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진성> 첨사 정발
“왜군이
육지로 올라와 해안가에 진을 쳤습니다.”
정탐꾼들이
탐지한 왜군의 동태가 첨사 정발에게 속속 보고되었다.
“진을
치고 있다니,
곧바로
쳐들어 올 의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첨사
옆에 있던 이정헌이 왜군의 움직임을 예상하며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정발은
굳어진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응답했다.
“왜군이
해안가에 진을 친다니 밤에 기습 공격을 하는 것은 어떻겠소?”
“군사
수에서 불리하니 기습 공격을 하여 적의 예봉을 꺾는 것도 좋은 병법이긴 합니다만,
실패할
경우도 대비해야 합니다.
만일
기습에 실패한다면 뒷일을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농성을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상책일 수 있습니다.”
첨사의
질문에 이정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습에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순간
정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발과
이정헌의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조방장 이응순도 농성전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섣불리 이정헌의 의견에 동조했다가는 상관인 정발의 미움을 받기 십상이라 슬쩍 말을 돌렸다.
“장군!
지휘소는
어디로 정하면 좋을는지요?”
“그래,
지휘소를
정해야지….
어디가
좋겠느냐?”
“왜병들이
부산포 쪽에서 밀려올 테니,
동문루가
좋을 것 같습 니다.”
“오,
그럼,
동문루를
지휘소로 하고 전투 준비를 하여라.”
첨사
정발은 잠시 기습전을 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이정헌의 건의를 받아들이고는,
즉시
동문루를 지휘소로 정했다.
정발은
왜병의 침략을 이제 더는 부인할 수 없음을 실감했다.
‘이제
더 꾸물거릴 틈이 없다.’
성벽
안쪽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동문루가 지휘소로 정해지자,
누각
양옆으로 장막이 넓게 쳐졌다.
그리고
난간에는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이 자수로 새겨져 있는 황색의 대장기가 꽂아졌다.
지휘장의
처소를 알리는 표시였다.
“군사들을
모아 성벽에 배치하라.
그리고
무기를 점검해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라.”
농성이
결정되자 모두 수성 준비에 분주했다.
첨사
정발도 지휘관으로서 지휘 계통과 군사 배치를 확인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한시가
아까워 직접 거처에 들르지 않고 하인에게 자신의 갑옷과 투구를 지휘소로 가져오도록 했다.
그리고
성벽 너머로 시야가 탁 트인 성루로 올라가 그곳에서 갑옷으로 갈아입고 무장을 했다.
흑색으로
물들인 갑옷과 투구였다.
백성들은
흑색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그를 보고 ‘흑의 장군’이라 불렀다.
“성벽
밑에 파여 있는 해자에 물을 가득 채워놓아라.”
“영감!
아직
성 밖에 남아있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전령을 띄워 모두 성안으로 피신하게끔 재촉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이 그대로 있다간 왜군들에게 모두 참살을 당할 것입니다.”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리에 성안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이 혼란스러웠다.
농선전에
대비한 준비와 지휘에 정신이 없던 정발에게 이정헌이 성 밖 백성들을 염려하여 건의했다.
“알겠소.
내가
분주하니,
부사맹께서
군관을 시켜 성밖 백성들을 모두 성안으로 피신시키도록 하시오.”
첨사의
명을 받은 이정헌은 즉시 군관들에게 명령하여 성 밖 주민들이 피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해안가에
묶어놓은 군선들은 모조리 불을 질러 바닷속에 쳐 넣도록 해라.”
정발은
군선을 왜적과 싸우기 위한 병선으로 이용한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왜군에게 탈취당할 것부터 걱정했다.
정발은
수군 경험이나 지식이 없었다.
그런
터라 군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우선
성안에서 왜군의 공격을 막아 내는 일에 급급했다.
“장군!
군선은
나라의 재산입니다.
그리고
수군에게는 군선이 없으면 싸움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물자이오니,
불을
질러 처분하는 것보단 후일을 도모하여 바다로 내보내거나,
근처
섬으로 보내어 보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정헌이
병선을 처분하라는 영을 듣고는 이를 제지했다.
“내,
왜
그걸 모르겠소.
그러나
지금 군선을 바다로 몰고나갈 병사가 없질 않소.
왜군을
맞아 싸울 성내의 군사도 부족한 판이오.
잘못하다
왜군에게 탈취라도 당하면 그보다 더 큰 낭패가 없소.”
“당장은
그렇지만,
가장
좋은 병법은 바다를 건너오는 왜군을 바다에서 막는 것입니다.
군선이
없으면 왜적을 바다에서 몰아낼 수가 없습니다.”
정발이
보기에는 가뜩이나 군사 수가 모자란 판이었다.
그로서는
성을 지켜내느냐 못하느냐가 당면 과제 아닌 지상 명제였다.
부산진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곧 죽음이오.
성이
함락되고,
군선이
남은들,
그에게
별다른 득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여겼다.
농성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모든 것은 무의미 그 자체였다.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이번만은
나의 의견을 따르시오.
군선을
적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불을 질러,
바닷속으로
침몰시키는 것이 상책이오.”
제
31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