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
가덕도의
봉화
부산진성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진 가덕도 응봉 봉수대의 망꾼인 쇠철은 이날도 망대에 올라 있었다.
그는
지방군으로 차출돼,
망대에서
근무하는 망꾼이었다.
외적의
침입이 없어 망꾼이 되고 한 번도 봉화를 피운 적이 없었다.
그러니
망대는 그냥 유명무실했다.
망꾼들도
망대에는 올라와 있지만,
모두
타성에 젖어있을 뿐,
큰
경계심은 없었다.
상관인
별장과 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군기는
느슨했다.
군관들은
외적에 대한 경계보다는 개인적인 이문에 더 관심이 많았다.
수하
중에 살림살이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자들이 있다면 근무를 빼주거나 편한 곳에 배치해 주고는 뇌물을 챙겼다.
뇌물은
먹이사슬로 연결돼 있었다.
누구
하나 바로 잡으려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서로 이권을 챙기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군역을 지더라도 상납만 적당히 해놓는다면,
편한
곳에서 근무할 수 있었고,
근무를
게을리해도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다.
군관이나
별장들이 가끔 규칙을 들먹이고,
까다로운
척하며,
점고를
하거나 근무 상태를 점검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규율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은근히
직책과 권위를 내세운 뇌물 챙기기의 일환이었다.
"첨사
나리는 팔자 폈다카이!”
“우리
같은 쌍놈이나 팔자가 사납제,
양반은
다 팔자 좋제,
와
뭔 일이 있노.”
“첨사가
첩을 얻었다카는데 그 애첩이 꽃같이 예쁘다 안 하나.”
“그렇나,
관기도
많은데 또 애첩을 얻었나.”
“근디
그 애첩이 몇 살인지 아노?
에구
이팔청춘이라 안 하나.”
“이팔청춘이라면
낭랑 십팔 세란 말인데,
햐
한창 좋을 때네,
첨사
영감은 당년 몇인데?”
“첨사
나리야 불혹(不惑)을
넘었다 안 하나.”
“아따,
문자
쓰고 있네.
불혹이
뭐꼬.
마흔이라
카먼 어디가 덧 나나.”
“불혹이면
어떻코,
마흔이면
어떻노.
글고
양반 나리들이야,
나이가
뭔 상관이 있겠노.
매일
산해진미를 먹는 것도 모자라,
아침
저녁으로는 따로 보약을 첩으로 지어 먹는데,
을매나
힘이 솟아 오르겠노.
넘쳐나는
아랫도리 힘을 쓸려면 안방마님 하나만 가지고 되겠나.
택도
없대이.”
“그나지나,
꽃
같은 나이에 애첩이 됐으면 뭔 사연이 있지 않겠나.”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노?
양반들
빼고 우리네야 사연이 많지.
이게
어디 사는기가?
양반들이야
살만 하겠지만,
상민들이야
죽지 못해 사는 거 아이가.”
“그제도
절영도로 사냥을 나가면서 관기를 태워나갔다 안 카나.”
“관기하고
애첩하고 같나?
관기야
가무를 잘하이 필요한 거고 애첩이야 수청을 위해 필요한 거 아이가?
관기와
애첩은 애초부터 그 용처가 틀리다카이.”
“그러게
팔자가 폈다하지 안 하나.”
“맞다.
맞아.
우리
같은 상놈들이야 조강지처 하나만 있어도 감지덕지하지만,
양반
나리들이야 기생이다 애첩이다 입맛 땡기는 데로이,
팔자가
좀 좋나.
마,
이놈의
세상은 양반들만의 세상인기라.
우리
같은 놈들이야 인두겁만 같지,
어디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나.”
“도대체
뭔 놈의 세상이 이리 생겨 묵었노.
내
부아가 치밀어 속병이 생겼다 안 카나.”
“시끄럽다마,
양반
나리들이 들으면 능멸했다고 경을 친데이.
입이
재앙의 근원이 된단 말 모르나.”
망꾼들은
처음에는 첨사 정발이 새로운 애첩을 얻었다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가,
양반들의
행태와 횡포를 시작으로 세상에 대한 불만과 원망으로 투덜거렸다.
그러자
나이가 위인 천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제지했다.
“아니,
저게
무에라?
앞바다에
웬 배가 저렇게 많이 떠 있노?”
잡담을
나누며 습관적으로 일어나 망루 밖을 흘끗 쳐다보던 망꾼 천출이가 깜짝 놀라 큰소리로 외쳤다.
“응,
멀
그리 놀라노?
왜놈들의
세견선이 아이겠나?”
