 옳은 것이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롤즈에 의하면, 직관주의자는 오히려 도덕 현상의 복잡성 때문에 우리의 판단에 대한 완전할 설명을 하려는 노력은 소용이 없고, 대등한 여러 원칙들이 있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이라고 할 때 처럼 평범한 이야기가 되고 말거나, 모든 것을 공리의 원칙으로 해결할 때처럼 오류 내지는 지나친 단순화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79쪽) 그래서 롤즈는 직관주의를 논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러 원칙들이 합당하게 가려질 비중을 설명할, 인정받을 만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즉 ‘직관주의에 대한 반박은, 직관주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런 종류의 구성적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롤즈는‘직관주의’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성 문제를 기각하고 다원주의로 귀결되는 직관주의에 대하여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롤즈에 의하면, 오히려 직관주의는‘숙고된 판단을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직관에 대하여 제한을 두고 있다. 롤즈에 의하면, 직관은

 (1)첫째, 그것은 정의의 원칙들이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되는 것과 관련된다. 그것들은 어떤 선택적 상황의 결과인 것인데, 합리적인 존재인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은 이러한 원칙들의 우선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정의의 원칙들은 자명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선택될 것이라는 사실에서 그 정당성의 근거를 찾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이 받아들여지는 근거 속에서 그 경중이 구분될 어떤 지침이나 제한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둘째, 서열적 순서, 축차적인 순서로서 배열된 원칙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즉 제 1원칙이 충족되어야 제 2원칙에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직관주의와 다른 점은 한꺼번에 경중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열적 배열을 함으로써 모든 원칙들의 경중을 한꺼번에 가리지 않아도 되며, 그 순서상 앞선 것은 뒤따르는 것에 비해 이른바 절대적인 비중을 가지며 예외 없이 타당하게 된다. 그래서 롤즈는 특수 경우로서 실제로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규제하는 원칙보다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우선시킴으로써 이런 식으로 순서를 매기고자 한다. (82~85쪽)

 다시 롤즈의 논의를 정리하면, 롤즈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있어서 직관에의 의존이 두 가지로 집중된다고 밝히는데, (1)첫째, 우선 사회의 체제 내에서 그 체제를 판단하게 될 입장을 선정하고, 다음에 이 입장에 있는 대표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특정 체제의 기본구조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를 묻게 된다. 그렇다면 직관에의 의존은 직관주의적 입장의 총합-배분의 이분법에서와는 다른 성질을 띠게 되고 그 정도도 훨씬 줄어들게 된다. (2)둘째, 우선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직관적인 판단에의 의존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소시키는 일이다. 어떤 종류이든 간에 직관에 전부 의존하는 것을 피할 수 있거나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실제적인 목적은 공통된 정의관을 제시하기 위한 판단에 있어 합리적으로 믿을 만한 합의에 도달하는 일이다.(86~87쪽)

 다음페이퍼에서는 원초적입장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계약론적 설명방식과 반성적 평형을 살펴봄으로써 롤즈의 원초적 입장의 가상적 상황이 무엇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인지, 어떻게 찾아가는 것인지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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