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기장 앞바다

 

“행님요! 어망을 땡기소. 

음력 4월이 되어 그런지, 한낮이 되면 벌써 햇살이 따가웠다. 정수리 위로 떠오른 태양은 강렬한 뙤약볕을 수면 위에 하얗게 뿌려대고 있었다. 반짝이는 수면 위로는 조각배 두 척이 떠 있었다. 배 위에서는 웃통을 벗어 던져 알몸이 된 사내가 사투리로 연방 소리를 쳐댔다. 알몸이 된 웃통은 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마치 동백기름이라도 발라놓은 듯이 윤기가 흘렀다.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에는 기름이 올라 반질반질한 봄 멸치가 새하얀 은빛을 튀겨내며 팔딱팔딱 수면으로 튀어 올랐다. 
예로부터 기장 지방의 봄 멸치는 그 맛이 좋아 조선 팔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멸치를 잡아 바닷바람에 잘 말리면 기름이 골고루 살에 퍼져 응축됐다. 잘 말려진 멸치는 날로 씹어도 쫄깃쫄깃했고, 바닷물로 간이 잘 밴 멸치는 그 향이 좋아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 고소한 맛이 퍼졌다. 
또한 기장에서 갓 잡아 담근 멸치젓은 서산의 어리굴젓과 함께 임금님의 수라상까지 올라갈 정도로 맛이 일품이어서 양반들도 기장 멸치라면 환장할 정도로 평판이 좋았다. 

“행님요, 그물을 땡기소. 들출이, 니는 뭐하노. 어망을 따라 배를 돌리라 안 카나. 

어동이는 팔딱팔딱 튀는 멸치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잡고 싶은 욕심에 팔에 힘을 가해 어망이 걸려있는 장대를 힘껏 당겼다. 팔뚝의 힘줄이 시퍼런 배추벌레처럼 퍼런빛을 띠며 불끈 솟아올랐다. 

“알았다카이. 읏샤, 읏샤. 

옆에서 나란히 떠 움직이던 배에 타고 있던 칠칠이도 어동이의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는 장단을 맞추며 어망을 끌어 당겼다. 멸치 떼로 가득 찬 어망이 손끝에 묵직하게 와 닿았다. 그물이 제법 무거웠다. 그는 이를 악물고 힘을 주었다.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돌쇠는 멸치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키를 조절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배는 키의 반대 방향으로 스르륵 미끄러지며 회전했다. 

“힘껏 들어 올리그래이. 

어동이쪽 배 가까이로 칠칠이가 탄 배가 원을 돌았다. 두 척의 배가 서로 이물이 가까워지자 어망이 끌어올려졌다. 둥그런 어망에는 멸치 떼가 가득 담겨 있었다. 멸치가 가득 담긴 그물은 마치 둥근 모양을 한 복어 배처럼 밑으로 축 처져 있었다. 

“들출아 힘 쓰래이! 힘껏 끌어 올리라카이, 쪼금만 더, 옳지, 영차, 영차. 
“어동아 도망치지 못하게 잘 땡기레. 
“걱정 붙들어 매라 안 캅니꺼. 

