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평전 -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의 삶과 죽음
강주상 지음 / 럭스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92년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학생 시절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었다.

그 이후 영화로도 관람하였고 이휘소라는 이름만 들으면 웬지 모를 아련함과 서글픔이 가슴을 눌려왔다.

약소국에 태어나 보다 큰 공부를 위하여 도미한 이휘소 박사,  천재 과학자로써 세계 최고 선진국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알리고 우리 국민에게 한 줄기 빛이요, 희망이 되었던 이 박사, 조국과 민족의  서러움을 외면할 수 없어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자주국방의 완성이라 생각되어진 핵무기 개발에 목숨을 바친 진정한 애국 과학자...

이것이 내가 알던 이휘소 박사였다.

 

그런데 오늘 이휘소 교수의 직계제자인 고려대학교 강주상 교수님의 평전을 읽으니 이것은 모두 허구요, 창작이었다. 강주상 교수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기엔 너무나 정확한 자료와 이 박사의 가족들이 취한 행동및 이박사와 강교수의 관계는 철옹성과 같다. 이휘소 박사는 도미 후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 되어 갔다. 결혼에 홀어머니의 승낙을 바라는 편지가 아닌 통고의 편지가 갔었고 일부러 찾아온 대학동기에게 "HI"라고 인사하며 집으로 들어오게 하지도 않았다. 처음만난 사제지간으로 미국에서 처음만난 강교수와는 영어로 시작해 영어로 대화를 끝맺었으며 조규석이라는 학생에게 학위지도를 하다 너무 힘이 들어 한국학생을 배제하는 마음까지 가졌고 이 박사의 아내와 자제들은 한국말을 전혀 몰랐으며 된장찌개 조차도 결혼 후 한참이 지난 후 한국 유학생에게 방법을 배워 조리했으며 기어코 한국국적마저 버렸으니 그는 겉은 가난한 한민족이나 속은 위대한 미국인이었다.

예전에 신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1950-60년대에는 국내의 최고 실력파를 국비로 유학보냈다. 특히 이공계 분야에 많이 보냈는데 그것은 내일의 조국발전을 위한 초석이었다. 그 시대에는 비행기를 탄다는것이 영광이었고 미국에 간다는 것은 지금의 우주여행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허나 실제로 귀국하여 조국에 봉사한 이들은 10%가 되지 않는다. 가난한 조국의 배려와 눈물을 잊고 그들은 보다 나은 연구환경과 조건을 들어 조국을 배신한 것이었다."  결국 이휘소 박사도 위의 90%의 인물이 아닌가? 일신의 안위와 연구를 위해 가난한 조국을 열악한 연구환경이라는 이유로 저버린것이 아니냐 말이다.

미국 시민권자니 한국인도 아니요, 미국인이다. 우리는 한민족이기에 그를 한국인으로 보지만 미국인이 영국 국적을 취득하여 사망했다면 우리는 그를 미국인이라 보겠는가?

나는 이 책에서 과연 그는 천재였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허나 그는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있던 성웅, 진정한 애국자, 영원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大韓의 과학자는 아니었다.

이것이 진실이니 그 동안 소설에 의해 잘못된 사실을 안고 살아온 15년의 세월이 실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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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열정사이 2006-09-08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도 감수성이 예민하던, 어린시절에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보고,
이휘소박사님에 대한 마음속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었죠.
당신의 리뷰를 보고, 나도 그렇구나, 내가 알고있던 이휘소의 이미지가
거기서 끝났었구나를 책을 읽기전에 느낍니다.

무소속 2008-08-2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냐하면 애국보다 물리학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 내 나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에 관한 문제에 직면하는 한 존재의 실존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실제로 이휘소는 한국의 '입자물리이론' 대학원 교육에 관심이 있어서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만물의 이론을 추구하는 자연 철학자로써, 독재정권의 비합리성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유신체제가 시작되자 한국에 대한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기대마저 거두어버렸습니다.

지식과 감성 2010-09-2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책을 보면 이휘소박사가 미국유학을 가기 위해 받았던 장학금은
한국 정부나 한국의 어떤 장학회가 준 것이 아니라
<미국 공군 장교 부인회>가 준 것으로 나옵니다
만일 그 장학금이 한국에서 나왔다면
이휘소박사가
어떤 갈등을 했을지 여러 갈래 생각이 듭니다만 ..

2. 저는 그 분을 <한국의 물리학자>라는 카테고리에 국한 시키지 않고
<세계의 물리학자> 또는 <세계인>이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한국에 돌아오지 않은 그가 안타까우면서도
충분히 그의 입장이 이해되던데요 ...

만일 그가 한국에 돌아왔다면
열악한 연구환경 속에서
그가 제대로 연구해서
물리학 소립자 이론의 황금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현재 2010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의 연구 환경은 좋지 않습니다
미국의 페르미 연구소의 가속기
유럽 CERN의 입자가속기 강입자 가속기 등 ..
한국은 90년대 초반 포항에
작은 규모의 방사광가속기를 겨우 건립했을 뿐입니다 ㅠㅠ

기초과학을 보는 한국의 시각과
투자는 지금도 형편없습니다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