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즉생, 생즉사-                                                                                                                                           정발이 입을 다물고 있자, 이정헌이 재촉했다. 
이정헌이야 처음부터 왜병의 침략을 예측하고 죽을 각오로 문신에서 무관으로 변신한 인물이었다. 왜군과의 일전을 벌여 싸우다 죽더라도 아무런 회한이 남을 리 없었다. 오히려 장렬한 전사를 갈구하였다. 그것만이 조선의 충신이 할 일이라 여겼다.


“항복은 없다. 그러나 시간을 벌 필요는 있다. 저들에게 ‘가도입명’은 상감의 허락 없이는 불가하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상감의 허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서찰을 적어 보내라! 


정발은 삶에 대한 애착을 끊고 마음의 흔들림을 다잡았지만, 그렇다고 승산 없는 싸움에서 무작정 개죽음을 당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을 벌어가며 왜군의 공격을 지연시키면 시킬수록 유리한 것은 이쪽이었다. 
왜군들이 자신의 서찰을 받고 공격을 지연시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물에 빠진 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발로였다. 


‘전투에서는 숫자보다 사기가 중요하다. 사즉생, 생즉사(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생에 대한 애착을 떨쳐내려 애를 써도 가슴속 저 깊이 숨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내면의 두려움을 억누르기 위해 자신에게 일러 깨우치듯이 정발은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성을 둘러싸고 있는 완전무장을 한 왜군의 대규모 정예 병력은 천하의 제갈공명이 온다 하더라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대군임이 분명했다. 일당백의 죽을 각오로 싸운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도저히 수적으로 싸움이 될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되도록 시간을 벌어 원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정발로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한 가닥 희망이었다. 급히 치계를 적어 조정과 절도사에게 파발을 올려보냄과 동시에 주변 지역인 울산, 동래에 대규모 왜군의 침입을 알리며 원군 요청을 위한 파발을 띄운 터였다.


“모두들 제 위치를 사수하도록 하라. 왜놈들의 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물러서지 말고 죽을 각오로 막아선다면 성이 호락호락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조만간 반드시 동래와 울산에서 구원이 올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미 흑색 갑옷을 몸에 두르고 있던 정발은 흑색 투구를 머리에 썼다. 그리고 성루 한쪽에 간단하게 차려놓은 제단에 향을 피워 올리도록 한 후, 예를 올렸다. 


“천지신명께 비옵나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고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저 왜적을 기필코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성을 지켜내어 이 불쌍한 백성들의 안녕을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천지신명이시여, 종묘사직과 부디 이 어린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주십시오. 


그리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세 번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했다. 
종묘사직에 대한 제례가 끝난 후, 성벽에 붙어 경계를 하고 있 는 장병들을 내려다보고는 큰소리로 격려했다. 


“조선의 군민이여. 저 아귀 같은 왜놈들을 두려워할 것 없다. 굴복하지 않고 힘을 합쳐 분투한다면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여기는 우리의 성이다. 승산은 우리에게 있다. 힘껏 싸워라. 왜적의 목을 따 공을 세우는 자에게는 그 공적을 크게 치하할 것이다! 
“와아, 와아. 


군민들의 함성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제 35화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