어망에 가득 담긴 멸치를 보고 이들은 신이 나서 ‘형님, 아우님’ 하면서 묵직한 어망을 끌어올렸다. 어망은 명주실로 짜여 있었고, 그물에 장대가 달려있었다. 그물이 무거워 장대가 휘청휘청했다. 
배 위로 올린 그물을 바닥에 놓자 찹쌀떡을 눌러놓은 것처럼 옆으로 넓게 퍼져 배를 가득 채웠다. 어동이 그물의 밑 부분을 잡고서는 뒤집어 들어 올렸다. 멸치와 잡어들이 배 위로 좌악! 쏟아졌다. 들출이는 고기 한 마리라도 아까운 마음에 그물망에 붙어있는 멸치를 악착같이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어동이 뿐만 아니라 칠칠이, 돌쇠, 들출이 모두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어동이의 신분은 어민이었지만 양민이었다. 양반집 노비에 비해 삼시 세끼 제때 찾아 먹지는 못했으나 마음은 자유스러웠고, 편했다. 어려서 조실부모해 몇 번이고 노비로 떨어질 뻔 했으나, 운 좋게 누이가 하나 있어 일찍 시집간 누이는 부족한 시집살이 속에서도 항상 어동이의 삶을 보살펴 주었다. 자립할 정도의 성인이 되고 나서야 겨우 누이의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항상 부족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작은 배라도 타고 바다에 나오면 생선을 잡을 수 있어 좋았다. 풍족하진 않지만 어민의 삶이 좋았다. 어동이는 천성적으로 구속된 삶을 사는 노비 생활은 질색이었다. 
혼자 된 동생의 외로움을 잘 아는 누이가 시집간 마을의 양민의 처자와 혼인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어동은 누이가 말한 처자를 멀리서 슬쩍 훔쳐본 적이 있었다. 중키에 쪽머리를 딴 모습이 자신의 마음을 썩 끌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니도 얼른 장가가 살림을 해야 하지 않겠노. 부모도 없고, 이 누이 혼잔데, 난 니가 걱정이 돼, 죽으려도 죽을 수가 없대이.
“아따, 누이는 참말로 죽긴 왜 죽는다고 그라나? 내 장가든다.
“증말이가?
“글타니까이. 내 누이가 말한 그 처자에게 장가 갈란다. 

그날 이후 어동은 날만 좋으면 바다로 나와 열심히 고기를 잡았 다. 생선을 바꾸어 양식을 구했고, 양식이 남으면 옷감과 교환했 다. 장가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배를 못 타는 날에는 품을 팔았다. 그 덕에 이제 재물이랄 건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살림도 장만했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손 없는 날을 잡아 혼인식만 올리면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누이가 시집간 이후로 고아 비슷하게 혼자 살아온 어동이는 가정을 꾸린다는 생각만 하면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이날도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없고 날씨가 좋아 어동이가 서둘러 동무들에게 연락해 멸치잡이를 나왔다. 이들은 기장 가까운 조그만 어촌에 살았는데, 돌쇠와 칠칠이가 두 살 많아 형님 노릇을 하였고 들출이는 동갑내기였다. 덩치는 어동이가 제일 컸고 힘도 장사였다. 돌쇠는 어동이보다 두 살이 많아서 그런지 나잇값을 하느라 그런지, 아무튼 생각도 깊었고 어른스러웠다. 넷은 봄이 되면 곧잘 어울려 기장 쪽에서 내려오는 멸치를 노리고 배를 몰고 나오곤 하였다. 
왜구들의 극성이 심해 먼바다로 나가는 일은 금지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들의 배가 원체 작아 먼바다로는 나갈 엄두도 못 냈다. 주로 가까운 앞바다에서 계절마다 올라오는 생선을 잡아 시장에 내다 팔거나 필요한 물건들과 교환했다. 고기를 잡아도, 빌려 탄 뱃삯을 갚으면 별로 남는 것은 없었으나, 어릴 적부터 배를 탔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 이들은 고기를 잡는 것이 제일 수월했고, 마음 편했다.

 
“햐, 오늘은 제대로 잡았다 아이가. 
“글게 말이다. 
“자 어망 잡아라. 다시 한번 건져보는 게 좋지 않겄나.
“하모, 하모.
“오늘 한번 배를 가득 채워보재이.


돌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동이는 고기를 털어낸 어망을 들고 있다가, 바다 속에 던져 넣었다.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바닷물이 하얗게 튀었다. 웃통을 벗어던져, 근육질의 상반신을 드러낸 어동이는 장대의 끝을 뱃전에 걸었다.


“행님여! 다시 한 번 멀리 돌아보이소…. , 저게 뭐라!


어동이가 돌쇠에게 배를 돌리게 하면서 고개를 선미쪽으로 돌리려 할 때였다. 절영도 쪽 수평선 위로 커다란 돛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높고 넓게 퍼진 돛대 아래쪽으로는 화려하게 장식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사는 이들은 시야가 좋았다. 절영도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주 선명하게 잘 보였다. 


“저게 분명히 어선은 아이데이.


