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주>
반민
사화동(沙火同)
‘짐이
대명국을 정벌하고자 하니 조선은 길 안내를 하라.
그리하면
조선은 태평성대하리라.
마지막
기회다.
조선의
안녕을 위해 조선 왕은 바다를 건너와 짐을 알현하도록 하라.’
히데요시는
그 자리에서 즉시 조선 왕의 입조를 강요하는 서찰을 다시 작성케해 요시시게에게 전했다.
“이번에는
실패 없도록 하라.
이번에
또 실패하면 도주 역시 그 책임을 면치 못하리라.”
외교의
실패를 물어,
본보기로
야스히로를 처형한 히데요시는 요시시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히데요시의
서찰을 받은 요시시게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제는
대충 넘어갈 상황이 아님을 감지했다.
요시시게는
뒷목이 서늘해짐을 느끼면서 즉시 그 길로 대마도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자인 요시토시(義智)와
측근 중의 측근인 승려 겐소(玄蘇)
를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세자에
해당하는 차기 영주 후보를 파견했다는 것은 조선 조정에 그만큼 상황이 중대함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게다가
승려 겐소는 한문에 뛰어났다.
박학다식하고
문과 예를 중시하여 조선 외교에는 적임자였다.
야스히로와는
격이 다른 사절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신이 건너오도록 해야 한다.”
조선
조정도 대마도 측의 움직임을 보고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언제까지
통신사 파견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안 조정 대신들과 임금은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조선
사람으로 사화동(沙火同-살동의
한자표기)이라는
반민이 오도열도에서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살고 있다고 한다.
몇
해 전에 남쪽 해안에 들어와 우리 땅인 흥양을 침범해 분탕질하고,
많은
양민을 붙잡아갔다.
반민
사화동과 그와 같이 다니는 왜구들을 붙잡아 조선에 넘기고,
또한
그때 붙잡혀간 조선의 양민들을 송환해 온다면 통신사를 파견할 것이다.”
조건이
붙었지만,
조선
조정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요시토시와 겐소는 즉시 대마도로 돌아와서는,
교토로
달려가,
히데요시에게
보고했다.
“내
영을 내릴 테니,
대마도
군사는 즉시 오도열도로 향하라.
오도열도의
영주에게 나의 친서를 전하라.
조선의
반민과 포로들을 찾아내거든 즉시 조선으로 보내도록 하라.
포로송환
등과 관련한 모든 일과 뒤처리는 대마도에서 처리하라.”
그
무렵 오도열도의 영주는 고토 스미하루(純玄)였다.
원래는
마츠우라당의 비호를 받았으나,
히데요시의
세력이 급팽창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안존을 위해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신하가
되었다.
오도열도는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어 히데요시의 정벌전쟁이라는 전화에 휩쓸리진 않았으나,
천하
통일을 이룬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변함없이 영지 지배를 허락받고 있었다.
스미하루는
히데요시라는 후견인을 등에 업고 나서 오히려 기반이 탄탄해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는
자신의 성씨를 우쿠
(宇久)에서
고토(五島)로
개칭했다.
히데요시에게
과거와 단절을 꾀한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서였다.
히데요시가
일본 전토를 통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지 지배는 항상 불안하였다.
하극상이
만연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언제,
누가
힘을 키워 공격해올지,
아니면
측근의 배신을 당할지 몰라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히데요시의 천하 통일 후,
그의
신하가 되면서 이러한 불안은 사라졌다.
통치는
과거보다 안정되어 스스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대마도에서 파견된 사절 마츠하루(松晴)가
히데요시의 서찰을 들고 나타난 것이었다.
명령서에는
붓으로 흘려 쓴 글귀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첫째,
조선인
사화동(沙火同)과
함께 조선에서 분탕질하는 그 일 당을 붙잡아 즉시 대마도로 넘길 것.’
‘둘째,
섬에
포로로 잡혀 있는 조선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대마도로 넘겨 조선으로 송환할 것.’
‘셋째,
만일
이를 조금이라도 어기고 기망할 시에는 모든 관직을 박탈할 것이며,
가문의
존속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
스미하루는
히데요시의 서찰을 보고도 영문을 몰라 사절인 마츠하루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간바쿠
전하가 왜 이리 서두르는 것이오.
그것도
조선인들을 위해.”
“실은
조선 측에서 요구가 있었습니다.”
