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

 활과 조총

 

5월의 햇살이 진막에 꽂아 놓은 깃발의 창촉에 직선으로 내려와 꽂혔다. 햇볕을 받은 창끝은 하얗게 반사해, 그 날카로움을 더 했다. 유키나가는 언덕 위에 본진을 치게 하고 그곳에서 공격을 지휘했다. 각 대에서 보내진 전령들이 뻔질나게 유키나가가 있는 본진으로 달려와 보고를 하였다. 


“주군! 선봉대로부터 공격 명령을 내려달라는 재촉입니다. 


부산진성 쪽을 유심히 바라보던 유키나가는 나무 의자를 박차 듯이 벌떡 일어섰다. 싸움을 막기 위해 앞서 선의로 보낸 ‘가도입명(假道入明)’에 대한 조선쪽의 답서에는 진의가 없었다. 


‘시간을 끌기 위한 잔꾀에 불과하다. 
“선봉대에게 전하라. 총공격하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즉시 돌격해 성을 함락시키도록 하라! 

 

유키나가는 선 채로 손에 들고 있던 지휘채를 앞으로 내밀어 부산진성을 곧장 겨누었다. 공격 신호였다. 


“총공격이다! 


유키나가는 공격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화평 교섭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동시에 군막을 뒤로하며 마음속으로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천주교도로서 되도록 살생을 피하려 했으나, 상황은 그에게 머뭇거릴 여유를 주질 않았다. 돌격대로 나가있던 도리에몽에게도 전투 명령이 떨어졌다. 사격의 정확성과 담력을 인정받아 첫 번째 열에 배치된 도리에몽이었다. 철포대는 명령을 받자마자, 즉시 조총에 화약을 먹이고 화승에 붙일 불씨를 살렸다. 
철포대가 발사 준비를 끝내자, 이를 확인한 지휘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공격하라! 꾸물거리는 놈은 이 칼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철포대 뒤에 있던 지휘장이 앞으로 나서며 칼을 뽑아들었다. 지휘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지휘장을 따라 돌격대는 성벽을 향해 진격했다. 멀리 보이는 성벽 위에 금박으로 수놓은 조선군의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 보였다. 성벽까지의 거리는 약 이백 보 정도였다. 
세열로 벌어진 각대는 선봉장을 따라 길게 대형을 이루며 진격을 시작했다. 


“철포대 앞줄 전진 사격! 


도리에몽의 뒤쪽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에 따르지 않고 꾸물거렸다가는 즉결 처분으로 목이 떨어져 나가거나, 나중에 추궁을 받게 된다. 이를 잘 아는 철포대의 첫 열 병사들은 튀듯이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성벽을 향해 조총을 겨누었다. 도리에몽은 불씨를 살려 오른손에 들고 있던 불씨 심지를 화승에 붙이기 쉽게 고쳐 잡았다. 


“지직. 


불씨 심지에서 불꽃이 일었다. 열 뒤쪽에서 다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벽 위를 조준하라! 


도리에몽은 총신을 위로 올리며 성벽을 겨누었다. 철포의 총구 위를 통해 목표를 가늠하고 있던 그의 시야로 돌담으로 쌓아올린 부산진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성벽은 그리 높지 않았다. 언뜻 보아도 난공불락의 성은 아니었다. 일본의 성과는 사뭇 다른 모양의 성이었다.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성이라기 보다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한, 목적이 애매한 읍성처럼 보였다. 
일본의 성은 그 목적이 분명했다. 주민 통치보다는 외부의 습격이나 공격을 막기 위한 성이었다. 백성보다는 영주를 보호하기 위한 성이었다. 영주가 거주하는 천수각을 중심으로 성곽이 비스듬하고 날카롭게 높게 솟아있었다. 적이 성문을 통과한다 해도 입구에서 천수각으로 이르는 길은 갈지() 자 모양으로 꾸불꾸불 장벽이 쌓여 있었다. 병사들은 그 위에서 침입하는 적병을 쉽게 공격할 수 있었다. 일시적으로 성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천수각을 방어하면 영주를 보호할 수 있었다. 영주가 살아있는 한, 싸움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성은 외형에서부터 난공불락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부산진성은 안과 밖을 구별해 놓은 석벽 울타리에 지나지 않았다. 영주를 보호하기 위한 천수각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정자 모양을 한 누각만이 성벽 위에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도리에몽의 생각으로도 성의 공략은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두둥둥, 두둥둥. 


왜군의 움직임이 기민해지자 성 쪽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발포하라! 


철포대를 이끌고 있는 지휘장의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도리에몽을 필두로 첫 번째 대열에 있던 조총수들이 손에 들고 있던 불씨를 화승에 당겨 불을 붙였다. 


“지지직. 


화승이 타들어가며 화약 냄새가 코를 스치자, 곧바로 타앙하고 철포에서 총알이 튕겨나갔다. 


“타타타타, 타타탕. 


동시에 굉음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철포에서 터져 나간 총알은 납탄임에도 성벽에 부딪치자 돌파편을 튕겨냈다. 그와 동시에 성벽 위에 있던 조선군 몇이 휘청하면서 성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격을 마친 도리에몽은 다른 조총수 들과 함께 빠르게 뒤쪽으로 이동했다. 장전을 위해서였다.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타타타타탕, 타타탕. 


두 번째 열에 있던 조총수들의 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한편, 성벽 위에서 활에 화살을 걸고 거리를 재고 있던 조선군들은 왜군의 선제공격을 받고는 기겁했다. 


“타타탕, 타타탕. 


굉음과 함께 성벽의 파편이 튀어 나가고, 총탄에 맞은 동료들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허둥지둥 댔다.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성벽 밑으로 바싹 꼬나 박았다. 도리에몽은 열을 바꿔가면서 세 차례 철포에 불을 댕겨 발포했다. 철포가 연이어 발사되자, 성벽 위로 머리를 내놓은 조선군은 없었다. 조선군의 사기가 뚝 떨어진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일단 기선 제압에 성공한 것이다. 싸움터에서는 어느 쪽이 기선을 잡느냐에 승패가 갈린다는 것을 전투를 통해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뿌우웅.


돌격 나팔소리가 철포의 굉음 사이로 들려왔다. 공격은 쉴 새 없었다.


“돌격. 돌격하라!


선봉장이 다시 앞으로 나서며 돌격을 외쳤다. 그 뒤를 따라 창으로 무장한 창병들이 철포대 앞으로 튀어나갔다. 


“우와와와, 우아아아,


노도와 같은 기세였다. 돌격대가 성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철포대는 일단 사격을 멈추었다. 뒤쪽에서 싸움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조선 군사의 고함과 북소리, 퉁소 소리가 급하게 울려 퍼졌다. 조총 공격에 놀라 성벽 밑으로 머리를 처박고 있던 조선군이 철포대의 발사가 뜸해진 것을 알고 다시 기세를 올린 것이었다. 
조선군 궁병들이 일어서서 화살을 날렸다. 처음에는 한두대씩 간간이 날아오던 화살이 점차 늘더니 빗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앞으로 뛰어 나갔던 돌격대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지만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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