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도주> 임금의 문초
보통
역모에 연루된 사건이 아니면 임금이 직접 나서 죄인을 문초하는 일은 거의 전무했다.
살동은
왜구들과 함께 남해안을 분탕질하였지만,
나라를
뒤엎을 만한 역적질을 한 것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강도와 약탈죄에 해당하는 죄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졸지에 반민 사화동이란 이름으로 불려 역적보다 더한 죄인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었다.
옥사에
처넣어지고 얼마 안 있어,
옥리들이
다가와 살동과 일행을 양쪽에서 붙잡고 끌어냈다.
살동과
왜구들은 숨을 돌릴 사이도 없었다.
끌려
나온 그들은 앞쪽에 반듯하게 다듬어진 단이 있는 넓은 마당으로 호송돼,
차가운
돌바닥에 꿇려졌다.
임금이
있는 인정전 앞뜰이었다.
단
아래에는 문반과 무반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앉을 수 있도록 비석이 좌우에 놓여 있었다.
그곳에
그들 대신 오위도총부 소속 근왕병들이 무장을 하고 좌우에 도열해 있었다.
살벌한
분위기였다.
살동은
천민이라 의자도 주어지지 않았다.
함께
끌려온 긴지로와 신사부로,
마고지로도
같은 신세로 살동의 뒤쪽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말하자면
살동이 주범이요,
왜인들은
공범으로 문초를 받는 꼴이었다.
그들을
묶은 포승은 뒤로 젖혀진 손목을 꽁꽁 휘감고,
팔을
두 번씩 감아 돌은 후,
마치
뱀이 똬리를 트는 모양으로 어깨로 올라가 서로 교차하며 허리 쪽으로 내려와 몸통을 꼭 조이며 묶여있었다.
포승을
어찌나 꽁꽁 묶었던지 매듭은 허리 쪽에서 딱딱한 공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손과
팔 뿐만 아니라 몸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고개와 입뿐이었다.
금세
손발이 저려왔다.
살동은
손발이 저린 것을 참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한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보기도 하고 고개를 틀기도 하며 견뎠다.
그러자,
“상감마마
납시옵니다.”
남자
목소리치고는 가늘고 높은 내시의 음성이 귓전에 들려왔다.
살동은
‘상감’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엉겁결에
고개를 들었다.
단상
위를 올려다보니,
머리에는
관을 쓰고 몸에는 곤룡포를 걸친 임금인 듯한 자가 단의 한가운데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앞쪽에는
임금이 앉는 용상이 놓여 있었다.
임금이
걸친 곤룡포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수로 장식돼 있었다.
좌우에서
수종하는 사람 들은 모두 그의 허리 아래까지 몸을 구부리고 굽실거리고 있었다.
“네,
이놈!
머리를
숙이지 못할까?”
곁에
있던 옥리가 얼른 살동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눌렀다.
고개를
떨어뜨린 자세로 앉아있었는데,
시간이
잠시 지체되는 듯하더니,
단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반민
사화동은 들어라.
너는
조선의 녹을 먹고 자란 백성이다.
어찌하여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백성들을 해하였느냐?”
멀리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어서
그 말을 받아 조정 벼슬아치가 꾸짖는 듯한 큰소리로 다시 한 번 말을 전하였다.
살동으로서는
누군지 알 길이 없었으나,
승정원
승지가 임금의 말을 받아 전하는 것이었다.
살동은
자신의 이름을 사화동이라 부르는 것이 이상했으나,
틀림없이
자신에게 묻는 말투라는 것을 알고는 대답하였다.
“쇤네의
이름은 살동이옵니다요.”
“진자(眞字-한자의
다른 말)로는
사화동으로 읽는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묻는 말에만 답하여라.”
“풍랑을 만나 왜나라 섬에 표류하였습니다요.
근데
그곳이 왜구의 소굴이었고 조선에 안내를 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였기에 어 쩔 수 없이 안내를 했습니다요.”
자신의
대답이 끝나자,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승지가
임금에게 재차 고하는 소리였다.
‘임금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이더냐?’
심문을
받으면서도 살동은 임금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래서
살동은 묻는 말에 대답하는 척하면서,
고개를
간간히 들어 단상 위를 슬쩍슬쩍 보았다.
상좌에
앉아 있는 임금의 모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관은
황금색이었고,
용의
수가 놓인 비단은 온몸을 다 덮고도 남아 용상까지 치렁치렁 덮고 있었다.
‘신비롭구나.’
살동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인간의 부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표류했다면
왜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았더냐?”
“배가
파손돼 돌아올 배가 없었습니다.
또
쇤네는 부모 형제가 모두 죽고 없어 슬퍼할 사람도 없었기에 그냥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요.”
“천하의
어리석은 자로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였으니,
부모와
스승과 임금이 모두 하나이고,
부모가
없으면 스승이 있는 것이고,
스승이
없으면 임금이 있거늘,
자애로운
조선의 은혜를 입고 사는 백성이 슬퍼할 친족이 없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더냐?”
살동은
임금의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임금이
말하는 군사부일체가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자애롭다는
말에는 귀가 간지러울 정도였다.
‘무엇이
자애롭단 말이더냐.
힘없는
백성을 등치고,
백성을
알기를 발곱에 낀 때만도 못하게 여기면서도,
걸핏하면
데려다가 노역이란 노역은 죄다 시키고,
게다가
품삯은 떼어먹고,
품삯을
요구하면 대신 몽둥이를 휘두르는 주제에 자애롭단 말을 잘도 쓰는 구나.