함께
이야기하던 쇠철이는 천출이의 깜짝 놀라는 소리에 으레 있는 일이라는 것처럼 앉은 채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천가가
천출이의 놀라는 소리가 예사치 않았는지 천천히 일어났다.
“아니
저게 뭐꼬?
우째
세견선이 저리 많노?”
“내
그렇다 안 합니까?
저게
대체 몇 척인가예?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
억수로
많아 당최 셀 수가 없다카이.”
그들의
눈에는 이미 바다에 올라선 배들도 적지 않았는데,
먼
바다에서는 끊이지 않고 계속 돛이 솟아올라 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다를
덮은 왜선들의 깃발이 점점 선명해졌다.
망대에
있던 망꾼 다섯 모두 기겁했다.
“저건
세견선이 아니라카이.
왜군이라카이.
왜군.”
“우,
우짜면
좋습니꺼?”
나이가
아래인 천출이가 지레 겁을 먹고 말을 더듬었다.
“일이
터졌다카이.
뭔
일이 났음에 틀림없대이.
쇠철이
니는 먼저 오장 나리에게 알리그라.
퍼떡
뛰그라.”
사태
판단이 빠른 천가는 얼른 발걸음이 빠른 쇠철이를 시켜 망대를 내려가도록 했다.
봉수대
아래쪽에 숙소가 있었는데,
그곳에
오장 김응현이 머무르고 있었다.
“왜선이
나타났습니더,
헉헉,
왜,
왜선이
마이….”
곧바로
언덕 아래로 뛰어내려온 쇠철이가 경황없이 오장 김응현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오장 김응현이 자다가 봉창을 뚫는다는 표정으로 다그쳤다.
“너,
이놈
무슨 헛것을 보고 흰소리를 하느냐!”
“그게
아니라니까예.
정말
왜선이 틀림없다니까예.
그것도
억수로 많다 안 합니꺼.”
“만일
왜선이 아닐 시에는 네 말을 책임질 수 있으렸다.”
“퍼떡
가서 보이소.
지가
그냥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왜 헛소리를 하겠습니꺼?”
왜선이
출현했다는 보고를 받은 김응현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쇠철이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뚱딴지 같은 쇠철을 다그치려다가,
그의
진지한 얼굴빛을 보고,
뭔
일이 일어났다고 직감했다.
그는
얼른 겉옷과 모자를 걸치고 망대로 뛰어올랐다.
쇠철이도
가슴이 조마조마한 채로,
부지런히
김응현의 뒤를 따라 올랐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선이
그리 간단히 바다 위에서 사라져버릴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만일 배들이 사라져버렸다면,
허위보고
죄로 간단한 처벌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은 불문가지였다.
쇠철은
초조한 마음으로 오장 김응현의 뒤에 바짝 붙어 언덕을 다시 올라갔다.
언덕
중턱 정도에 이르자 김응현은 숨이 턱에 찼다.
연신
헉헉댔다.
마음은
급했는데 몸이 봉수대에 오르는 가파른 길에 막혀 허덕대고 있었다.
숨이
목까지 차올라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하기사
훈련을 받아본 것이 언제랴.’
가덕도
봉수대 오장 김응현은 오늘따라 망대가 서 있는 봉수대 언덕이 높고 멀게 느껴졌다.
만일
큰일이라도 일어나,
임무를
게을리했다는 죄를 덮어쓰면 그대로 참수형 감이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겨우
언덕에 올라섰을 때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흘러내렸다.
봉수대
너머의 바다가 넓게 퍼져 있었다.
그가
흘끗 바라본 가까운 바다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해 보였다.
‘그러면
그렇지!
이놈이
뭘 잘못 보고 헛소리를 한 게지!'
그는
속으로 안심하며 봉수대가 솟아 있는 언덕배기로 성큼 올라섰다.
그런데
웬걸 먼바다는 상황이 달랐다.
바다
전체가 온통 깃발로 장식한 군선으로 뒤덮여 있던 것이었다.
군선들은
부산진성이 있는 부산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조선 수군의 배가 저리 많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또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던 터였다.
왜군의
군선이 틀림없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여봐라.
어서,
봉화를
올려라!”
“알겠습니다요.”
쇠철의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현실이었다.
김응현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갔다.
‘꾸물거리다간
임무를 게을리했다는 죄목으로 이쪽에서 먼저 죽을 판이다.’
“몇
번 올릴갑쇼?”
“무에?
응!
두
번 연속 올려라.”
천가가
횟수를 묻는 소리에,
넋이
빠진 듯 바다를 응시하던 김응현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겨우 명령을 내렸다.
봉화대에
불이 펴졌다.
곧
봉수대 산정 위로 하얀 연기가 두 번 솟아올랐다.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였다.
제
27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