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진성>
조총과 첨사
정발
“북쪽이
뚫렸으니,
성의
함락은 시간 문제이다.
세차게
몰아쳐라.”
동문쪽
공격을 지휘하던 유키나가는 북문이 뚫렸다는 보고를 받은 즉시 중앙 공격을 맡은 직할 부대에게 분전할 것을 독려했다.
북문이
뚫렸다는 보고를 받고 조방장과 휘하 병력의 일부를 북문 쪽으로 보내놓은 정발은 동문루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동문을
노리는 왜군의 공격은 점점 거세졌다.
동문을
향해 몰려오는 왜군의 숫자만도 성안의 군사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군사였다.
게다가
이미 성안에는 북문을 통해 들어온 왜군들과 조선군이 육박전을 벌이고 있는 게 동문루에서도 보였다.
도저히
안과 밖에 서 협공해 오는 왜군을 쳐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러서지
말라.
끝까지
싸워라!”
점점
궁지로 몰려가는 상황이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지휘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고함을 내질러 병사들을 독려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자신의 무기력이 안타까웠다.
동시에
왜병들이 원망스러웠다.
“죽일
놈들!”
동문을
노리고 몰려오는 왜병들을 보며,
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런
그의 눈에 성벽에서 백보 쯤 떨어진 곳에서 왜장이 말에 올라탄 채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정발은
즉시 자신의 대궁을 왼손에 걸쳐 들고 육량전을 활줄에 걸었다.
그가
활줄을 당기자 활대와 활줄이 하나로 이어져 둥그런 원의 모양을 이루었다.
활줄이
코까지 당겨지자,
오른손을
놓아 활줄을 튕겼다.
“탱”
하는 소리와 이어 “쇄애액” 하며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다.
힘
있게 날아간 화살은 말 위에 타고 있던 왜장의 몸통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육량전을
맞은 적장은 휘청하더니 그대로 낙마했다.
“명중이다.
이놈들
내 활 맛을 좀 보아라.”
한
발 또 한 발 화살이 손에 잡히는 대로 활줄을 튕겨 냈다.
화살이
곧장 날아가 왜병을 쓰러뜨릴 때마다 그는 희열을 느꼈다.
“어떠냐?
이놈들아,
내
화살 맛이.”
그는
자신의 활 솜씨에 스스로 무아지경에 빠져 들어,
전투를
지휘하는 것보다 활 쏘는 데 정신을 빼앗겼다.
그러나
왜군은 쓰러져도,
쓰러져도
물러설 줄을 모르고 몰려들었다.
제
아무리 천하장사일지라도 쉬지 않고 강궁을 스무 발 이상 연거푸 당기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정발의
몸은 지쳐갔고,
화살도
떨어져갔다.
중과부적이었다.
“첨사
영감!
사태가
불리하니 우선 몸을 피했다가 훗날을 도모 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이다.”
왜군의
공격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비장(裨將-무관벼슬)이
정발 곁으로 다가와 성을 빠져나갈 것을 권했다. 정발은
그 자리에서 비장에게 호통을 치면서 화살을 활줄에 걸고 왜병을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왜적을
막아내지 못하면 내 이곳에서 무장답게 죽으리라.”
정발은
싸움이 시작되기 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목숨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오직
수성장으로서 부산진성과 생사를 같이 하기로 마음먹었다.
감히
누구도 더 이상 ‘몸을 피하라!’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편,
도리에몽은
총공격의 명령을 받고는 돌격대를 따라 성벽으로 향했다.
조선군의
화살이 계속 날아오긴 했으나,
그
기세가 처음보다는 많이 수그러들었음을 감지했다.
‘일단
성벽에 붙어야 한다.’
도리에몽은
앞쪽으로 뛰기 전에 화승에 불을 붙여,
성벽을
향해 우선 한방 날렸다.
타앙하고
탄환이
날아갔다. 북쪽
문이 무너지면서 조선군의 화살이 뜸해지긴했으나 거리가 좁아질수록 위험했다.
날아오는
화살을 맞으면 그대로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꾸물댔다가는,
명령을
거역했다는 죄로 군율에 따라 즉결처분이었다.
이판사판이었다.
죽으나
사나 성벽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조심은
각자의 몫이었다.
‘몸을
숙여,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도리에몽은
되도록 머리를 몸쪽으로 바짝 붙이고,
허리를
웅크린 채 성벽을 향해 뛰었다.
휘익,
휘익.
바람을
가르며 조선군의 화살이 귓전을 스쳤다.
돌격대
뒤로 같은 마을 출신 고로가 앞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고로!
조심해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성벽
위에서 날아온 조선군의 화살이 고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꿰뚫었다.
“어이쿠!”
소리를
내지르며,
고로가
화살의 충격에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이 보였다.
고로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땅바닥
위를 굴렀다.
“으아아아.”
고로의
비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려왔다. 도리에몽은
성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가던 방향을 바꾸어 사선으로 뛰었다.
몸을
바짝 숙이고 뛰었다.
뒹굴고
있는 고로의 오른쪽으로 붙어 자신의 몸으로 고로의 몸을 덮었다.
가까이에서
본 고로의 얼굴은 이미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가슴이
덜컹했다.
“고로,
정신
차려라.”
고로의
처참한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명치 한가운데서 불덩이가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오직 적개심과 살의가 뻗쳤다.
도리에몽의
눈꼬리가 위로 치솟아 올랐다.
“칙쇼(제기랄).”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변한 도리에몽은 철포의 총신을 앞으로 겨누고는 성벽 위를 빠르게 훑었다.
성벽
누각 위에 흑빛의 갑옷을 입은 적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대장급임을 직감했다.
“원수를
갚아주마!”
도리에몽은
납탄과 화약을 넣고,
바로
화승에 불을 붙였다.
적장의
머리 쪽을 노려 가늠했다.
적장은
덩치가 커서 노리기가 쉬웠다.
빗나가더라도
몸쪽 어딘가에 탄환이 박히면 치명상이 될 것으로 보았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하게.” 제 39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