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에 간략히 데카트의 생애와 철학의 제1원리를 적었는데, 이에 이어서 데카르트의 방법이라는 주제로 적어본다.

데카르트는 관습과 감각에 대하여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명제를 통하여 자신의 철학의 제1원리를 정초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아무리 의심하고 의심해보아도 이렇게 의심하는(생각하는) '나'가 있다는 것이요, 이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에서 철학의 제1원리라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이를 통하여 사유하는 주체의 확실성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을 토대로 데카르트는 자신의 방법에 따라서 참된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 이 데카르트의 방법을 <방법서설>과 <정신지도의 규칙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참고로 인용한 쪽수는 <방법서설>은 서광사번역본이고(최명관역), <정신지도의 규칙들>은 문예출판사번역본이다(이현복 역).)  먼저 저번에 마이리뷰에 적어놓았던, 철학의 제1원리에 이어서 데카르트의 학문관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학문관으로부터 어떠한 진리탐구의 방법이 전개되는지를 명증성->분해->합성(연역)->열거(매거)의 순서로 살펴보겠다.

1. 데카르트의 ‘철학의 제1원리’(기초)

 데카르트는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확실한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관습과 선례’였기 때문이다.(『방법서설』,19쪽 ) 관습과 선례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참된 것으로 간주되는데, 관습과 선례 같은 사실들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 참된 진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감각하지 못한 것이 꿈속에서 감각되고, 상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감각적인 것들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 동안 자신이 받아들였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혼자의 힘으로 진리를 찾아가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혼자서 찾아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이유를 제작품과 건축물, 도시건설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한사람의 제작품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완성된 것보다 더 완전하다는 것이고, 건축물과 도시도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이 무계획적으로 고치고 변화시켜서 사용하는 것보다 한사람이 구상하여 지은 것이 더 아름답고 더 정돈 되어 있다는 것이다.『방법서설』, 16쪽 참조)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하는 계속적인 회의 과정에서 이렇게 ‘의심하는 나’가, ‘생각하는 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철학의 제1원리’로서 받아들이게 된다.(이 명제의 의미에 관한 풍부한 논의들은 안쏘니 케니의『데카르트의 철학』제 3장 참조) 철학의 제1원리를 바탕으로 정신의 사용을 통하여 ‘아주 명석하게 그리고 아주 판명하게 마음속에 품어 생각하는 것은 모두 참되다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방법서설』31쪽) 

2. 데카르트의 방법 

 데카르트에 의하면 이성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데카르트에게서 ‘양식’,‘좋은 정신’,‘이성’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ㆍ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이현복 역(문예출판사 2001),<이하『규칙들』>, 243쪽 주해 참조) 그러나 그 동안은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참과 거짓을 구별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규칙1>에서 ‘정신에 나타나는 모든 것에 대해 견고하고 참된 판단을 내리도록 정신을 지도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라고 하였다. (『규칙들』, 15쪽)

2-1학문관

  “모든 학문은 인간의 지혜에 다름 아니고, 지혜가 비록 상이한 대상에 적용된다고 해도 그것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빛이 여러 다양한 대상들을 비춘다고 해서 그 빛이 다른 것이 아니듯이 학문들도 서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학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따로 분리해서 하는 것보다 그것들을 함께 탐구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별적인 학문을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학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규칙들』, 16-18쪽 )

 학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의 고리들을 차근차근 발견해가면서 통일성을 이루어야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며 방법이다. 학문의 연쇄성은 기계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가 서로 독립적이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문을 연쇄적으로 밝혀감에 따라 세계에 대한 파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학문의 통일성에 기초하여 방법의 여러 가지 규칙들이 제시된다. 방법의 규칙들의 큰 핵심은 명석. 판명한 것만을 진리로 인정할 것과, 분해(단순화), 직관과 연역을 통한 종합(확장), 확실성의 확인으로서의 매거(열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2명증성

“첫째로 내가 명증적으로 참되다고 안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조심하여 피할 것. 그리고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을 정도로 아주 명석하게 또 아주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 판단 속에 넣지 않을 것”(『방법서설』, 20쪽)

 데카르트는 확실하고 명증된 것,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만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하였다.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산술과 기하학인데, 산술과 기하학은 경험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하고 단순한 대상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산술과 기하학만이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방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된다면 공허해 진다. 그래서 산술과 기하학의 단순하고 순수하며 합리적인 연역이 모든 주제에 대하여 진리가 발견될 수 있도록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3분해

“둘째로 내가 검토할 난제의 하나하나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가장 잘 해결하기에 필요한 만큼의 소부분으로 나눌 것”(『방법서설』, 20쪽)

 일상에서 사람들은 간혹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는 갑자기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생기는가 하면, 심지어 학교에서도 과제와 발표, 시험들이 겹쳐지면서 난감해지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하고 혹은 자신의 머릿속에서의 혼란들이 불어 닥치기도 한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두고 주위에서는 일단 쉬운 일부터 처리하고 해결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생각해’라고 넌지시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반복하다보면, 계획을 세우고 쉬운 일부터 처리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생각이 복잡해 질 때는 마음 편히 먹고 단순해질 때 한결 나아진다는 삶의 지혜를 갖고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의 단순화 규칙은 이와 유사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순서를 무시하고 어려운 문제만을 검토하고 있는 사람들은 ‘건물 밑에서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마련된 사다리를 무시하거나 생각지도 않은 채로 한 번에 올라가는 사람의 행동과 비슷하다’고 비판한다. (『규칙들』, 39쪽) 복잡한 것에서 분리하는 단순화로부터 직관과 연역을 통하여 다른 것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간다.

