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 폭풍
전야
“이자
우짜믄 좋노?”
“니는 뭐 하노?
퍼떡
가재도구를 챙기라카이.”
성
밖 백성들은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긴가민가하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사들이 몰려나와 난리가 터졌으니 빨리 성안으로 피하라고 하자,
무얼
어찌할지 몰라 허둥댔다.
“뭘
챙겨야하노?”
“식량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나!”
“어매요,
아부이요,
아앙,
어엉.”
어른들은
급한 마음에 서로 소리를 내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
통에 애지중지하던 가재도구가 깨져 바닥에 뒹굴었다.
이를
본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겁을 먹고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야,
이노므
가시내야.
니는
동생들 챙기지 않고 뭐하노?
퍼떡
챙겨 손 잡고 쫓아오지 않으믄 쥑는데이.
퍼떡
손 잡으래이.”
이미
보따리를 싸들고 피신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모두
마음이 급했다.
간단한
가재도구만을 머리에 이고 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게
위에 바리바리 이불까지 잔뜩 싸들고 오는 이도 있었다.
부산진성으로
들어가는 길이 피난민들로 줄을 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잔뜩 겁을 먹었다.
부모의
옷깃을 놓치지 않으려고 돌돌 말아 꼭 쥐어 잡은 채,
뒤를
따랐다.
멸치잡이를
나갔다가 왜의 대선단을 보고 기겁을 하여 돌아온 어동이 일행도 가족들을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왔다.
“절놈의
짜식들이 은제나 돌아갈라나?
제길
멸치 잡아 논 거 다 썩히게 생겨 아까바 죽겠데이.”
가볍게
꾸민 행리를 등에 지고 성 쪽으로 향하는 어동이가 투덜거렸다.
“내
말이 그 말 아이가.
모처럼
한 배 가득 잡았다 카이 이 난리 아이가.
그래도
버리지 않고,
대충
널부러 놓았으니 절로 잘 마르지 않겠나?
마,
난리가
한 달이 가갔나,
두
달이 가갔나.
금방
끝나지 않켔나?”
칠칠이가
달래는 투로 말하자,
“하,
성님은
속도 편하네.
글고
뒤집으며 말려야지 그냥 두면 잘 마릅답니꺼.”
크게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괜히 언성을 높여 어동이 칠칠이에게 불평하자,
옆에
있던 돌쇠가 한마디 했다.
“지금,
멸치가
문제가 아니레이?
왜놈
배들이 저래 많은 걸 보믄 심상치 않데이.
분명
큰 싸움이 될 게 뻔하데이.
암튼
성이 무너지면 우리 목숨이 다 날아갈 판인기라.
어동이
니도 고깟 멸치 타령 그마 하레이.”
성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피난 가는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곳곳에
뽀얗게 흙먼지가 일었다.
성문
앞에는 창을 든 군졸들이 양옆으로 서 있었고,
벙거지를
쓴 군관이 병졸 몇을 데리고 성으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눈으로 하나하나 검문하고 있었다.
거동이
수상쩍거나 낌새가 이상한 사람은 곧바로 짐 검색이 이루어졌다.
병사들은
창으로 겁을 주면서 보따리를 내려놓게 하고 짐을 뒤졌다.
피난민
속에 숨어있을지 모를 왜군 첩자를 색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동이
일행은 큰 제지 없이 성안으로 들어섰다.
성안에는
벙거지를 둘러 쓴 병졸들과 철릭을 입은 군관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움직였다.
무명옷을
입은 남정네들이 성벽 근처에 모여 웅성웅성댔다.
그들은
그나마 돌아가는 상황이라도 귀동냥하려고 몰려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도 군복을 입고 벙거지를 쓴 정병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병졸들이
을마 안 되는 갑네,
저걸로
싸움이 되겠나?”
“글게
말이라.
대립인가
뭔가로 니도 내도 다 빠지니 뭔 정병이 있겠노?”
“그라먼,
우리라도
함께 싸워야 되는 거 아이가?”
그들이
웅성댈 무렵 이미 철릭을 입은 장교가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들은
성루 앞으로 모여라.
지금
즉시 모여라.
첨사의
명령이다.
거역하는
자는 경을 칠 것이다.”
어동이는
혈혈단신이기에 움직임이 간편했지만 다른 일행은 식구들이 붙어 있었다.
어동이가
먼저 동문루로 나갔고,
돌쇠와
칠칠이는 부리나케 가족들을 안쪽에 있는 마을 근처로 데려다 놓은 후,
나중에
성루로 다가와 어동이와 합류했다.
“장정들에게는
모두 병장기를 나누어주고 성벽에 배치토록 하라.
싸움에
대비하여 아낙들도 돌 등을 나르고 취사를 돕도록 하 라.”
정발은
대병력의 왜적을 막기에는 성안의 군사 수만으로는 중과부적임을 절실히 느꼈다.
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마저도 중요했다.
첨사
정발은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군민 총동원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장정뿐만 아니라 아낙들도 도움이 된다면 동원할 수 있도록 영을 내렸다.
군령은
엄격했다.
거역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해도 무방했다.
첨사의
영에 따라 군관과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모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동원 대상이었다.
