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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의 부리 - 갈라파고스에서 보내온 '생명과 진화에 대한 보고서'
조너던 와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추천 / 이끌리오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참새만한 새. 몸무게 22.2g인 작은 새. 남미 에콰도르 남서쪽에 있는 갈라파고스 군도에만 살아서 갈라파고스핀치라고도 불리는 독특한 새. 다윈이 진화론을 내세울 때 큰 도움을 주어서 다윈 핀치라고도 불리는 유명한(난 잘 몰랐지만 이 책을 보면 꽤 유명한 것 같다) 새. 그 새가 '핀치'이다.
'진화' 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코끼리의 조상인 맘모스, 오래된 화석을 고운 솔로 조심스럽게 털고 있는 고고학자들이 떠오른다. 만 년이나 그 이상의 시간을 걸쳐야만 조금조금씩 진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화를 눈으로 본다는 건 생각도 못 했다.(다윈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증거가 없기 때문에 머리 속에서만 맴도는 이론 과학으로만 그쳤었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면 진화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진화는 '항상'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에게 퍼져 있던 커다란 오해, 즉 진화는 느리다와 진화는 볼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뜨린다.
진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진화론의 증거가 된다. 사과가 뉴턴의 증거이듯 핀치의 부리가 진화론의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진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지금도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책에서는 인간이 모든 생명의 진화를 가속화한다고 조심스럽게 경고하고 있다.(진화 실험을 위해 대장균을 이용하는 장면은 윽 정말이지 더러웠다.) 이 책은 물론 진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내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생명체의 삶과 죽음,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긍정이든 부정이든) 생명의 창조 활동이었다. 그래서 더욱 읽을 만했다.
무인도인 갈라파고스 군도(얼마 전에 TV에서 갈라파고스가 더럽혀진다는 소식을 보기도 했지만)에서 연구를 해온 과학자 부부 피터와 로즈메리는 20여 년간 그곳에 살다시피 하면서 핀치를 관찰한다. 그리고 핀치의 부리가 자연에 선택되어지는 과정에서 변이, 즉 진화가 이루어짐을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은 참으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저자가 워낙 글 솜씨가 뛰어나서 마치 무슨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심심지 않게 나오는 삽화도 섬세해서 보는 맛도 있었다.
내가 평소에 존경해오던 최재천 교수님의 추천의 글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분 말씀처럼 '삶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며 도는가 보다. 진화가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