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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김별아 지음, 오환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지은이: 김별아
사진: 오환
오늘은 도서관에 왔다. 나름 직장인이라고 생색내며 하루 종일 집안에서 뒹굴 거리기 싫어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조그만 시립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도서관 주차장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시트를 누워 어제 저녁 두툼한 베개에 몸을 눕히고 읽다만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시중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과 나를 비교하며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2년을 공을 들였었다. 당시엔 나는 왜 글을 쓰는 지에 대해 수도 없이 되묻고 했었는데 이제는 왜 책을 읽는 지를 묻는다. 생각 없이 이유와 원인도 모른 체 그저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에, 아니면 아직까지도 건기에 조각난 논바닥처럼 세상의 전부를 ‘돈’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고 말랑말랑한 도덕과 양심 철학이란 생각들에 한 쪽 다리를 걸쳐놓고 있기 때문일까? 그저 긴 시간이 흘러가고 남은 물길과 같은 습관인 것일까? 나는 어떤 뚜렷한 목적을 지니지 않고 그렇게 책을 읽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글쎄, 아마도 지금은 여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퇴근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라디오에서 배철수 아저씨가 여지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언제고 ‘에지’ 있는 사람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현제는 여지 있는 사람이기에 책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을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읽다 문득 저자에게 “자신 있는가?”라는 물음이 튀어나왔다. 책을 읽을 당시부터 평가를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내 머릿속으로부터 느닷없이 튀어나온 이 말 한마디가 곰곰이 씹을수록 아득해졌다. 참으로 권위적이며 오만하며 폭력적이며 턱없이 얕은 생각이란 점에서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바로 이점이 내가 이 책으로부터 배운 한가지이다. “아무리 나의 눈에 도무지 쓰임새를 찾을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그것 나름의 쓰임이 있다. 단지 ‘나’가 그것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들풀도, 평생을 오체투지하며 살아가는 지렁이까지 그렇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이 소중한 것이다.”내 안의 골수까지 모두 서열화에 찌들어왔던 것 같다. 과연 무엇이 최고인가? 또 왜 그것이 최고인가? 최고가 되어야만 하는 건가? 등등의 물음을 너무나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는 반성을 해본다.
이 책의 화두는 여러 가지이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스스로 아름다움을 모르기에 위험한 십대, 사랑과 아픔 그리고 마음. 짐이자 힘인 아이와 가족, 시인이 되기보다 시인으로 살기가 시인으로 살기보다 시인으로 죽기가 더 어렵다고 말하는 시인과 시, 평균보다 단지 3년 빠를 뿐이란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죽음 등등 걷기와 산책하길 취미로 삼고 있는 저자가 시간을 마주하며 삶의 길을 걸어가며 잠시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사색한 그것들이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나뭇잎이 철마다 옷을 갈아입듯 그렇게 본인도 철이 들어감을 인지한 그녀의 속 깊은 생각과 이야기들이 난 참 재미있었고 공감도 되었다. 도심 속 아파트는 외부로의 안전한 보금자리이지만 상처를 치유해주는 공간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5년간의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온 지금 나 역시 느끼는 등 공통점이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마치 어느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기에 억압되지 않을 수 있는, 나뭇잎과 닮은 사람의 발자국이라 부르길 좋아하는 잔잔한 울림을 가진 인문학다운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글과 함께한 오환씨의 그림도 좋았다. 나는 시와 소설과 사진과 미술 등이 서로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같되 단지 표현의 수단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며 미술의 수단으로 극한에 도달한 이가 사진 역시 수월히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사진이 단지 피사체를 담는 것이 아닌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믿기에 그의 사진과 그의 그림에 존재하는 그의 이야기가 참 멋있었다.
남기고픈 메모.
“우리에게 자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온 몸으로 글을 껴안다.”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천천히 걸어갈 뿐”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간다. 무언가를 새기고자 한다면 힘이 들뿐”
“머리와 함께 고민은 자란다. 그것도 순리고 진리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만큼 고민이 자라 못 견디겠다면 다시금 살기 위해 머리를 자르면 되는 것이니까.”
“글은 쓰면 주관적이지만 읽으면 객관적이다. 나는 더 잘하려고 하지 않겠다. 난 인형이 아닌 사람의 글을 쓰고자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