총동원
태세에 따라 장정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주기 위해 장교들은 병사들을 시켜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오도록 했다.
동문루
아래쪽으로 마당이 넓게 퍼져있었는데,
그
마당으로 무기고에서 꺼내온 창과 활,
화살,
장도
등이 어지럽게 놓여졌다.
길이가
짧은 승자총통도 놓여 있었다.
승자총통은
화약을 사용 해야 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다루질 못했다.
그러니
일반 장정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병장기는 창과 활,
화살
정도였다.
그러나
활도 평소에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다루면 그 위력과 명중률이 낮았다.
결국
일반 백성인 장정들이 훈련 없이 곧바로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무기라고는 창밖에 없었다.
그런데
동문루 앞 마당에 놓인 창은 한눈에 보더라도 열을 지어 서 있는 장정들의 수보다 턱없이 부족했다.
“우선
창부터 지급하라.
줄을
세워 순서에 따라 나누어주도록하라.”
장정들의
수와 무기의 내용을 대충 어림짐작으로 파악한 장교가 병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줄을
똑바로 서라.
줄을.”
“상민들은
이쪽 줄로 서라.”
“진사
어른과 양갓집 분들은 이쪽으로 서십시오.”
성내에서
거주하는 양반들 중에서 왜병의 침입 소식을 듣고,
동문루
앞에 모여 들었던 자들이 몇 있었다.
양반가
자제들로 젊은 사람들도 몇 끼어 있었다.
임금을
곧 하늘로 여기고 그 임금에게 성은을 받아 충성을 지조로 삼고 산다는 양반들이었다.
그들
중 지방 향시인 초시에 합격해 마을에서는 진사 대접을 받는 이빈열이라는 자도 끼어 있었다.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면 전시(본시험)에
급제하지 않아도 공을 인정받아 벼슬의 기회가 주어질지 모른다.’
이빈열은
초시에 합격한 후 전시에 번번이 낙방해 벼슬길이 멀어지는 것 같아 전전긍긍하고 있던 터였다.
문과
지망이라 병법을 알 리 만무하고,
키는
큰 편이었으나,
삐쩍
말라 기운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
눈꼬리가
위로 쪽 찢어져 올라있고,
콧날은
야트막하게 서 있으나,
콧등이
길어 입 아래까지 뻗어 있었다.
입은
옆으로 주욱 찢어져,
언뜻
보아도 인상이 표독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날카로워 힘없는 병아리를 노리는 음흉하고 포악한 쥐새끼의 면상으로 아주 탐욕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싸움이야
아랫것들 시키고 난 뒤에서 적당히 몸조심하면서 대처한다면 싸움이 일어난다 해도 그리 위험할 것도 없으리라.’
구국의
충정으로 참가한 양반가의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빈열과 같이 출세의 기회를 잡으려 하인들을 끌고 참가한 양반도 더러 있었던
것이다.
“자,
지금부터
창을 배급할 테니 받으시오.”
병사들은
양반들과 그 자제들이 서 있는 줄로 가 먼저 창을 지급했다.
창을
받아 쥐고 찔러보는 시늉을 하는 자도 있었지만,
창을
쥐는 법도 몰라 창을 받아들고는 망연자실 우두커니 창날만 바라보는 자도 있었다.
“잘
드는 창으로 주시게.
그리고
여기 아이들은 내가 데려온 하인들이니 이들에게도 창을 주도록 하게.”
장교는
나이 차이도 없어 보이는 이빈열이 하게 소리를 하자,
기분
나쁘다는 듯 한번 흘긋 쳐다보고는 차갑게 대꾸했다.
“순서가
있소.
양반이
먼저니,
하인들은
남으면 주리다.”
양반들에게
창을 지급하고 나자,
장교는
눈대중으로 남은 창을 흘끗 세더니,
양민
장정들이 줄을 서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힘깨나
씀직한 자들을 찍어내듯이 불러냈다.
“너,
너,
그리고,
너….
앞으로
나와라.”
손가락질을
받은 장정들은 하나둘 앞으로 나왔다.
어동이도
장교의 지명을 받았다.
그들에게
남은 창이 지급되자,
창은
동이 났다.
그러자
무기를 못 받은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앞으로 나서서는 활과 화살,
승자총통
등을 닥치는 대로 주워들었다.
“그
총통은 너희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니 놔두어라.
무기가
없는 사람들은 창이 모자라니,
각자
집으로 가서 곡괭이와 쇠 도리깨 등 뭐든지 농기구라도 들고 나와라.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무기가
턱없이 부족함을 안 장교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고육지책으로
장정들에게 빈손보다는 농기구라도 있는 게 낫다는 투로 남의 말 하듯이 말을 이었다.
“성
밖에서 온 사람들은 우째 하라꼬예.
도로
성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창을
못 받은 돌쇠가 따지듯 퉁명스럽게 묻자,
장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백성들은 여기 그대로 있거라.
다른
사람들이 가져오면 그걸 받아쓰도록 하라.
대신
성내에 사는 사람들은 무기가 될 만한 건 뭐든지 가져오도록 하라.
지금
즉시 움직여라.”
장교는
임기응변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농기구를 가져오게 하고는,
돌쇠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제 3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