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 사화동(沙火同)>

손죽도에서 만호 이대원을 참살하고, 그 휘하 수군과 손죽도 양민을 포로로 잡은 왜구들은 자신들의 본거지인 후쿠에 섬으로 돌아갔다. 양민들은 끌려가는 배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군사들은 그래도 의연한 편이었다.

살동은 이들을 애써 외면하려 하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연민의 정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왜구들이 이들을 심하게 닦달하면, 나서서 통역을 하며 왜구들을 달랬다.

 

‘인지상정인가?

 

그는 양민으로 포로가 된 사람들이 가엾게 느껴졌다.

 

“두려워할 것 없소. 나는 옥주사람이오. 전복을 따러 배를 타고 나섰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에 표착하였소. 처음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이곳이 조선보다 편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오. 조선에 있을 땐 우리 같은 상놈들에게 하도 부역을 많이 시켜 삶이 힘들고 고되었소. 또 때마다 탐관오리들이 조()다 역()이다, 공납(貢納)이다 하여 많은 수탈을 당했소. 하지만 이곳은 그런 거 없소. 시키는 대로 말만 잘 듣는다면 여기 사는 것이 조선에서 사는 삶 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소. 그리 아는 게 마음 편할 것이오.

 

본거지인 후쿠에 섬에 도착한 왜구들은 즉시 포로들을 분별했다. 예쁘고 젊은 여자들은 노리개로 삼았고, 나이 든 아낙들은 잡일을 거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건장한 장정들과 군사들은 교역선에 싣고 나가사키 근처의 노예 시장으로 끌고 가 노예로 팔아넘겼다.

전라좌수영 소속이던 김개동(金介同)과 이언세(李彦世)도 포로로 잡혀왔다. 그들은 곧 다른 포로들과 함꼐 당시 노예 시장이 상설 되었던 나가사키로 끌려가 노예로 팔렸다. 이들을 사들인 사람은 중국 사람이었다. 노예로 팔린 이들은 곧 배에 실려 중국 남쪽 광서(廣西)지방으로 끌려갔다. 졸지에 무역상의 노예가 된 두 사람은 주로 짐을 나르는 짐꾼이 되었다. 변변치 못한 식거리가 제공되었고, 밤에는 창고에 갇혀 집단생활을 강요당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도무지 답답했다. 대개는 창고에 갇혀 있다가 짐을 나를 일이 있으면 소집되어 배가 출항하기 전에 창고에 있는 교역품을 바다에 있는 배로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이보게 여기는 명나라인 것 같네!

 

하루는 배에 실으려고 짐을 지고 나갔던 이언세가 돌아와서는 개동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는 천자문을 깨쳐 조금은 글을 아는 사람이었다.

 

“한문이 여기저기 쓰인 걸 보니 명나라가 틀림없네!

“그럼, 이곳 주인에게 우리가 조선 출신이라는 걸 알리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구먼요.

“근데, 그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네. 이곳 주인이 돈을 주고 우리를 노예로 사들였으니, 절대 공짜로 우릴 놓아줄 리 없네.

“그럼, 어떡하면 좋은가요?

“먼저 기회를 봐 이 집을 빠져나가야 하네. 그리고 관청에 가 우리가 조선의 군사 출신이란 걸 알린다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네.

“그럼, 그렇게 해야죠!

 

둘은 도망갈 궁리를 한 끝에, 우선 감시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척 하였다. 감독관도 그들이 꾀부리지 않고 고분고분 일을 잘하자, 다른 노예들과는 달리 부드럽게 대해 주었다. 그날도 창고에 있는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감독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짐이 많으니 모두들 나와 짐을 싣고 선창으로 간다. 꾀를 부리는 놈은 경을 칠 줄 알아라.

 

두 사람은 감독관이 중국말로 뭐라 떠드는 것을 듣긴 하였지만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그냥 눈치로 이해했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솔선하여 남들보다 많은 짐을 등에 지고 창고 문을 나섰다. 창고 밖에는 중국인 감독이 채찍을 들고 서 있다가, 남보다 많은 짐을 지고 창고 문을 나오는 이언세와 김개동을 쳐다보고는 만족스러운 듯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뭐라 했다. 아마 ‘조심하라.’는 뜻일 거라 이해했다. 배에 짐을 다 부리고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감독의 눈을 속여 짐꾼들의 열을 이탈했다. 자신들이 도망친 것을 알면 곧 추격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잡히기 전에 관청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도대체 말도 안통하고 넓은 사방에서 관청을 찾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우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시장을 찾아가세.