어동이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칠칠이는 손가락으로 눈에 낀 눈곱을 떼어 내는 듯한 시늉을 하며, 눈을 비비고는 눈을 크게 떠 절영도 쪽을 응시했다. 수백 척의 배들이 대열을 이뤄 부산포를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생각으로도 심상치 않은 광경이었다. 


“뭔 놈의 배가 저리 많이 떠 있노! 부산포 쪽으로 다가가는 것 같은데….
“아니, 저건 왜놈들의 배 아이가.
“맞다, 왜놈들 배다. 저 깃발 보그래이, 왜놈들 맞다.
“근데 와 저래 많노? 
“저, , 저거 왜놈들이 쳐들어온 거 아이가. 


큰 난리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은 것은 달포 전이었다. 왜관에 있던 왜인들이 모두 짐을 싸 돌아갔고, 왜관에는 왜인이 없어 폐쇄되다시피 했다는 풍문도 돌았었다. 관청에서는 함구령을 내렸다. 
‘쓸데없는 소문을 퍼트려 민심을 동요시키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모두 내놓고 말은 못 했지만 왜놈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고 있던 때였다. 
연장자인 돌쇠는 소문을 생각해내고 순간적으로 왜군이 침입했음을 직감했다. 일행은 모두 덜컥 겁이 났다. 


“어동아, 퍼 퍼떡 그물 걷으래이, 이걸 우째야 하나. 아무래도 무슨 변고가 났대이. 


돌쇠는 서두르라는 말을 하는데도 턱이 덜덜 떨렸고, 말은 더듬 더듬 나왔다. 


“야, 야들아, , 뭐하고 있노. 잡히면 죽는대이. 


돌쇠의 얼굴이 겁에 질려 창백하게 변해갔다. 


“글씨 무슨 일인고, 절마들이 왜 저리 많이 왔노? 
“왜군이 치들어왔나 보대이. 빨리 돌아가자카니. 지금 멸치가 문제가 아인기라! 잘못하면 목숨이 날라 갈 판인기라. 


신명나게 멸치를 걷어 올리며 만선에 기쁨으로 가득 찼던 이들의 표정이 갑작스레 두려운 빛으로 변했다. 모두 그 길로 멸치 잡는 것을 포기하고는 급하게 그물을 거두어 부리나케 마을의 포구로 돌아왔다. 선착장 옆 안쪽 평지에는 머리에 흰 무명을 둘러멘 아낙들이 어부들이 잡아온 생선을 손질하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아낙들은 칠칠이와 들출이가 포구에 배를 대고는 멸치를 담아놓은 나무통을 끌면서 허둥대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저 이들이 와 저러노?


아낙들은 일하던 손을 놓고는 허둥대는 어동이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남정네들이 점잖지 못하게 호들갑을 떤다는 듯이 타박하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뭣들 하는교? 퍼떡 피난 안 하고.
“뭔 일들이 났다 그라는교?
“마, 큰일났데이. 왜놈들 배가 겁나게 몰려왔데이, 게 있지 말고 퍼떡퍼떡 집으로 가 숨으레이. 왜놈들한테 잡히면 다 죽는데이.
돌쇠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면서 소리쳤다.
“저 남정네들이 뭐라카노?


마치 엉덩이에 불이 붙은 것처럼 펄쩍펄쩍 뛰며 서두르는 어동이 일행을 보고는 선착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다른 배에 있던 어부들이 심상치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어동이 일행을 보고 다가왔다.


“와 그라노, 누가 물에 빠지기라도 했나?
“그기 아이라, 저…. 저 좀 보소. 왜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왔다 안 합니꺼. 난리가 났다카이. 난리라요.


칠칠이는 말까지 더듬으며 절영도 쪽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칠칠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바다가 새까맣게 배로 뒤덮여져 있었다. 배들은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그 크기를 알 수 있는 배들이 시커먼 모습으로 영종도 앞바다를 뒤덮었다. 바닷가 사람들도 그렇게 많은 배가 부산포 앞바다에 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게 무어라? 
“왜놈들 배라 안 캅니까? 빨리 짐 챙겨 성안으로 안 들어가면 저놈들한테 다 잡혀 죽는다카이까요. 

제 30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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