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물었지


어쩌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런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에게도 희망은 있어


*

내가 나일 뿐이라면

나는 너를 만날 수 없지


너가 너일 뿐이라면

너는 나를 만날 수 없어


나는 결코 나로서만 살고 있지 않아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모든 걸 나는 살아내니까


너는 결코 너로서만 살고 있지 않아

너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모든 걸 너는 살아내니까


이상하지 않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우리를 두껍게 만든다는 것


두렵지 않아?

결코 통과한 적 없는 시공간의 겹들이 우리를 무겁게 만든다는 것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수십억의 겹으로

부풀어 오르니까


수십억의 겹이

응축돼 단단해지니까


*

희망이 있느냐고

나는 너에게 묻는다


살아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상상하는 일


그런 것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희망은 있어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


한강 '2성부' <빛과 실>


한강을 읽으면 한강 읽으면서 버텼던 때가 떠오른다.

한강 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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