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실망이 있다.하지만 무엇에 대한 실망인지? 나 스스로는 조금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간신히 꾸며낸 질서를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닐지? 아마도 실망은 더이상 시스템에 속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침내 실망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이전의 나는 나에게 이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롭지 못함으로부터 나는 최고의 것을 거두었다. 그것은 희망이다. 스스로의 불행으로부터 미래를 위한 덕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지금 두려움은, 새로운 존재 방식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인가?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냥 매번 일어나는 일에 나를 맡겨두면 왜 안 되는가? 나는 우연이라는 성스러운 위험을 감수해야 하리라. 그리하여 운명을 개연성으로 대체하게 되리라.
<G.H에 따르는 수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