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형수 - 오늘도 살았으니 내일도 살고 싶습니다
김용제.조성애 지음 / 형설라이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마지막 사형수』 - 독서 후기. 
 

아마 이 말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P 23.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고 세상은 기뻐하였다. 그러나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영이 사건에 대한민국은 들끓었다. “얼굴을 공개해라!” “죽여라!” 사람들은 목을 높였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다시금 새로운 것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이름은 ‘마지막 사형수’.
조용제씨를 간단히 소개하면 <1991년 10월 19일 오후 4시경 여의도광장에서 시민들을 향해 차를 돌진시켜 어린이 2명을 살해하고 21명을 중경상에 빠뜨린 범죄를 저질러 사형을 선고 받았으며 이후 1997년 12월 30일 사형된 범죄자>이다. 이 책은 그가 하느님에게 고백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과연 사형이 잘못된 것일까? 책을 읽었지만 속 시원하게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철부지 대학 생인 아들은 군대에 가서 어머니 생각에 눈물 짓고 빨간 내의를 사온다. 일용직 노동시장에 나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 구두를 닦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이후에 눈물이 난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깨닫는 게 느릴 때가 있다.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에 스스로의 죄를 뉘우친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책을 보며 생각했다. “당신은 21년을 괴롭게 생활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얼마의 시간을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파괴된 삶을 살아야 하나?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는 별로 관대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스스로의 잘못을 주변의 책임으로 돌리는 그의 생각에, 몇 번이고 눈의 문제만을 꼬집는 그의 사고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논지는 펴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용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염려스러웠던 점도 있다.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요구하는 건 너무 잔인할 수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사형제도가 잘못된 것일까? 앞서도 말했듯 나는 모르겠다. 범죄를 저지른 그는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인간은 한계를 지닌다. 실수를 저지른 인간을 죽인다. 그런다고 무엇이 남을까? 또 그가 실수를 했다 해도 그의 인간이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생명권의 생사여탈권을 우린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그를 죽인다면 그가 어린이들을 죽인 것과 무엇이 다를까? 또 우리가 그의 상황과 전적으로 같았다는 상황을 전제한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또 우리 자신들도 비록 판결을 받지 않았을 뿐, 기소되지 않았을 뿐 무수히 많은 범법행위를 저질렀고 저지르고 있으며 저지를 것 아닌가? 양심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 자신은 이벤트처럼 여기지 않았나? 그가 그런 행위를 하기 이전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나? 그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그가 꿈과 이상을 가지도록 무엇을 해주었나? 나는 모르겠다.
이 책에는 조성애 수녀님이 나온다. 윤곽도 흐릿하게 어디에선가 책을 통해 만나 참 멋진 분으로, 인간애 넘치시는 분으로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던 그분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하느님과 수녀님에 대해 생각했다. 김용제씨가 하느님에게 죄 사함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여부는 모르겠으나 하느님께서는 그를 용서 해주실까? 그렇다면 신실하게 하느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과 그는 같은 그룹인가? 하느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범죄인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당당하게 용서를 받고 천국이라는 이상적 세상에 사는 것일까? 피해자 가족들도 자신의 아이가 천국에 있기를 바랄 텐데?
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와 인간 그 자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이 술을 진탕 마시고(술을 마시면 무능력자가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칼로 사람을 찔러 살해했다면 그 역시도 죄는 술을 진탕 마신 것에 국한되는가? 공소시효도 사라져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시기에 그것은 너무 관대한 것 아닐까? 또 수녀님이 죄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권한, 그래서 그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줄 권한을 지니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플하고 깔끔한 표지에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던 책이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았던 것 같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판단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원문 그대로(옮겨 적는 것이 아닌 이미지 그대로) 공개했으면, 심리분석 자료, 교도소 수감기록, 눈이 필요 없는 일을 찾아보려 했는지 등에 대한 재판 기록을 공개했으면 싶었다. 성적인 내용을 다수 수록한 그의 의식과 심리에 대한 분석 등등 책을 보고 그를 온전히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을 보고 그가 선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피해 유가족의 이야기가 없는데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상당한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그리고 한번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마주한다면, 혹여 그때에도 선과 악 옳고 그름 장단점의 양 갈래 길에서 고민한 이 글을 기억한다면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란다. 종교란 것이 모순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점들이 있다고 해도 오랜 시간 사람의 곁에 있었던 것인 만큼 옳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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