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서적을 가까이했고, 천주교에 대한 신앙심도
독실했다.
유키나가는 구로에몽을 대신하여 성주에게
납품을 관장하는 책임자가 되어, 항상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했다. 성을 출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젠성의
성주인 우키다가의 가신들 사이에서 유키나가의 사람됨과 그의 행실에 대한 칭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키나가는 자신이 맡은 직업상 여기저기
행상을 겸한 정보원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그가 수집한 정보는 곧 이익을 창출해
냈다. 게다가 그는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수시로
성을 출입하며 우키다의 측근들에게 그 정보를 전해주었다. 고급 정보였다.
그에 대한 평판이 측근들 사이에서
높아지자,
자연스레 그 소문은 비젠성의 영주 우키다
나오이에(宇喜多直家)의 귀에
들어갔고, 영주도 자신의 성을 들락거리는 유키나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영주는 유키나가의 물품 관리와 정보 수집
능력뿐 아니라, 무장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근육질의
몸매, 그리고 빈틈없는 태도와 움직임을 유심히
보았다.
‘사무라이로서도 손색이
없다.’
영주 우키다는 가끔 뒤뜰에서
무장을 한 채, 칼과 활로 병법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날도 뒤뜰에 있는데 측근 가신으로부터
유키나가가 입성을 했다는 기별이 왔다. 이전 같으면 객실에서 기다리게
했으나, 그날은 우키다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뒤뜰로
유키나가를 불러들였다.
“그렇더냐.
그럼,
이리로
들라하라!”
“주군, 객실이 아니고 이곳으로 직접
말입니까?”
“그래, 내 여기서 몇 가지 확인할 일이
있느니라.”
곧 이어 당당한 체구의
유키나가가 뒤뜰로 안내돼 왔다. 황공스럽다는 듯 허리를 바싹 숙인 채
들어오는 유키나가를 우키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았다. 그러면서도 모르는 척 왼손으로 활을 쥐어
잡고는 화살을 날렸다. 뒷뜰로 들어선 유키나가는 활을 쏘고 있는
영주 우키다의 모습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맨땅에 무릎을 꿇었다. 우키다의 상체는 반쯤 벗겨져
있었다. 근육질의 상체에서는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김이 하얗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전하,
나야가의 유키나가
대령했사옵니다.”
“오, 내 오늘 확인할 일이 있어 이리 오도록
했다. 일어나 이리 가까이 오도록
하라.”
우키다는 쏘던 활을 옆에 있던
가신에게 넘겨주면서, 유키나가를 맞이했다.
활을
쏘기 위해 걷어붙였던 옷을 내리고는 옆에 세워놓은 목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유키나가 쪽으로 몸을
틀었다.
“예,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유키나가가 황공하다는 듯이 허리를
수그렸다가 영주의 모습을 살피려 고개를 들어 올리려 할 때였다.
목검을 들고 있던 우키다가 그대로 유키나가의
정수리를 노리고면서 목검을 내려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받아라!”
우키다가 내려치는 목검이
유키나가의 정수리를 노리고 들어 왔다.
영주에게 호출을 받아,
너무나
황송한 나머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조심했던 유키나가였다.
“앗!”
몸을 수그리고 있던 유키나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옆으로 몸을 굴렸다. 민첩한 몸놀림이었다.
휘휭.
소리를 내며 목검은 위에서 아래로 허공을
갈랐다.
맞았다면 머리가 깨져 성치 못했을
터였다.
“전하!
어째서….”
유키나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몸은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호오!
과연
내 느낌이 틀림없었구나!”
“유키나가! 내 그대의 체격과 근육질을 보고 무예를 익힌
몸이란 걸 익히 알고 있었다. 어디에서 무예를
익혔느냐. 무예를 익혔다면 어디 내 앞에서 솜씨를 보여
봐라.”
우키다는 자신이 들고 있던
목검을 가신에게 넘기고는 계단 위로 성큼성큼 올라서더니 대청에 준비된 의자에 걸터앉았다.
“유키나가,
거기
있는 몬자에몽이 상대가 되어줄 것이다. 비록 목검이지만 진검으로 여기고 자웅을
겨뤄보도록 하라. 내 이기는 자에게는 포상할
것이니라.”
유키나가의 상대인 몬자에몽은
나이가 마흔 중반이었으나, 여러 싸움터에서 실전을 경험한
백전노장이었다. 유키나가는 젊고 힘은
있었지만, 아직 실전 경험은
없었다.
“몬자에몽!
유키나가에게 한 수 가르쳐
주어라.”
“예, 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몬자에몽은 영주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목검을 받아 오른손으로 쥐어 잡았다.
우키다는 부하를 시켜 유키나가에게는 목검을
주도록 했다.
