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화
일본땅
표착
살동은
작은 파도에도 흔들흔들 요동치는 작은 배 안에 갇혀 있는 자신들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러면서도
연신 눈을 희번덕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저
주변에 작은 섬이라도 발견되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였다.
컴컴한
바다 위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한 조각 희망의 끈을 찾기 위해 안광을 빛내는 그의 모습은 흡사 생존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멀리서
어둠이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바다 끝에서 희미하게 여명이 밝아왔다.
밤을
꼬박 새운 것이었다.
날이
밝아 시계가 좋아지자,
이들은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망망대해만이 덧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워메,
이놈의
바다 지긋지긋하구먼.”
“그랑께
말이여.
근디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걸 봉께,
겁나게
떠내려 와 부렀구만.”
세
사람 모두 눈에 실핏줄이 벌겋게 서 있었다.
“긍께,
항상
바위나 섬이 보였는데,
암꿋도
안 보이는 건 처음이랑께.
큰일
나 부렀네,
그려.”
배는
점점 더 고파왔다.
먹을
것,
마실
것이 없는 이들에게 차츰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바다 위에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여,
살동이,
어뜰게
길 못 찾겄냐?”
바다를
유심히 살피고 있는 살동에게 서봉이 물었다.
살동이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배를 타고 먼바다도 자주 나가 뱃길에 익숙하다는 걸 잘 알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물었던
것이었다.
살동은
못 들은 척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도
나름대로 배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며 물길을 찾아내려 애를 썼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듣도 보도 못한 물길이었다.
“워메,
뭔
말 좀 해봐라.
사람
말이 말같이 안 들리냐?”
물길의
방향을 짐작할 수가 없어,
대답을
주저하고 있자 서봉이 역증을 내며 재촉했다.
“나도
처음 보는 물길이랑께.
솔찬이
먼바다로 밀려온 거 같구마.”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뱃전의 방향이 바뀌었다.
머리
위를 넘어간 해가 오른쪽에서 비추는 것을 보고 살동은 배가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배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갑자기
해가 정수리 뒤쪽에서 비추어 왔다.
남쪽
아래로 내려간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뱃전이 왼쪽으로 틀어졌다.
물길이
바뀐 것이었다.
“워메,
이거
어쩌면 대마도 물길일지 모르겠는디?”
“뭐시라고?
대마도
물길?
그게
뭐다냐?”
“아따,
나도
잘이야 모르는데,
왜나라로
가는 물길이 있다하더라고.
긍께
옛날에 어깨너머로 들은 적이 있구마.”
“우리같이
쪼깐한 배들은 대마도 물길을 만나면 조선으로 못 오고,
그냥
그길로 왜나라로 가뿌리는 거 외에 방법이 없어야!
긍께
너무 밑으로 내려가믄 안 돼 부린다,
잉.”
살동은
오래전에 기억을 더듬으며 몸을 숙여 바닷물에 손을 넣어 물의 흐름을 가늠했다.
아무것도
먹질 못해 하룻밤 사이 핼쑥해진 서봉과 만석은,
처음에
살동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멀뚱멀뚱하고 있다가 왜나라라는 소리가 마음에 걸렸던지 갑자기 얼굴색이 불안한 빛으로
바뀌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겨?
왜나라로
가는 거란 말이여?
워메,
엇지까이!”
“왜나라가
여그서 얼만데?
워메
큰일 나부렀네.
마실
물도 없고 말일씨.”
대마도
물길을 탄 배는 한나절을 흘러갔다.
사방은
망망대해뿐이었고 셋은 점점 지쳐갔다.
‘왜나라든
어디든 제발 육지만 나타나 줘라.’
이제는
어디라도 좋다는 마음뿐이었다.
물과
먹을 것만 얻을 수있다면 지옥이라도 못 갈쏘냐 하는 심정이었다.
“워메,
저
바닷물이라도 쳐먹어야제,
당췌
견딜 수가 없네,
그려.”
“내
말이 그 말이여.”
무엇보다
그들은 입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낮의 햇볕이 가릴 것 없이 노출된 그들의 몸통 위로 사정없이 쏟아졌다.
극히
탈진이 된 이들은 모든 기력을 잃어,
삶에
대한 희망을 조금씩 놓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구나.’
바다가
미웠고 태양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기세로 이글거리던 태양이 점차 서쪽으로 기울어 가더니,
오른쪽
바다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밤이 찾아왔다.
뜨겁게
내려쬐던 태양이 사라져 조금 나아졌다 싶었더니,
밤이
깊어지자 이번에는 밤바다의 추위가 엄습해 왔다.
