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았다, 그치 -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
이지은 지음, 이이영 그림 / 시드앤피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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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는 에세이 서적을 잘 읽지 않는다. 평소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을 좋아하는, 감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런 분위기의 책을 읽지 않은지 거의 몇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책을 펼치고 저자 소개를 보는데 쓰여진 문장이 좋았다.

노력으로 극복 불가능한 자연재해를 겁낸다.

예를 들면 병, 나이 듦, 그리고

'오래 머물지 않는 사람의 마음' 같은.

 

 

책 속에 쓰여진 문장은 저자 소개글처럼 간단하고 깔끔했다. 하지만 그 문장에 꾹 눌러 담겨진 마음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마음들, 생각들, 느낌들. 언젠가 누군가를 향했던 그리움과 사랑들. 그 마음이 모여진 책이었고 에세이를 읽지 않아 어색했던 나도 그래.. 그렇지.. 이런 생각을 나도 한 적이 있었지... 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운명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수많은 밤들을 까맣게 애태우는데.

-

이 시절을 나서는 길은 홀로 걸어야 하니까, 그 걸음 무겁지 않도록. 실컷, 후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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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직지 1~2 세트 - 전2권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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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책을 읽기 전에 줄거리를 비롯한 기본 정보들을 파악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직지>는 정말로 아무런 정보 없이 읽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어?" "뭐?" "우와" 이런 반응이 나왔다.

시작은 추리소설이다. 서울에서 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목엔 송곳니 자국이 있고 등엔 중세시대의 무기가 꽂혀 있었다. 피살된 피해자는 라틴어를 가르치다 퇴임한 교수였고, 생전에 중세 교황의 편지를 연구하곤 했다. 대체 그는 왜, 어떤 이유로, 도대체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살해당한 것일까.

추리소설에 적합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소설은 진행될수록 새로운 역사속 인물이 등장하며 점점 예측할 수 없는 경로로 나아간다. 작가는 금속활자를 중요하게 다루는데,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추리소설에서 시작해 한국의 문명 발전을 다루는 작가의 상상력과 소설 진행 능력이 너무도 출중해서 긴 호흡의 소설임에도 유연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역사 속 실재했던 어떠한 사실을 가지고 상상력을 덧붙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 독자로서 책으로 만나기에 은혜롭고, 작가적인 능력으로는 부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김진명 작가는 분명 소설을 썼지만 받아들이는 독자에겐 하나의 역사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읽는 내내 '이게 사실인가?'하면서 의문을 가진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까지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인가. 그 궁금증이 바로 이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만드는 특이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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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
이경미.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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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공부를 할 땐 적당한 소음이 있어야 하고, 온도는 약간 추워야 한다. 책을 읽을 땐 정적 속에 있는 것이 좋다. 그 정도의 구분만 하며 살았던 내가 '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 해 보았다.

사실 나의 관심사에 들어가지 않는 분야였지만, 그렇기에 읽을 때 더 흥미로웠던 것일 수도 있다. 그 중 가장 신기하면서 재밌었던 부분은 <오감으로 느끼는 '경험'을 설계한다> 부분이었다. 각 매장마다, 사용 용도에 따라 흘러 나오는 음악, 풍기는 향기 모두가 설계되었다는 것은 새삼 놀라웠다. 흔히 '스타벅스 매장 음악'이라던지 '편집샵 매장 음악' 혹은 '서점향 북퍼퓸'같은 것을 접해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체계적이고 진지하게 만들어졌다니.

" 보이지 않는 요소들에 대한 연구와 소비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공간을 방문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생각학, 매장이 아닌 우리 집에 손님을 초대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