 

이언세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저잣거리 근처에 가면 거기서 관청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짐이나 생필품을 막대 양쪽에 바구니에 걸쳐 매고 다니는 사람들이 상인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는, 몰래 그들을 따라붙었다. 그들은 시장을 찾자 만두를 가게 앞에 수북이 놓고 파는 상점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을 맞이한 상인은 중국말로 뭐라 했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 로 이언세는 얼른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주워 들고는 바닥에 한자를 썼다.

 

관청(官廳)

 

이언세의 행동을 보고 가게 앞으로 나온 중국 상인은 땅의 쓰여진 글을 보고 잠시 그들을 위 아래로 내려다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김개동이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상인은 손으로 시장 반대쪽을 비스듬하게 가리켰다.

 

“쉐쉐.(감사)

 

중국말로 고맙다고 답하고, 둘은 시장 입구를 돌아 나와 담이 높게 둘러쳐져 있는 곳을 찾아냈다.

 

“저기가 관청이 틀림없네. 입구가 어딘지 찾아보세.

 

담을 따라 뒤로 돌아가니 관원인 듯한 자가 벙거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쇠판을 덧댄 커다란 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둘은 허겁지겁 관청 문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문지기는 허름한 모습을 하고 다가오는 그들을 보더니 창을 세워 막아섰다.

 

“쉐쉐, 워 스…(감사. 나는) .

 

중국말을 모르니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문지기는 웬 거지들이 관청 앞에서 어슬렁거리나 싶어 귀찮은 듯 그들을 멀리 쫓아내려고 들고 있던 창으로 찌르는 시늉을 했다. 겁을 주기 위한 동작이었지만 위협적이었다. 급해진 이언세는 다시 막대를 하나 주어들고 흙 위에다 한문을 썼다.

 

‘吾等是朝鮮人.(우리는 조선 사람이다.)

 

가까이 다가와 흙 위를 쳐다보던 문지기는 문자를 알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들을 흘끔 쳐다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가 누군가와 함께 나왔다. 문지기의 복장과는 차림새가 다른 자였다. 웃옷에는 장식이 달린 비단옷을 걸치고 있어, 한눈에도 지위가 있는 관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조선인이오. 왜놈들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이곳까지 팔려왔소.
이언세는 다급한 마음에 관원을 보고 조선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전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관원 역시 조선말을 알지는 못했다.
 
“이놈들은 오랑캐들 아니냐?
 
관원이 중국말로 문지기를 타박했다. 그러자 문지기는 당황해서 손으로 이언세가 흙바닥 위에 써 놓은 한문을 가리켰다. 흙 위에 쓰여진 한자는 조금 희미해지긴 하였으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관원은 글을 본 후, 다시 두 사람의 위아래를 한 번 쑥 훑어보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지필묵이 들려져 있었다.
이언세는 지필묵을 받아 들고서는, 땅바닥에 앉아 자신의 한자 지식을 최대한 살려 한자로 문장을 만들어 가며 글을 지어냈다.
 
‘저희는 조선 사람으로, 전라좌수영에 속해 있는 수군입니다. 왜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이곳으로 팔려왔습니다. 조선은 명국의 신하국입니다. 조선으로 돌려 보내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결초보은 하겠습니다.
 
이언세의 글은 이곳 지방관인 도사(都司)에게 올라갔다. 도사는 이언세가 올린 문장을 보고 이들이 조선 사람이 틀림없다고 보았다. 조선 사람들이 중국 글을 잘 안다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명나라와 조선국의 관계가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 오랑캐라면 한문을 알리가 없다는 것이 도사의 판단이었다. 도사는 곧 보고서와 함께 관원을 시켜 이들을 북경으로 호송하도록 조치했다.
중국 남서부에 있는 광서에서 북경까지는 수천리 거리였다. 두 사람은 관원들의 호송을 받으면서 한 달 이상을 거쳐 북경에 도 착했다. 북경의 관청으로 넘겨진 두 사람은 그곳에서 다시 심문을 받았다. 지방관인 도사가 올린 보고서를 근거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으나, 심문은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너희들의 출신이 조선이라 했는데 조선 어디 출신이며 왜 여기 까지 왔느냐?
???
“큰일이네. 말이 통해야 선처를 구할텐데, 도통 말이 안 통하니….
“아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수가 없을까요?
“수근거리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
 
왕도(王都)라 그런지 심문조사를 하는 관원의 태도가 지방 도사와는 달랐다. 이언세는 손으로 한자를 썼다.
 
