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사의 전사와 조선군의 전멸-


숨을 멈춘 도리에몽은 적장의 몸통과 머리 중간에 가늠쇠를 맞추고는 목표를 향해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화약이 폭발하며 개머리판이 어깨를 강타했다. 탄환은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도리에몽은 탄환의 방향을 보고 명중임을 확신했다. 이윽고 탄환이 날아간 곳에서 검은색 갑옷이 휘청하고는 얼굴을 싸안으며 고꾸라져는 것이 보였다. 상대의 몸통이 꺾이는 것을 보자, 분노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방포 후, 곧 다시 총의 화약을 먹이고 있는데, 동료 야이치가 곁으로 달려왔다. 도리에몽은 야이치와 함께 고로를 질질 끌어 성벽 쪽으로 다가갔다. 사각 지역을 찾아 몸을 바짝 붙였다. 


“우우우, 으흐흐흑. 


고로는 통증이 더 심해지는지 연신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에 앞서 함성과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발은 있는 힘을 다해 화살을 연거푸 날렸다. 


“영감, 화살이 떨어졌습니다.


옆에서 화살을 집어주던 병사가 침통한 듯이 외쳤다. 


“여기까지인가?


첨사는 왼손에 들고 있던 활을 옆으로 던지고, 칼을 뽑았다. 


“물러서지 말고 쳐라. 


그는 성안에 들어선 왜군들에게 조선의 군민들이 쫓기는 것을 보고는 누각 위에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성 밖에서는 왜군 돌격대가 동문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고, 이미 북문으로는 왜군들이 대거 들어와 조선의 군민들은 점차 아래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동문마저 뚫리면 궤멸이다. 


병법을 잘 아는 그로서는 자신이 동문을 막아야 이응순이 북문에 집중할 수가 있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손수 동문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성안으로 몰려 들어 온 왜병들을 물리치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병사들을 지휘했다. 


“비장! 여기는 나에게 맡기고 북문 쪽에서 내려오는 왜병을 막아라. 


그는 성안에 왜병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고는 곁에서 자신을 호위하고 있는 비장에게 북문 쪽으로 향하라 재차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동문 밖의 상황을 살피려고 몸을 막 돌리는 참이었다. 멀리서 ‘타아앙’ 하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충격이 안면을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어이쿠.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얼굴쪽이었다. 붉은 피가 튀어올라 툭툭 아래로 떨어졌다. 왜군이 쏜 탄환이 얼굴에 박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몸의 맥이 풀리며 점차 의식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버티려 했지만 허리가 앞으로 기울어지고 무릎이 꺾였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엄청난 통증의 엄습이었다.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인생이 참으로 허무했다. 그리 애쓰며 살아왔던 삶이 이리 간단하게 끝날 줄이야. 불과 엊그제 절영도에 갔을 때만 해도 부귀와 영화는 영원할 줄 알았는데…오합지졸로만 생각하고 얕보았던 왜군에게 이리도 쉽게 당할 줄은 몰랐다. 


“장군, 장군!


측근장들이 애통해하는 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아수라장을 벗어나 혼자 멀리 떨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발은 머리를 흔들며 마지막으로 힘을 짜내려 애를 썼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끝까지 싸워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귀에도 겨우 들릴 듯 말 듯할 정도로 약한 호령이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부장들의 흐느끼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멀어졌다. 의식이 혼미해지자, 고통스럽던 통증도 사라지고, 세상 모든 일이 다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전신의 힘이 쓰윽 빠져나갔다. 머리가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들어 올리려 애를 썼는데, 머리는 이미 몸과 분리된 것처럼 제멋대로 옆으로 기울어지며 툭하고 떨어졌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은 흑빛으로 먹물지고, 의식은 아주 깜깜한 어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어둠의 세상이었다. 


“장군, 우리를 두고 먼저 가면 이 불민한 소인들은 어찌하란 말이오.


정발의 주검 옆에서 객장 이정헌과 장병들이 무릎을 꿇고 모두 통곡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미 북문을 뚫고 들어온 왜병 선봉대가 동문루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그들에게는 슬픔을 느끼고 간직할 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첨사의 주검을 눈앞에 대하고 있는 이정헌은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아 오름을 느꼈다. 자신을 거두어 주었던 정발에게 호의와 은혜를 느끼며, 언젠간 갚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첨사가 이렇게 허망하게 먼저 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장군, 소신은 이제 어쩌란 말이오. 장군. 


슬픔에 휩싸여 이정헌의 눈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분기를 못 참던 그의 눈에 성루로 다가오는 왜병의 모습이 비쳤다.

 
“내, 이 왜놈들을 죽이리라! 네 이놈. 


이정헌은 갑자기 노구를 일으켜 세운 후, 고함을 지르면서 곧장 접근해 오는 왜병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옆에 있던 장교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 칼을 뽑아 들고 누각을 내려선 이정헌은 경사를 이용해, 내려가는 힘으로 칼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공격을 받은 왜병 하나가 칼에 맞아 아래로 굴렀다. 왜병들은 내려오는 이정헌의 기세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발을 빼며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왜병들의 대오가 흩어졌다. 이정헌은 상대의 전열이 흐트러지자, 틈을 주지 않으려고 연이어 칼을 휘두르며 들어갔다. 뒤로 물러서 던 왜병이 허공을 가르는 이정헌의 빈틈을 노려 장창을 내밀었다. 예리한 창끝은 이정헌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그는 옆구리를 쑤시 고 들어온 창을 왼손으로 잡아끌었다.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으나, 이를 깨물며 창을 잡아끌었다. 왜병은 빙빙 옆으로 돌며 힘을 쓰며 버텼다. 연로한 이정헌이 힘에 겨워 주춤하자, 또 다른 왜병의 창이 등을 찌르고 들어왔다. 창이 등을 뚫고 들어오자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을 틀며 쓰러졌다. 쓰러진 몸 위로 왜병의 예리한 창날이 수없이 꽂혔다. 첨사 정발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휘장의 부재에 지휘 계통이 흐려진 조선의 장교와 병사들은 이정헌이 보여준 용맹과 왜군의 잔인한 모습을 보고는 분개했다. 


“쳐라! 저놈들을 쳐 죽여 원수를 갚아라!


모두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장교 하나가 고함을 치며 칼을 뽑아들고 누각 아래를 향해 쳐들어갔다. 그러자 누각 위에 있던 모든 장병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왜병들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그와 거의 같은 시각에 동문이 뚫렸다. 북문을 뚫고 들어온 왜군들이 동문의 빗장을 열어젖혔던 것이다. 
왜병과 육박전을 벌이던 이들은 북문과 동문을 뚫고 들어온 왜병들에게 좌우 전후에서 협공을 받았다. 군관들이 사력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성루를 내려간 그들은 하나 둘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다

 

제 40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