경영 마케팅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지만, 그 공간에 들어가 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서비스 아닐까. 상품이 좋고, 음식이 맛있고, 그런 1차원적인 것에서 벗어나 내가 들어와 있는 이 공간이 만족스럽다면 충분히 좋은 소비이고 가치 있는 시간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어떤 매장에 들어가더라도 공간으로서의 매장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온도는 어느 정도인지, 흘러나오는 음악은 무엇인지, 풍기는 향기는 어떤지, 전체적인 매장의 톤은 어떤지 등등. 그러한 행동은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늘 모든 감각을 방치하고 매장에 들어가 살 것을 고르는 것에서 벗어나서 이젠 나름 찬찬히 즐길 줄 알게 되었는데 이 발전이 나에겐 아주 흥미롭다. SNS에 감성적인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지만, 공간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켜는 날도 있다. 판매자로서의 매장이 소비자인 나에게 바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누가 의도했던, 원했던 상관하지 않고 그저 내가 즐길 줄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좋다. 책을 통해 나의 감각이 확장된 것 같아서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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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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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위로가 아닌 다른 것이 절실할 때가 있다. 마음이 너무 아플 때, 우울해서 어디론가 파고 들어가고만 싶을 때, 속이 너무 끓어서 스스로 데일 것만 같을 때. "괜찮아" "다 잘 될거야" 라는 말이 듣기 싫은 순간이 있다. 물론 그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아가게끔 해줄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소위 감성 에세이라 불리는 책들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분명 그 책들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이제 나는 다정한 말들에 지쳐버렸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사로잡혀 나의 마음을 만져보려는 책들을 거절하게 된 것이다. 그런 나에게, 감정이 아닌 정신의학으로서 다가온 책이 바로 이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였다.

 

책 제목을 보곤 뜨끔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20대가 되면 멋지고 쿨하고 상처도 잘 받지 않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어린 내가 하는 고민이나 걱정 따위는 어른이 된 나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20대가 되어 사회에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내던져진 나는 어쩌면 어린 나보다 더 약했고 위태로웠으며 전혀 괜찮지 않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약한 스스로에게 연민과 아쉬움이 피어오르던 시기였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때 맞추어 다가와 준 딱 알맞은 책이었다.

 

"아주 대단하고 절대적인 사랑만이 나를 구원하고 치유해주는 것이 아니구나. 친구의 가벼운 위로, 지나가는 사람의 작은 친절도 삶의 숨구멍을 틔워주는 소중한 물꼬가 될 수 있고, 그것이 희망이 되어 바닥에서 다시 올라올 수 있구나."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하는 내용이 바로 이 것이다. 나에게는, 아픈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 꼭 위로의 말만이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며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강렬하고 결정적인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것.

죽고 싶은 이유가 10가지 있더라도, 살고 싶은 이유가 단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것에 기대어 살 수 있다. 정말 살 수 있나? 적어도, 최소한, 한 번 멈추게는 해주는 것 같다. 그 한 가지를 찾는 것이 어쩌면 삶의 유일한 목표이지 않을까. 내가 아픈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런 나를 스스로 보살펴 주는 것 또한. 책에 나오는 수많은 정신적 괴로움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한 순간에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 그게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고 나 또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낀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괴로움을 겪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아지느냐의 문제이다. 그 문제에 대한 해답과 위로가 아닌 다른 어떤 것, 나를 토닥이는 손길이 아니라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손짓, 그것들이 이 책 안에 담겨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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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이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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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시집은 여러 번 다시 읽는다. 이훤 시인의 시집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를 총 6번 읽은 걸로 봐서 이훤 시인의 글들은 내게 분명한 명암을 남겼다. 산문집을 내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산문집을, 그것도 '사진'산문집을 냈다는 소식에 기대감이 컸다.

사실 나는 글보다 사진이 더 많은 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사진을 보는 것보단 찍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의 작품을 보며 어떤 감상을 남겨야 하는지에 대해 어색하기 때문인데.. 이훤 시인에 대한 기존의 마음 때문인지 그의 사진들과는 비교적 친근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사진과 함께 쓰인 글은, 그의 말처럼 시인지 시가 아닌지 모호했는데 그 모호함이 좋았다. 아무런 부담이 없어서. 시를 읽을 땐 받아들이고 느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생기기 마련인데, 글쓴이가 나서서 그리 써주니 독자로서 훨씬 수월했다고 할까. 어쩌면 수월했기에 더 깊이 느낄 수 있었고 시라고 단정짓지 않았기에 더 시처럼 읽었다.

"매일 마주한다는 이유로 주목되지 못했던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中)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 하나로 이 책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이 책은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이다. 심지어 시인의 말을 빌릴 수 있다니!

책의 제목은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은 어쩌면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마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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