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주> 송환

잠자코 있던 두령 소베가 칼로 긋듯이 말을 끊었다.


“다들 시끄럽다. 결론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느냐?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느냐다.
“마음은 아프지만 성측의 요구대로 사르동과 조선인 포로들을 넘겨주어라. 그것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살 길이다. 조선에 들어가 분탕질을 한 것이 사르동과 우리 애들 세 명만이 아닌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르동과 세 명만을 요구한 것은 응하기 쉽게 하기 위한 조건일 것이다. 요구를 따라라.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라.


의리를 주장하던 소두령들이 잠시 동요하는 듯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사르동을 잡아들이고, 조선인 포로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모아라. 잔꾀를 부리다간 모두 죽는다. 그리고 사르동과 함께 생활하던 신사부로(信三甫羅), 긴지로(緊時要羅), 마고지로(望古時羅)도 함께 넘기도록 하라. 전체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대신 남은 가족은 우리가 돌볼 것이다. 즉시 시키는 대로 하라.


소베는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두령의 표정을 본 소두령들은 아무도 대꾸도 하지 못했다. 두령의 움막을 나온 소두령들은 곧장 살동과 왜구 셋을 찾아 나섰다. 먼저 살동을 노렸다. 공터에 모여 다른 왜구들과 함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살동에게 소두령 두 명이 달려들었다. 양팔을 붙잡힌 살동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빼앗겼다.


“아니, 왜 이럽니까?


소두령들은 살동의 칼을 빼앗아 멀리 던진 후,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 아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잡아라.
“우물쭈물하다간 네놈들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명령을 받은 왜구 둘이 달려들어 소두령 대신 살동의 어깨와 팔을 잡았다. 소두령들은 살동의 손을 뒤로하고 어깨와 팔을 묶었다. 살동은 영문도 모르고 당했던 터라, 처음에는 장난질인 줄 알았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자, 깜짝 놀라 저항했다. 소두령 하나가 살동의 뒤로 돌아와 어깨를 눌러 무릎을 꿇게 했다.


“아니 왜 이러는지 이유나 말해주시오.

“신사부로, 긴지로, 마고지로도 앞으로 나와 포박을 받아라.


왜구 셋은 살동이 포박당하는 것을 뻔히 보고 있었는데, 이어서 자신들마저 포박을 받으라 하니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아니,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소두령들이 차례로 달려들어 이들의 칼을 빼앗으며, 무장을 해제했다. 그리고 부하들을 시켜 포박했다. 그렇게 살동이를 비롯해 그와 함께 기거하던 왜구 셋이 함께 무 기를 빼앗기고 포박을 당한 채 땅바닥에 꿇려졌다. 포박당한 이들은 소두령들에게 따지듯 덤벼들었다.


“무슨 죄인지, 그 이유나 말해주시오!
“우리도 괴롭다. 따지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라. 두령님의 명령이다.


나머지 왜구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술렁대었으나, 소두령들의 서슬이 시퍼런지라 그냥 관망하고 있었다. 포박된 네 사람은 산비탈 움막으로 끌려가 갇혔다.


“포로 중에 조선인들을 찾아내 끌어 모아라. 한 명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만일 숨기는 자가 있어 발각된다면 우리 모두 살아남지 못한다. 철저히 시행토록 하라.


이 모든 것이 ‘간바쿠의 명령’이라는 소문이 조금씩 퍼져 나갔다. 이유도 모르고 포박되어 갇혀 있던 살동과 일행에게 두령 소베가 나타난 것은 해안가에 있던 왜구들이 해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너희를 보호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라. 간바쿠라는 워낙 큰 바위에 부딪쳤음을 이해하라. 조선과 간바쿠의 거래에 우리가 말려든 것이다. 너희가 따라주어야 우리가 살 수 있다. 너희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만 순순히 따라준다면 여기 남은 우리는 다시 옛날처럼 살아갈 수 있다. 남은 가족들은 우리에게 맡기고 우리를 용서하거라!