 직관이란, ‘순수하고 주의를 집중하는 정신의 단순하고 판명한 파악’이다. 예를 들면,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삼각형은 세 선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등이 직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직관은 그 자체로 확실하고 명증적인 것이다. 하지만, 직관을 통해서만 참된 진리를 찾는다면, 단편적인 진리만을 찾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며 그것은 곧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대로 방법의 목적은 학문은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로부터 학문을 총체적이면서 통일적으로 밝혀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관과 함께 연역과 열거를 제시한다. (여기서의 직관은 칸트에게서의 직관과는 다르다. 데카르트에게서 직관이 '정신의 단순하고 판명한 파악', 즉 주의를 집중해서-직각적으로, 혹은 즉각적으로-파악하는 것이라면, 칸트에게서는 대상과 매개없이 직접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직관형식으로서의 공간과 시간이다.)  

2-4합성(연역)

“셋째는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가되, 가장 단순하고 가장 복잡한 것들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자연대로는 피차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것들 간에도 순서가 있는 듯이 단정하게 나아갈 것”(『방법서설』, 20쪽)

 연역은 직관을 통하여 얻은 참된 진리를 가지고 순서에 맞게 계열화 하면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연역이 가능한 이유는 ‘그 자체로 명증적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알려질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직관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

사례)1

직관: 나는 존재한다. 삼각형은 세 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등등

연역:

3, 6, 12, 24, ? ?는  각의 수들이 배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48임을 알 수 있다. 

3, x, 12x 6

3, x, y, 24는→x6, y 12

3, x, y, z 48→x 6, y12, z24

①이 제일 찾기 쉽다. 그래서 순서에 맞게 계열화해야 한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고찰되는 것이다.

②③④는 ①보다 찾기 어렵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고찰되는 것이다. 그러나 ②③④에도 찾는 어려움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 얼핏 보면 ④가 제일 어려운 것 같지만, ③이 제일 어렵다. ④에서는 y라는 비례중항을 찾으면 x와 z를 다시 분리하여 3, x, 12 와 12, z, 48로서 더 단순화 할 수 있지만, ③은 ④보다 더 상이한 경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규칙들』, 45-47쪽 참조) 그래서  ‘어떤 한 진리를 다른 진리에서 연역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단순하고, 또 다른 것들이 이것에서 얼마나 더, 덜 혹은 같은 정도로 떨어져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 해야 한다.(『규칙들』, 39쪽 참조) 

 직관은 단순하고 쉬운 것이다. 연역은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사유운동 속에서 참되게 인식되는 점에서 특성이 다르다. 그러나 방법적 원리를 토대로 한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사유운동을 통하여 인식능력이 향상되면 (간단한)연역은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사례)2

①1+3=4 

②2+2=4

③1+3=2+2

①과 ②는 각각 직관으로서 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연역으로부터 ①과 ②가 ③이 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의 사유 운동을 통해서 그 능력이 향상되면, ③도 직관처럼 참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③도 직관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①②③에 더 첨가 하는 사례도 제시할 수 있다.

①1+3=4 

②2+2=4

③1+3=2+2

④2×2=4

⑤8÷2=4

⑥1+3=2+2=2×2=8÷2

⑥은 ③보다 더 복잡하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정신의 능력이 향상 되어 있다면, ⑥도 직관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직관의 범위가 직관되는 단순 명제에서 직접 연역되는 대상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규칙들』, 248쪽 주해 참조) 또한 직관과 연역, 매거는 각각 특성은 다르지만,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사유운동 속에서 보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방법의 적용 과정에서 상호작용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5매거(열거)

“그리고 끝으로,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매거(枚擧)와 전체에 걸친 통관(通觀)을 어디서나 행 할 것”(『방법서설』, 20쪽)

“지식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계획에 속하는 것은 지속적이고 면밀히 검사해야 하고, 충분하고 질서 잡힌 열거로 그것을 파악해야 한다.”(『규칙들』, 48쪽)

위의 사례)1의 ④3, x, y, z 48→x 6, y12, z24에서 각각 y를 비례중앙으로서 12를 구했다면 각각 분리하여 xz를 구한 다음 열거하여 빠뜨린 것은 없는지, 전체적인 배열관계에 합당한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열거는 분산되어 있는 것을 추론하는 복잡한 연역의 일종이기도 하면서 확실성을 검증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3.마무리하며

 데카르트의 방법은 치밀하고 정확성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위 2-1에서 보다시피, 이미 데카르트가 수학적 원리를 다른 학문에 적용하려 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이 철저함을 시도한 원리는 명증적인 것을 진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전제 한 후, 차근차근 계단을 밟듯이 확장, 상승되어 나간다. 소부분으로 나누는 단순화를 시도한 다음 이것을 다시 합성(연역)하고 열거로서 확인해간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방법의 원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중세와는 달리 이성에 대한 믿음 속에서 나온 결과라 하겠다.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몇몇 단순 명제들을 직관적으로 통찰한 다음, 이것들로부터 어떤 것을 도출하려고 할 때 유익한 것은, 이 명제들을 지속적이고 단절되지 않은 사유운동으로 두루 살피고, 이것들 간의 상호 관계를 반성해보며, 가능한 한 동시에 많은 명제를 판명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인식은 더욱 확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정신의 역량 또한 상당히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규칙들』,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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