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의 차

 

“장군, 북문이 무너졌습니다. 


정발은 북문이 뚫렸다는 보고를 받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언젠가 뚫릴 것이라고는 예측했으나,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정발은 왜병이 성으로 밀려들어 오는 것만 막으면, 언젠가 원군이 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성문이 뚫렸다.’는 말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도 같았다. 모든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자신과 성의 최후가 점점 눈앞에 선연히 떠올랐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초월한 것도 아니었다. 머릿속이 뿌옇게 변했다. 


“장군! 왜군이 물밀듯이 성안으로 밀려들어 오고 있습니다. 
“조방장! 여긴 나와 부사맹이 맡을 테니 군사들을 끌고 북문으로 가라. 


명령을 받은 이응순이 일부 군사를 끌고 북문 쪽으로 향했을 때는 이미 많은 왜군이 성내로 들어와 성내 여기저기에서 육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성루의 병사들은 나를 따라라. 


이응순은 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성문 안에 조선군 진영이 여기저기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부 병사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왜병들은, 돌격대는 물론이요 창으로 무장한 후방 부대도 이미 성안으로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왜병들은 멀리서는 철포를 쏘고 접근전에서는 길고 날카로운 창으로 조선군을 찔렀다. 활을 제외한 조선군의 무기는 왜병의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왜병의 칼은 날카롭고 예리해 그 살상력이 대단했다. 그에 비해 조선군이 들고 있는 창은 창대가 짧았고, 칼날은 무디어 그다지 날카롭지 않았다. 맨살을 치면 모를까 갑옷 위를 치면 자상보다는 타박상을 남기는 데 지나지 않았다. 왜병의 창은 조선군의 창에 비해 창대가 상당히 길었다. 육박전이 벌어지자 조선군은 자신들의 창 거리에 접근도 못하고 왜병의 길고 날카로운 창에 여지없이 몸통을 관통당했다. 장창의 공격을 피해 겨우 접근해 육박전을 벌이려 하면 이번에는 왜군의 날카로운 칼이 조선병의 목을 예리하게 긋고 지나갔다. 그들의 칼에 조선 병사들의 목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성을 사이에 둔 공방전에서는 창과 칼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 했으나, 각개전투인 육박전에서는 달랐다. 일본도의 위력은 뛰어났다. 한쪽 날이 날카롭게 서 있고 앞부분이 뾰족한 일본도로 왜병들은 허술한 복장의 조선군을 찌르고 베었다. 조선 병사들은 힘으로 대항했으나, 일본군은 칼과 창을 다룰 줄 아는 병사들이 많았다. 특히 사무라이 출신인 장교들의 칼을 다루는 솜씨는 뛰어났다. 몸에 걸치고 있는 군복에도 차이가 났다. 조선병사는 무명옷에 물감을 들인 군복을 입고 있었고 왜병들은 보병까지도 갑옷으로 무장을 했다. 무명의 군복은 왜군의 병장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조선군이 오랫동안 평안한 정세 속에 군사 훈련을 게을리하는 동안 왜병 지휘관들은 싸움터를 전전하며 실전을 통해 잔뼈가 굵었다. 백전노장들이었다. 이들은 허술한 복장의 조선군을 기술적으로 찌르고 그으며 베어나갔다. 게다가 조선군은 이미 철포의 위력에 기가 꺾인 상태였다. 접근전 중에도 이따금 터지는 철포 소리에 조선 병사들은 혼비백산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북문에 있던 어동이와 그 일행도 열어 젖혀진 성문을 통해 성안에 나타난 왜군들을 보았다. 


“어라, 성문이 뚫렸다 아이가?


왜군이 성안으로 몰려들자, 다급해진 사람들은 우선 돌을 집어 왜병들에게 던졌다. 왜병의 일단이 그들을 보고 창을 꼬나들고 다가왔다. 왜병들이 언덕을 올라 성벽 쪽으로 다가오자, 어동이와 몇몇 병사는 들고 있던 창을 휘두르며 맞서 대항했다. 그러자 왜군 쪽에서 조총이 발포됐고, 성벽 쪽에 있던 조선 군사들이 성문 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왜군들의 공격을 받고 병사들이 주춤하자, 처음부터 싸움에 적극적이지 않던 이빈열과 양반들은 왜군에게 대항은커녕, 그대로 창을 버리고 성벽을 타고 동문 쪽으로 도망쳤다. 같이 있던 하인들도 ‘내질세라’ 하고 그 뒤를 따라 뛰었다. 


“도망치지 말아라. 도망치면 오히려 먼저 죽는다.


장교 하나가 양반들과 하인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는 소리를 질렀으나, 공허한 메아리였다. 성안으로 들어오는 왜군들은 점점 늘어나 사방에서 나타났다. 


“야들아 도망가재이, 도망가,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카이. 


겁을 먹고 얼굴이 파랗게 변한 칠칠이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무기를 버리고는 언덕 아래쪽으로 냅다 뛰었다. 


