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 <병 화>

 

절영도에서 훈련 겸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왜의 선단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성으로 돌아온 정발은 부장들을 모았다. 연이어 보고가 올라왔다.



가덕도 봉수대에서 연기가 두 번 솟아올랐습니다

.”

, 이런 죽일 놈들, 어려울 때마다 그렇게 곡물을 주며 도와주 었는데 배은망덕한 놈들 같으니라고. 이놈들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왜군의 침략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없지는 않았다. 북쪽 변방에서 근무해 오던 자신이 남쪽 해안가인 부산진 첨사로 영전되어 온 것도 사실은 왜군이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대마도의 왜인들이 조선과의 무역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 낸 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왜인들의 속을 몰랐다.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수도 있었다.

통신사로 다녀온 정사와 부사도 그 의견이 갈라져 제각각이었다. 소문이 있다 한들, 누가 장래의 일을 알 수 있으랴 하는 무사 안일한 태도였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왜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에 대비해 군비를 늘리고 군사를 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 대비책으로 내놓은 안이라는 것은 고식적인 것이었다. 무장인 정발을 정3품 당상관으로 승진시켜 부산진 첨사로 파견한 것이었다. 군비와 군사 확장 없이 첨사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그 대비를 다한 꼴이 되어버렸다.

정발이 임금의 명을 받은 것은 임진년(1592) 2월 하순이었고, 새 첨사가 되어, 부산진에 내려온 것이 다음 달인 3월 하순이었다. 첨사로 봉직되어 내려오면서도 설마하는 마음이 컸다. 있어 봤자 왜구의 분탕질 정도라고 여겼다. 그는 왜구 정도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으로 진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한편으론 오히려 왜구가 나타나주길 바랐다. 왜구라면 자신에게 공을 쌓아 승진할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이 될 것으로 얕보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왜군의 출현이라니! 그것도 대규모의 왜병이라니.’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병화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았다. 북방에서처럼 소규모 전투이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기대와는 점점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장군! 병화가 일어난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 말라 !”

 

정발은 싸움을 잘 알았다. 만주의 여진족들이 북쪽의 종성을 침략했을 때 오랑캐들과 몇 번 실전을 치렀던 경험이 있었다. 수하 병사들을 이끌고 여진족 부락까지 쳐들어가 여진족 남정네들을 붙잡아 온 적도 있었다. 여진족의 침범을 평정했다는 공을 인정받아 거제 현령을 제수받았다. 이번에 첨사로 승진해 부산진에 파견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때 쌓은 무공 덕분이었다.

 

조방장은 즉시 척후를 내보내, 왜군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살피도록 하라. 군관 하나에 발이 빠른 병사 열을 붙여 내보내도록 하라. 군관들을 시켜 군사를 모으도록 하라. 이방은 지필묵을 준비하고, 파발을 대기시켜라!”

 

정발은 제승방략에 따라 전시에 취해야 할 대책을 세웠다. 척후를 띄우는 한편 군사를 모았다. 그리고 주변 지역에 원군을 요청했다.

 

부산포 앞바다에 왜군 병선 출현. 적선의 수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가 없음. 왜병들은 갑옷과 창칼로 무장하고 있음. 속히 군병을 모아 원군을 보내주길 바람.’

 

원군을 요청하는 치계를 작성해 가까운 동래성과 울산성에 신속하게 파발을 띄었다. 이어서 측근 부장들과 함께 동헌에 모여 군사 회의를 열었다.

 

성안에 군사 수만으로는 적을 막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군민 구별 없이 우선 장정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 많은 왜병을 맞아 버티기가 힘들 것으로 여겨집니다.”

 

조방장, 이응순이 군사 수가 부족함을 지적하며, 군역과 관계없이 장정들을 모을 것을 건의했다.

 

잘 알았다. 힘을 쓸 수 있는 장정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모두 모으도록 하라. 명령이니 즉시 수행하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군관들은 사령들을 데리고 동헌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방을 써 붙이는 한편, 장정들을 모으려 사방팔방을 뛰어다녔다.

정탐을 내보내고 한 식경 쯤 지나자, 척후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왜병이 틀림없습니다. 바다 위에 배가 새카맣게 떠 있습니다.

 

백성들의 말에 의하면, 이미 일부 왜병들은 이곳 가까이까지 와서 정탐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모두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다 고 합니다. 영감, 왜군의 침략이 사실로 드러난 것 같사옵니다.”

 

보고를 받으며 얼굴이 굳어져 가는 정발을 보고 이응순은 올 것 이 왔다는 투로 말을 건넸다.

 

소문이 사실이 되었구나. 상종 못 할 놈들 같으니라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배은망덕도 유분수로구나.”

적군이 대규모라 하니, 어서 군사를 배치하고 방비를 서둘러야 될 것이옵니다. 장군!”

 

정발이 한탄만 하고 있자, 부사맹 출신으로 첨사를 보필하고 있던 이정헌(李庭憲)이 앞으로 나서며 독촉했다.

이정헌은 당시 나이 일흔 살의 노인이었다. 대마도의 승려 겐소 (玄蘇)가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조선에 건너와대명가도등의 조건을 내세우며 조선 조정과 교섭을 할 때였다. 후에 의병장으로 활약하는 조헌이 왜란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왜의 사신인 겐소의 목을 베라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일이 있었다. 이정헌도 이에 동조했다. 그는 원래는 문관직이었으나, 무관에 응시하기 위해 문 관직을 집어던졌다.

 

왜란이 일어나면 국가 존망이 위태해질 것이다. 병란이 일어난다면 문반보다 무반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를 알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어찌 선비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무관 시험을 준비해 노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과에 응시해 무반에 등과했다. 그러나 나이 때문에 직함 제수를 못하고 그저 야인으로 지내고 있었다. 우국지정(憂國之情)이 가득 한 그는 전국을 돌면서 성곽이나 각 고을의 군비를 살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그가 부산진에 내려왔을 때, 첨사로 내려와 있던 정발이 그의 우국충정과 지략을 높이 평가해 수하의 막장으로 붙잡아 두고 있던 터였다.

 

알겠소! 내 그리하리다.”

왜적이 대군이라 하니 성에 남아 성문을 철통같이 잠그고 농성전을 준비해야 승산이 있겠소이다.”

나 역시 동감이오."


이정헌의 재촉을 받아 농성전을 준비하면서도, 정발은 왜군의 침략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저 대규모의 세견선이거나, 왜구이길 바랐다. 그러나 속속 들어오는 보고는 자신의 바람과는 어긋나는 것뿐이었다. 속이 답답해 왔다

.

제 28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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