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는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이다. 부제를 보고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책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창비 청소년부에서 제안한 원고라고는 하지만 청소년이 아닌 어른, 그중에서도 나의 남은 생애의 대부분을 차지할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이 책을 집어 드는 것이 당연할 것이었다.
이다혜 기자, 아니 작가에 대한 깊은 신뢰로 책을 펼쳐 들었다. 그는 서문에서 말한다.
"어른들은 늘 모든 문제에 (정답대로 사는 것 같진 않아도) 확신을 가진 사람들로 보였으니까. 이제 알겠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확신하는 제스처 없이 버티기가 힘든 시간이 올 수 있다는걸. 좀 알겠다 싶어질 때면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 생긴다. 기회인 줄 알고 잡았던 것은 형체가 없었다. 불운인 줄 알고 주저앉아 울면서 꾸역꾸역 한 일이 쌓여서 후일 큰 성취의 튼튼한 기반이 되기도 했다."
나는 늘 '확신'에 집착했다. '이 일이 정말 내 적성에 딱 적합하는 일일까?' '이 일을 한다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까?' 사실 그런 '환상적인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늘 옳은 결정만을 하길 바랐고, 그러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저자의 표현처럼 주저앉아 울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하는, 해야만 하는 일. 그건 후에 큰 성취의 기반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 책은 부제처럼 일 잘 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직업을 발견한 경로를 인터뷰한 책이다. 이다혜 작가는 "이들의 경험을 레퍼런스 삼아 마음을 단단하게 키웠으면 한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온다는 것, 실패한 뒤 방향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오늘의 열심히 내일의 경력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이 말이 가진 힘을 실감하며 인터뷰를 쭉쭉 읽어나갔다.
그중에서도 문학을 공부하는 내게 가장 큰 용기가 되어준 글은 소설가 정세랑의 인터뷰였다.
"처음에는 글이 막혔을 때 좀 헤맸는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 쓰다가 막힌다는 말은 글이 문제가 아니라 덜 읽은 거예요. 관련해서 더 많이 읽고 더 자료 조사를 하고 더 많이 사람을 만났어야 했는데 그걸 못 했을 때 막히는 경우가 많아요. 아웃풋이 안 될 땐 아웃풋만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데 인풋을 조정해야 맞아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나온다 하면 과감히 쓰는 걸 아예 그만두고 관련해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다큐를 보고, 현장을 방문하고, 그 업계에 있는 사람을 만나고, 그런 작업을 하면 금방 풀리는 것 같아요. 100을 흡수해야 1을 쓸 수 있는데, 1에서 고장 나는 경우보다 100에서 고장 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창작 수업을 다녀 보면 생각보다 인풋이 안 된 채로 쓰려는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많은데, 인풋을 많이 하는 게 최선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터뷰를 읽고 있자니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다시 세워지고 있었다.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잠정적으로 정지되어 있던 어떤 것. 나를 움직이게 하고 용기 나도록 만드는 어떤 것.
가장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의 말을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새기고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환상을 키우고 싶지 않아. 내가 이렇게 될 걸 누가 알았겠어요. 그날그날 살아온 거지. 매일 성실하게 사는 것 말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다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만 계속 생각하면 되지 싶어요."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