“조선
측의 요구를 그냥 들어줄 리는 없고,
무엇을
원하는 것이오?”
“통교를
위해 조선의 통신사를 파견하라는 것이지요.”
“조선
통신사와 포로들의 교환이라는 말이군!
내
잘 알았소.”
마츠하루가
허리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응답했다.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도적들이 반항할 경우를 대비해 원군 삼백을 보내주셨습니다.
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군사가 그들이옵니다.”
“잘
알았소.
그러나
우선 나에게 맡겨주시오.
만일
여의치 않으면,
그때
원군을 요청하겠소.”
스미하루는
즉시 가신단을 모아 히데요시의 명령을 수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히데요시에게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주군!
영지
내 섬에는 어민들과 해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간바쿠
전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선인과 결탁해 있는 해적들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로 여겨집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영내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되도록 빨리 그들을 찾아내어 송환할 수 있도록 조처하겠습니다.”
측근
부장인 타다에가 머리를 수그리며 자신에게 일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내
모든 것을 타다에에게 맡길 것이다.
타다에,
간바쿠
전하께 잘 보고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수행하도록 하라.”
스미하루는
자신의 측근 가신인 타다에에게 전권을 주었다.
“이번
일을 잘 수행하면 간바쿠인 히데요시님에게 또 한 번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지는 한층 더 안정될 것이다.”
“추호도
틀림없이 일을 수행하겠사옵니다.”
타다에는
이를 그 나름대로 주군의 환심을 살 좋은 기회로 여 겼다.
그는
우선 부하들을 모아 수소문하고 정보를 모으도록 하였다.
“섬에서
조선을 분탕질하고 조선인을 포로로 잡아놓은 자들이 어디에 진을 치고 있는지 상세히 조사해 보고하라.
특히
사화동
(沙火同)이란
조선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아라.”
‘사화동(沙火同)’
타다에는
직접 종이에 이름을 써서 부하들에게 전했다.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보고가 올라왔다.
‘조선에서
표류해 온 사화동(沙火同)이라는
자가 해적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주군,
아뢰옵니다.
말씀하신
조선민들과 해적들이 후쿠에 섬 서쪽에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틀림없으렷다.”
“그들이
자주 조선으로 배를 타고 나가 분탕질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바로
잡아들여라.”
절대
권력자인 히데요시의 명령에 조금이라도 꾸물거렸다가는 언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스미하루는
타다에의 보고를 받자마자,
즉각
타다에를 주장으로 삼아 군사 오백을 내주어 무장을 시키고는 이들을 잡아 들이도록 했다.
“반항하면
조선인들은 생포하고 해적들은 죽여도 좋다.”
영주의
단호한 명령을 받은 타다에는 무장된 병사 오백을 이끌고 즉시 서쪽 해안으로 향했다.
영주가
거주하는 성의 서쪽으로는 높은 산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그쪽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굳이
가려면 높은 산을 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 돌아가는 길 밖에 없었다.
접근이
어려운 만큼 관리도 소홀했다.
성내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쪽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
‘배를
타고 해적들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산을 넘어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해야 기습 공격이 가능하다.’
타다에는
기습 공격을 통해 해적들을 소탕하고자 했다.
그러려면,
군사들과
함께 높이 솟아있는 산을 넘어야 했다.
산세는
험했다.
산이
가팔랐고,
해안
쪽으로 기울어진 산비탈은 경사가 심했다.
산줄기가
끝나는 곳에 해안이 있었다.
가파르게
뻗어 내린 산등성이 아래쪽으로 바다가 넓게 퍼져있었다.
바닷가와
이쪽 산비탈 사이에는 손바닥만 한 좁다란 평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곳에
산을 등에 업고 여기저기 인가가 들어서 있었다.
타다에가
군사들을 이끌고 겨우 산을 넘어 아래쪽으로 내려 들자,
작은
해안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왼쪽
산등성이에 듬성듬성 움막이 처져 있었는데,
평지보다
그 호수가 많았다.
마을
어귀에는 돌담이 쌓여 있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어촌 마을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마을은 요새화되어 있었다.
타인의
출입을 통제하려는지 어른 키만한 망대도 있었다.
성안에
이들의 정보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이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는 있었으나,
섬
안에서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기 때문에 굳이 이들을 단속할 이유가 없어 묵인해 두었던 터였다.
게다가
성에서도 가끔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이들에게 조달을 받아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굳이 해가 되지 않아 필요에 의해 적당하게 이용해 왔던 것이다.
