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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악마의 바이올린> 2010 / 01 / 15.
조셉 젤리네크 지음 / 고인경 옮김. / 세계사 출판사.
뉴스 등에서 몇 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라고 하는 말을 그러거나 말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살아오던 나에게 드디어 사단이 일어났다. 운동화는 물론 양말까지 신지 않고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켓과 놀이터를 오고 갔던 것이 화근이었던지 발가락이 빨개지고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을 키우고 후회하듯 발의 심각성을 모른 체 한동안 “괜찮겠지” 라고 일관하며 방치하다 걷는 것도 불편해지자 그제서야 아차 싶어 족 욕 후 '방콕'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놈의 인간이 언제 나를 읽어줄까?" 하고 나의 손길을 기다렸을 <악마의 바이올린>에게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긴 언제고 읽었을 터이니 그다지 다행이라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어느 누구의 말처럼 시원한 귤은 없었지만 따뜻한 전기장판 위로 배를 깔고 누워 세 겹의 이불로 시간으로부터 나 자신을 엄폐하고 나서 그렇게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은 제목 그대로 엄청난 가격의 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명품 악기이지만 소유자를 모두 죽음으로 몰아가는 파가니니의 불길한 스트라디바리를 소재로 삼고 있다. 라라사발이라는 세계적인 음악가의 죽음으로 시작되어 살인 사건이 해결 되어 가는 과정을 서양 음악사(클래식이란 말은 정확할까 싶다. 컨버스도 청바지도 코크도 클래식이지 않는가?) 등과 함께 버무려 내는 책으로서 읽기에 나쁘지 않았다. 아니 재미있었다. 좋다고 느끼게 한 이유들을 하나씩 열거하자면 단연 섬세한 묘사를 꼽고 싶다. 마치 현장에서 인물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 묘사가 인상적이었고 중간 중간에 엄마와 아내를 잃은 부자의 처지 등에 동정심이 생기기도 했다. 결말 부분도 억지스럽기 보단 여운을 남겨주었다.
스타일 한 표지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책을 읽으며 “심각하다” 하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즐거움에 희미해진 아쉬움이 남는 것일 뿐. 순수하게 이야기에 집중해 냉정히 평가를 해보면 몇 가지가 눈에 띄기는 한다. 악마 등 우리가 믿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공감을 납득시키기 위해 저자는 루티에르(스포일러가 염려되어 인물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음)를 죽이는 선택을 하지만 그런 선택은 스트라디바리의 소유자의 죽음이라는 연속성에 장애물로 다가왔다. 또 중간 부분 영매가 등장 함으로서 사건을 논리적으로 추적해가는 것이 아닌 초현실적으로 해결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의 아쉬움도 가지게 되었다. 모 경위의 죽음과 그것을 긴장 강화로 이끌어내는 부분에서의 아쉬움도 있었고 세계 최 정상의 조 향 사가 단순 경위의 부탁에 만나 부탁을 들어준 것도 현실성이 조금은 조각나는 부분이었다. 이런 아쉬움이 있기에 차기 작이 더욱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어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스페인에 대해 자신 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기본 소양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 책으로 인해 통렬히 부서지고 말았다. 책의 공간적 배경은 스페인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스페인의 향기를 느껴보고자 했지만 조금은 부족했다.
음악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듣는다. 따라서 그 시대에 밀접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집시뿐만 아닌 스페인이 가진 역사와 전통 문화가 숨쉬는 그런 책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무리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끝으로 책을 읽으며 인기리에 종영된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MBC의 드라마가 떠올랐다. 서양 전통음악에 대해 호감을 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두 가지는 공통 분모를 가진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 자문해보자면 서양 전통 음악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가진다 하여도 지속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모름’에 있지 않나 싶다. 배경 지식이 없으니 음악이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닐까? 배경 없이 음악이 느껴질 수는 있는 것일까? 그저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