“뭔 소리 하는교? 같이 싸워야제. 도망가면 어데로 간다고 그랍니까. 


양반들과 하인, 그리고 칠칠이 등 많은 사람들이 줄행랑을 치자, 성벽에 있던 어동이 그들을 제지하려 소리를 질렀다. 


“그마 하래이 그래 봤자 이제 끝나버렸다카이. 


돌쇠가 낙심한 듯 어동을 제지했다. 


“와아. 


조선병들이 전의를 잃었다는 것을 눈치챈 왜병들이 소리를 지르며, 언덕 위로 몰려들었다. 돌쇠가 먼저 무기를 버렸고 이를 보고 있던 어동도 들고 있던 창을 버리고 얼른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비는 시늉을 하였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도 모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한편 원군을 끌고 북문을 향해 올라오던 이응순은 이빈열을 비롯한 양반들과 하인 그리고 그 뒤를 허겁지겁 쫓아 도망쳐오는 칠칠이의 모습을 보았다. 칼을 뽑아든 이응순이 이들의 앞을 막아 섰다. 


“어디로 가느냐? 
“아, 아니 왜군이 성으로 밀려들어와 잠깐 피하는 길입니다요. 


이빈열과 양반들은 이응순의 눈을 피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뒤따르던 하인들이 우물쭈물 어줍게 변명했다. 


“네 이놈들 즉시 돌아서서 왜군과 싸우지 않으면 내 칼에 먼저 죽을 줄 알아라.


하인들의 쭈뼛거리는 말을 들은 이응순이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며 곧이라도 내려칠 시늉을 하였다.


“아이고, 살려주이소.

그러나 양반들은 못 본 체, 그대로 내빼 달아나고 하인들 몇이 칼을 보고 바로 무릎을 꿇고 빌었다. 뒤에 오던 칠칠이가 이를 보고는 이응순의 눈을 피해 시치미를 떼고 옆으로 비켜나려 했다.

 
“네 이놈! 너도 이리 오지 못하느냐!


이응순이 쭈뼛쭈뼛하는 칠칠이를 보고 칼끝을 겨누며, 큰소리로 외쳤다. 왜군의 모습에 겁을 먹은 그에게 그 말이 귀에 들어 올리 없었다. 칠칠이는 멈추기는커녕 냅다 아래쪽으로 뛰었다. 그러자 이응순은 민첩하게 몸을 돌려서는 단신으로 칠칠이를 쫓았다. 양반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도 어찌할 수 없어 부아가 치밀어 있었는데 칠칠이가 화를 돋우었던 것이다. 이응순은 이십 보 쯤 앞에서 칠칠이를 따라잡았다. 그는 칠칠이를 뛰어 쫓다가 거리가 좁혀지자 그대로 뒤에서 칠칠이의 등을 향해 칼을 내리그었다. 주저 없었다. 칼은 칠칠이의 오른쪽 어깨를 파고들어 갔다. 


“어헉! 어이구. 어이구.


칼을 맞은 칠칠이는 충격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넘어져 구르면서도 어깻죽지가 섬뜩함을 느꼈다. 넘어진 채, 어깨에 손을 대니 끈적끈적한 액체로 흥건히 젖어 축축했다. 손에 피가 잔뜩 묻었다. 곧 통증이 몰려왔다. 


“어이구, 내사마 죽겠네. 이게 뭐꼬?


어깨를 감싸고 뒹구는 칠칠이의 어깨에서 피가 계속 뿜어져 올랐다. 


“너!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싸움터에서 열을 이탈하는 놈은 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참형이다. 이놈아. 


이응순은 엎드러져 어깨를 잡고 바닥을 기는 칠칠이를 보고 일장 훈시를 하더니, 손으로 머리를 잡아 들어올렸다.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칠칠이는 이응순이 끄는 대로 머리를 쳐들고는 비스듬히 땅바닥에 앉은 형국이 되었다. 


“이야압. 


이응순이 기합을 모으기 위해 괴성을 지름과 동시에 칼이 번쩍 했다. 순간 칠칠이의 몸통이 툭 하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응순은 칠칠이의 수급을 손에 쥐고 들어 올렸다. 


“잘 보아라. 적을 두고 도망치는 놈들은 다 이렇게 될 것이다. 싸워서 왜적을 물리치는 길만이 살 길이다. 


이응순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칠칠이의 목을 도망치려던 하인들에게 내보였다. 곁에 있던 병사와 하인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모두들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덜덜 떨었다. 모두들 눈앞 에서 벌어진 끔찍함에 치를 떨었다. 


“자 나를 따라라. 병사들은 뒤에 쫓아오면서 이놈들이 도망 못 가도록 하라. 


이응순은 칠칠이의 목을 가볍게 휙 집어 던지며 하인과 장정들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앞장서 북문 쪽으로 향했다

 

제 38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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