양반들만
호의호식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자애로운 일이더냐.
세상
물정 모르는 임금이 말만 번지르르하군!’
처음부터
죽기로 작정한 살동이였다.
그러니
어차피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문초를
받으면서도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임금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꾸역꾸역 일어났다.
살동이
고개를 숙인 채 자기 생각에 골몰하느라 대답이 없자,
임금이
언성을 높였다.
승지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말을 받아 전했다.
“네가
살기 위해 어진 백성들과 이웃을 살육하고,
왜나라로
잡아갔단 말이냐.
어리석은
백성이여,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화가
나,
언성이
높아진 임금의 목소리를 들은 살동은 그나마 지니고 있었던 임금에 대한 신비감과 외경심이 싹 사라졌다.
‘황금과
비단으로 몸을 감싸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듯 신비를 가장했지만,
역시
사람인 게로군!’
“잡아간
게 아니고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요.”
“너는
임금의 은혜를 모르고 나라를 배신한 죄,
일신을
위해 왜나라로 가 왜구를 끌어들인 죄,
게다가
이웃이었던 어진 백성을 살육한 죄,
아무런
죄도 없는 양민을 왜구의 소굴로 끌고 간 죄,
그
죄를 이루 다 나열할 수가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어리석은
백성아,
죽어서도
그 죗값을 다 치르지 못 하리라.”
임금에
대한 신비감을 상실하자,
살동은
모든 것이 꼭두각시놀이처럼 느껴졌다.
임금의
말이 다 들리는데도,
그
말을 받아 다시 전하는 벼슬아치도 우스웠고,
곁에
모여 굽실굽실하며 마치 하늘님을 대하듯 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스워 보이다 못해 불쌍해 보였다.
살동은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약을
올리듯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니라 하지 않습니까요.
그리고
하나 덧붙이면 여기 끌려온 저 왜인들은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요.
방면해주는
것이 옳습니다요.”
선조는
살동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자 부아가 치밀었다.
“저런
흉악한 놈이 있는가?
아직
네 죄를 뉘우치지 못하는 것 같구나.
여봐라,
저
반민이 자신의 죄를 깨우치도록 곤장을 매우 쳐라.”
형졸들은
어명이 떨어지자,
사정
안 두고 살동을 내리쳤다.
오라로
꽁꽁 묶여 무릎이 꿇린 채로 문초를 받던 살동이었다.
곤장이
어깨를 강타하자,
그대로
앞쪽으로 고꾸라졌다.
엎어진
살동의 등짝으로 형졸들은 곤장을 연거푸 내려쳤다.
살이
튀고 뼈가 으깨져 나갔다.
살동은
신음을 내었지만,
죽을죄를
지었다는 소리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지독한
자로구나.
죄를
깨우치고 뉘우치게 하는 방법이 없겠느냐?”
“능지처참을
시키면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 죄를 깨우치는 경우도 있사옵니다.”
선조가
마음이 분해,
곁에
있던 대신에게 하문하자,
형조
참판이 얼른 대답했다.
“능지처참이라?”
선조가
능지처참이란 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예!
그러하옵니다.”
“전하!
능지처참은
역모를 일으킨 대역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 이옵니다.
또한
백주에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의 형벌을 시행하면,
그
소문이 사방에 퍼져 역모가 일어난 것으로 알고,
민심이
흉흉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촉하여주십시오.”
능지처참은
너무나 잔인한 형벌이라,
형의
집행을 관장하는 사람들조차도 참관을 꺼릴 정도였다.
차마
두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형벌이었다.
얼마나
잔인했는지,
형
집행에 참관한 후 정신이 빠져 달아나,
올바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
잘 아는 사간원의 대간이 재고를 건의했다.
“죽어가면서도
죄를 깨우친다면 그것도 좋긴 하나,
대역
죄인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러니
저 반민을 성 밖에 내다가 참수형에 처하라.
반민의
일당이 분명한 왜구들도 성 밖에 내어 함께 처형하라.”
선조는
죄를 뉘우치지 않고 능글능글 말대답을 하는 살동이 괘씸했다.
마음
같아서야 능지처참형도 모자랐지만,
죄의
경중을 살펴 참수형에 그치도록 한 것이었다.
‘나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죄라면
이 땅에서 천민으로 태어난 게 죄일 뿐이다.
내
죽어서라도 다시는 천민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태어난다면 또 이 땅을 떠나리라.
이
땅에서 천민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왜구로 살아가는 길을 택할 것이다.’
곤장으로
온몸이 터져 피투성이가 된 살동과 신사부로 등,
왜구
세 사람은 다음 날 오후 숭례문 밖 공터에서 참수되었다.
다음은
실록의 기술된 내용이다.
‘임금이
인정전에 나와 군사를 벌려놓고 사화동 등을 문초한 뒤에 성 밖에 내여 목을 베게 하고,
의지(요시토시(義智)의
한자음)에게
내구마(內廐馬-사복시에서
기른 말)
한
필을 하사해 주고 궁전 안에서 연회를 차려주었다.
유성룡,
변협
등은 회답사를 보내어,
왜인이
트집을 잡지 못 하게 하고,
또
왜인의 동정도 살피는 것이 좋을 것으로 주청했다.
조정의
논의가 비로소 일치되었다.
첨지
황윤길(黃允吉),
사성
김성일(金誠一)과
전적 허성(許筬)으로
통신사를 삼아 의지 등과 함께
4월(주:1590년)에
바다를 건너고
7월에
왜국 도성에 이르렀다.’
제 24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