곧
대련의 형식을 띤 대결이 벌어졌다.
“자,
그럼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키나가가 목검을 받아들고
예를 갖추자마자, 몬자에몽이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해
들어왔다.
‘이런 장사꾼쯤이야.’
몬자에몽은 속으로 유키나가를
얕보았다.
가능한한 십합 이내에 승부를 결정짓고
싶었다. 유키나가를 가볍게 제압해 영주에게 자신의
무예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엇차.”
유키나가는 일단 뒷걸음으로
물러서며 몬자에몽의 목검을 쳐냈다. 첫 공격을 피하긴
하였지만,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 몬자에몽의
목검 다루는 솜씨는 과연 매서웠다. 좌를 치는척하며 우측의 빈틈을 치고 들어
왔다. 위가 비었다 싶으면,
곧바로
목검이 정수리를 향해 내려왔다.
그에 맞서는 유키나가의 실력도 만만치는
않았다.
몬자에몽의 날카로운 공격을 받아내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상대가 주춤하면 여지없이 유키나가의 목검이
허공을 가르며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유키나가를 무시하며 들어오던
몬자에몽도 몇 합을 주고받으면서 유키나가의 무예와 힘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손에는
목검을 쥐고 있었지만 실전을 방불케 했다. 지켜보던 우키다와 가신들 모두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목검에 살기가 서려있기
때문이었다.
‘맞으면 중상을 입거나 죽을
수도 있다.’
진검 승부와
진배없었다.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공격과
수비를 하며 수십 합을 주고받자, 우열이 보이지 않던 둘 사이에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몬자에몽의 입에서 더운 김이
‘헉헉!’거리며 피어올랐다.
동시에
몸의 중심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체가 흔들리면서 집중력이 약화된
것이었다. 나이의 차이였다.
검술은
극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집중력이 끊어지는 순간,
그
한순간의 흐트러짐이 승패를 좌우한다. 유키나가는 몬자에몽의 칼끝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침착한 성격의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을 끌었다.
몬자에몽의 목검이 흐느적거린다 싶을
때, 상대의 목검을 쳐내며
허리, 어깨,
머리를
연속으로 치며 들어갔다. 힘에서 밀린 몬자에몽은 유키나가의 목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나다 발이 엉켰다. 뒤뚱거리며 그대로 뒤로
주저앉았다. 머리와 어깨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얍!”
기합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에
있는 모든 기를 한데 모은 기합 소리였다. 동시에 유키나가의 목검이 상대의 어깨를
노리고 위에서 아래로 사선을 그으며 내려갔다. 몬자에몽의 어깨가 박살이 나 깨지는가
싶었는데, 목검이 어깨 위에서
멈췄다.
“승부,
결정.”
유키나가의 승리였다.
예기치
않은 기회에 유키나가는 영주인 우키다 앞에서 유감없이 자신의 무예를 피력하게 된 것이었다. 유키나가는 뒤로 넘어져 있는 몬자에몽에게
다가가, 머리를 숙여 절을 한 후 어깨를 감싸고 함께
일어났다. 둘은 우키다가 앉아있는 대청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숙였다.
“오호,
대단하구나.
움직임보다는 지칠 줄 모르는 힘이
좋아, 힘이….
와하하하!
몬자에몽 어떤가?”
“주군의 말씀대로 힘이
뛰어났습니다.”
우키다는 유키나가가 마음에
들었다.
물품
구매뿐만 아니라 뛰어난 정보 수집력, 거기다 관리능력까지 지니고 있는 그가
사무라이로서도 손색이 없는 무예와 힘을 지니고 있으니 가신으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성내의 재정을 건실하게 해줄 뿐 아니라
전시에는 사무라이 대장의 역할도 맡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유키나가,
그대를 가신으로 임명한다. 앞으로 우키다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우키다는 유키나가에게 가신으로 근무할 것을
명했고, 정보 수집과 외교의 모든 것을 일임했다. 사무라이
가문 출신이 아닌 상인 출신으로, 그것도 타 지역에서 온 유키나가가 영주의 측근이 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극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아,
전하, 하해와 같은 은혜 황공하옵니다.
유키나가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옵니다.”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유키나가님, 영주님에게 인정받을 줄 알았습니다. 같이 일하게 되어 정말 기쁜
마음입니다.”
영리한 사람들은 흔히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자기 착각에 빠져, 겸허함이 부족하기 쉬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유키나가는 달랐다. 항상
겸손했고, 자신보다 주변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씀씀이의 소유자였다.
때로는 우직할 정도로 보이는 성실함과 의리, 거기에 따뜻한 인간성까지 지닌
그였다. 그가 장사치 출신이라고 무시하며 가신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제 19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