상납과
교역을 통해 성의 재정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잠시
멈춰라.”
군사들을
멈추게 한 타다에는 곧바로 마을로 쳐내려가지 않았다.
우선
산비탈 중간에서 멈추어서는,
만일에
대비해 정탐대를 내보내기로 했다.
한편,
타다에가
군사들을 이끌고 산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정탐을 내보냈을 무렵에는 이미 그들의 동향은 왜구의 경계망에 걸려
있었다.
“무장을
한 군사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곧바로
두령인 소베에게 보고됐다.
“곧
전원 무장을 하고 집결하도록 전달하라.”
두령의
소집 명령이 떨어지자 나무 기둥에 매어져 있던 종이 울려 퍼졌다.
탱탱탱
움막에
있던 왜구들은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무기를 들고 해안가로 모여들었다.
해안가
바닥에는 뾰족하고 검은 돌이 무수히 깔려 있었다.
왜구들은
그곳에 배를 묶어 놓았는데,
앞쪽으로는
넓은 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공터에
모인 왜구들은 약 백여 명 남짓하였다.
왜구들은
무장한 채 서로 얼굴을 살폈다.
모두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불안한 모습이었다.
“성에서
군사들이 몰려왔다는데.”
“우리가
섬에서 무슨 잘못을 저지른 일도 없는데,
왜
군사들을 보냈나?”
군사들이
몰려왔다는 소리에 모두 불안해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잠잠하던 성주가 왜 군사를 파견했는지를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왜구들
가운데는 살동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다른 왜구들과 마찬가지로 칼을 들고 있었다.
덩치는
다른 왜구들보다 컸으나,
머리를
변발해 왜구들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모습이 변해 있었다.
두령이
나타났다.
그리고
명령이 떨어졌다.
“일부는
군사를 맞아 싸울 준비를 하고,
나머지는
배를 바다로 띄울 준비를 하라.”
명령에
따라 두 패로 나누어져 귀한 물건들을 부지런히 배에 실었다.
사태가
여의치 않으면 바다로 튈 작정이었다.
성내의
군사들은 육지에서는 강했지만,
바다에만
나서면 두려워할 상대가 못되었기 때문이었다.
두령
소베가 해안 가까운 등성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두령들을
시켜 부산하게 지휘하고 있을 때,
망을
보던 왜구가 무장을 한 병사와 함께 올라왔다.
“성의
군사가 전령을 보내왔습니다.”
타다에의
전령이었다.
소베는
전령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군사들이 몰려왔느냐?
우리가
섬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친 일이 없거늘,
왜
군사를 끌고 와 위협하느냐?”
전령은
표정도 변하지 않고 선 채로 말을 전달했다.
“사히도(沙火同의
일본식 한자 발음)란
조선인 반민을 넘겨라.
그리고
이들과 함께 조선을 침범한 일당 셋과 납치해온 조선인을 모두 넘겨라.
명령을
따르면 마을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피해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이
명령은 간바쿠 전하이신 히데요시 님의 분부이다.
간바쿠
전하의 명령으로 대마도 군사 삼백이 섬에 상륙해 있다.
만일
명령을 거역하고 바다로 도망간다 하더라도 도피할 곳은 없다.
어디로
가더라도 간바쿠 전하의 감시를 피해 살아남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잘
판단하길 바란다.”
타다에는
해적 두령이 글을 모를 것으로 알고,
전령에게
구두로 말을 전하도록 시킨 것이었다.
주위에
있던 소두령들도 함께 전령 이 큰소리로 외치는 내용을 들었다.
“사히도가
누군가?”
“사히도?
조선인?
아!
사르동을
말하는군!”
전령은
한자를 일본 한자 발음으로 말했고,
왜구들은
살동을 사르동으로 발음하며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안
돼,
사르동은
우리 동료야!
우리의
목숨을 구걸하려고 동료 를 팔 수는 없지!”
“간바쿠의
권세를 몰라서 하는 소리.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간 이곳부터 풍비박산이 날 건 뻔하고,
그다음
바다로 나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상륙할 땅은 없을걸.
운
좋게 상륙할 땅을 찾아 겨우 오른다 하더라도 간바쿠가 우리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의리를
내세우는 자,
이익을
따지는 자,
소베
옆에 있던 소두령 들이 제멋대로 지껄이며 왈가왈부,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제 2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