살동과 왜구 셋은 그렇게 하루를 갇혀 있다가, 조선인 포로 오십여 명과 함께 타다에군에게 넘겨졌다. 타다에군은 이들과 조선인 포로들을 대마도에서 파견되어온 사절에게 넘겼고 이들은 다음날 배에 태워져 대마도로 옮겨졌다. 모든 일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그만큼 히데요시의 재촉이 심했던 것이었다. 대마도를 거쳐 부산포로 끌려간 살동과 왜구 셋은 그곳에서 나무로 짜인 함거에 갇혀 다시 도성인 한성으로 압송되었다. 살동이 타고 있는 함거에는 ‘반민 사화동(叛民 沙火同)’이라고 쓰인 종이가 크게 붙여져 있었다.
수레가 지나는 길에서 사람들은 함거에 쓰인 글을 보고는 수군대다가 누군가 글을 아는 사람이 그 글의 의미를 설명하면 듣고 나서는 침을 뱉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수군대는 말을 듣곤, 가까이 다가와 돌멩이를 던지기도 하였다. 살동은 압송되는 동안 내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조선으로 송환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진작 죽음을 받아들였던 터라,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 땅에 도착하고, 수레가 흔들거리며 나아가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이게 무슨 꼴이냐. 차라리 자진하였더라면 이런 수모를 겪진 않았을 것을….


다신 조선 땅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이런 모습으로 끌려오 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동무들이 고향으로 돌아 가자는 것도 뿌리쳤다. 이 땅이 너무 싫었다. 자신을 왜구로 살아 가게 했던 땅이었다. 소수 양반과 다수의 상놈으로 나뉘어 소수에 들지 못하면 철저히 착취당했다. 언제나 삶은 고단했고 힘들었다. 배는 항상 허기에 시달렸다. 옴짝달싹 못하게 꽉 쪼여지고 구분 지어진 세상이었다. 상놈 중에서도 천민으로 태어나면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땅이었다. 살동에게는 아무런 미련도 없는 땅이었다. 오죽했으면 왜구로 남으려 했을까? 그런데 그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이 버렸던 땅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추자도 앞바다에서 폭풍을 만나고, 대마도 해류에 실려 오도열도에 표착했을 때, 조선과의 인연은 모두 끊어진 것으로 생각했었다. 자신은 이제 더는 조선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반민 사화 동’으로 조선에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같은 동지라고 여겼던 왜구들에게조차 버려진 몸이 되다니!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될 운명으로 태어났던가?


운명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땅을 벗어나면서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갈 것이라 다짐했는데,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농락하는 무언가가.


‘그래, 팔자일지도 모른다. 내가 타고난 사주팔자. 생각해보면 풍랑을 만나 표류한 것도, 왜구들에게 잡혀 그들의 일원이 된 것도, 조선을 약탈한 것도, 그리고 이렇게 다시 잡혀 온 것도 원인을 생각하면 내가 원해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도대체 운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살동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의 인생 역정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 투성이로 여겨졌다.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고 보면 태어난 것부터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누구의 의지란 말인가. 나의 이 작은 육신을 갖고, 짓궂게 장난질을 치는 건 누구란 말인가.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니, 도대체 누가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내 운명을 농락할 그런 권한과 힘을 주었단 말인가. ? 나는 이 운명을 거부할 힘조차 없는 미약한 존재로 태어났단 말인가?
“오, 하늘이시여!


살동은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운명이 너무도 가엾음을 느꼈다. 하늘을 원망하는 탄식이 저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나왔다. 살동이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하늘을 원망하는 동안에도 함거의 바퀴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굴러가, 한성 땅에 도착했고 숭례문을 통과해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로서는 생전 처음 밟아보는 한성 땅이었다. 살동이 한성 땅에 도착했음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져 있을 때, 도성 백성들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함거 쪽으로 다가왔다. ‘叛民 沙火同(반민 사화동)’이라 쓰인 종이를 본 그들은 곧 손가락질 해댔다. 호송 군사들에게 접근해 무슨 죄인가를 묻곤, 곧 ‘능 지처참할 놈’이라는 소리를 내지르며 악담을 퍼부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살동과 왜구 일행을 때려잡아 죽일 듯했다. 보는 눈이 험악했다. 지방과 달리 도성안 백성들은 매우 정치적이었다. 한성으로 호송된 살동과 일행은 곧바로 의금부에 수감되었다.


“반민 사화동이 잡혀 왔습니다. 그리고 대마도주의 노고로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이 다 돌아왔다고 하옵니다.


살동이 압송된 일은 승정원을 통해 곧 선조에게 보고되었다.


“알았다. 가엾고 어리석은 백성이로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였는지, 짐이 직접 문초하도록 하겠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그리 천한 것을 전하가 몸소 다스린다니 전례에 없는 일이옵니다. 반민의 문초는 형조판서에게 맡기시고 나중에 처결만 내리시면 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선조가 직접 문초한다는 말에 승정원에서는 극구 반대하였으나, 웬일인지 선조는 일언지하에 이를 내쳤다.


“아니다. 내 왜 반민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번엔 내 직접 문초하련다. 죄인을 인정전(仁政殿)으로 끌고 오도록 하라.

제 2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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