“請給我筆(나에게 붓을 주시오.)
 
날카로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던 중국 관원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고는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쓰던 붓을 건넸다. 필담이 이루어졌다.
이언세는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천자문을 배웠지만, 본격적으로 과거를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한자 능력은 천자문 정도였다. 과거를 위해 사서삼경을 통달하였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천자문 정도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말이 안 통해, 붓을 받았으니 문장으로라도 자신들의 처지를 상세히 설명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질 않았다.
중국 관원들은 그가 쓴 문장을 보고 조금 이해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언세 역시 그들이 한문으로 해오는 질문을 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일이구나.
 
이언세는 자신의 한문 능력의 한계를 알고 답답해 했다.
 
그는 이 심문이 자신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심문하는 중국 관원들에게 자신들의 신분과 지금까지의 경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이대로 객지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필사적인 심정으로 이언세는 중국 관원에게 옥편을 요구했다. 섣불리 한자를 쓰는 것보다는 옥편을 보며 자신이 아는 한자를 최대한 이용해 문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침착해야 한다.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목숨을 좌우한다.
 
이언세는 신중하게 중국 관원들의 심문에 정성을 다해 옥편을 보며 필담으로 답을 했다. 자신들이 조선의 관원이라는 것과 왜구에게 끌려갔다가 노예로 팔려 명으로 오게 된 경위를 문장으로 되도록 알기 쉽게 담아냈다. 명의 관원들이 이언세가 쓴 한문을 받아들고 사정을 이해하는 데에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문장이 어색하여 상세한 내용까지는 어려웠지만, 문맥을 통해 대강의 경위와 중요한 부분은 전달됐다. 처음에는 엄격한 심문 형식을 취했던 중국 관원들도 이언세가 적어 내는 글의 내용을 보고는 뜻이 전달됐는지 조금씩 시선과 말투가 부드럽게 바뀌었다.
이언세의 필사적 노력 끝에 두 사람은 명의 조정으로부터 조선 관원의 신분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 이언세는 너무도 감개무량했다.
왜구와의 전투에서 대장은 전사하고 자신들은 포로가 되어 왜국에 끌려가 노예로 팔린 일, 게다가 중국에까지 끌려와 중노동을 하다가 부두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쳐 나와 여기까지 이르렀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개동이, 이젠 고향에 갈 수 있을 것 같네!
“너무 잘 됐습니다. 여하튼 너무 수고했습니다.
 
개동은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에 저도 모르게 이언세의 두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명 조정은 그들을 한동안 북경에 머무르게 했고, 이들은 이듬해 조선에서 오는 사행인 사은사를 따라 조선으로 돌아왔다. 사행들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 이언세와 김개동은 다시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았다. 심문 결과 한 해 전 손죽도에서 포로가 되어 오도열도로 끌려간 좌수영 군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쇤네들이 왜나라 섬에 끌려갔을 때 안 사실이지만, 그곳에는 살동이라는 이름을 쓰는 조선민이 있었습니다. 손죽도에 왜구를 끌고 온 것도 그 살동이라는 놈의 소행인 걸로 들었습니다. 왜구와 한패가 된 조선 백성이었습니다.
“뭣이라고? 조선 백성이 왜구들을 끌고 들어와 그 분란을 일으켰단 말이더냐? 그렇다면 반민이 아니더냐. 틀림없는 사실이렸다?
“저희가 왜구의 소굴로 끌려갔을 때, 그 살동인가 뭔가 하는 놈이 우리에게 조선말로 자신은 옥주 태생이라고 하는 것을 이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김개동은 자신이 들은 바를 조정 관원들에게 소상히 고했다. 이들을 통해 살동에 관한 일이 조정에 처음 알려졌다.
살동에 관한 일은 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지난 정해년 봄에 왜구들이 죽도에 들어와서 이대원을 죽였으며 또 해변 백성 사화동(沙火同-살동을 한자로 사화동으로 표기함.)이란 자가 일본 오도에 표류되었다가 섬의 왜인들을 유인하여 와서 해마다 우리나라 해변을 괴롭혔다.
 
제 1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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