밤하늘엔
구름이 잔뜩 꼈는지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허기와
추위가 동시에 엄습했다.
창자의
수분까지 고갈되어 버린 뱃속은 이미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없었다.
팔짱을
끼어 몸을 따뜻하게 하려 했지만,
물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은 살갗에 차갑게 와 감겼다.
살갗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셋
다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말을
하면 혀가 뻣뻣이 굳고 갈증이 더 심해졌다.
정신은
조금씩 혼미해졌다.
누가
먼저라고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뱃바닥에 몸을 붙였다.
마지막
기대로 간간히 고개를 돌려 봤지만 사방과 하늘은 그저 캄캄한 허공이었다.
사방이
콱 막혀 아무런 탈출구도 없는 그런 폐쇄된 공간에 갇혀있는 형국이었다.
희망의
빛이라곤 사방 어디에도 없었다.
“워메,
이런
고생하다 죽을 거믄 바다에 빠져죽는 게 날뻔했구마.
제기랄.”
“재수
옴 붙는 소리 그만 혀.
마음
심란해징께.”
기운이
다 빠져 신음하듯 하소연하는 동료들의 말을 곁에서 들으면서,
살동은
자신이 서봉이나 만석처럼,
삶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살동은
부모 형제도 없고 아직 가정도 이루지 못한 혈혈단신이었다.
그냥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다.
그리
즐거운 일도 좋은 일도 없는 생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보자기라고 천대를 받기 일쑤였고,
수확이
조금이라도 좋다 싶으면 공납이다 뭐다 현물세란 명목으로 죄다 관헌들에게 뜯겼다.
힘없고
배경 없는 천예인지라,
뻔질나게
성곽 등의 축조와 보수,
선박
제조 등의 부역에 불려다녔다.
그러고도
관헌들에게 조금이라도 대드는 모습을 보이면 얻어터지고 뜯기고 고생은 배가 되었다.
힘든
삶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나가 가슴이 답답해지고 귀가 멍해지는 고통을 참으며 열심히 해산물을 채취해 봤지만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에
그리 좋았던 삶이라 애착이 있다더냐?
그래,
이리
죽는 게 상팔자다.’
체념의
심정이었다.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살동은
배 밑창에 등을 대고 사지를 넓게 뻗었다.
‘그래,
바다에
살다 바다에서 죽으니 후회도 없다.
그동안
받기만 했던 바다에 이 미천한 몸이나마 바칠 수 있으니,
몸보시를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사흘
동안 아무 것도 입에 넣은 것이 없어 배는 홀쭉하게 푹 꺼져 있었다.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파왔다.
모로
눕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들은
모두 손을 바닥에 놓고 하늘을 향해 대자로 누워 있었다.
배는
돛이 없는데도 출렁출렁 해류를 타고 빠르게 흘러갔다.
‘에라,
모르겠다.
갈
데까지 가보자.’
살동은
생의 마감을 받아들이며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끝이 가물거리다 의식이 몽롱해져 어둠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육지다.
육지여!”
빈사
상태로 잠이 들어 있던 살동의 귀가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웅웅웅 울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탈진해
그대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었다.
고함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뱃바닥에
추욱,
늘어져
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주위는
컴컴했다.
아직
날이 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살동은
귀한 발견이라도 했다는 듯 소리치며 가리키는 서봉의 손끝을 따라 맥없이 눈을 돌렸다.
시커먼
타원형 천장을 엎어놓은 것 같았던 하늘에는 군데군데 별이 박혀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을 받아 시커먼 덩어리가 바다를 뚫고 올라와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양쪽으로
불쑥 솟아올라 있는 모양이,
아마
육지는 아니고 큰 섬인 것 같았다.
살동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가 다시 배의 가장자리를 잡고 몸의 중심을 잡았다.
기운이
없어 어지럼이 일었다.
“살동이,
저기
얼마면 도착하겠는가?”
그가
만석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려는데 입안이 바싹 말라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따,
저기
쩌 섬 말이여.”
만석이
답답하다는 듯이 재촉을 했다.
“으응,
어디
보드라고.
지금같이
흐르면 한 식경이면 도착하겠는디!”
“근디,
쩌가
어디더냐?
조선
땅 맞냐?”
“아따,
그걸
우째 알것냐.
도착해
보믄 알겄지.
얼릉
물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겄구먼.”
‘이제
살았다.’
살동은
다른 두 동무의 얼굴에서 조금씩 화색이 도는 것을 보았다.
갈증으로
입은 바싹 말라 있고 혀는 백태가 눈곱처럼 껴 있어 말을 하기 어려운데도 다들 말수가 많아졌다.
시커먼
덩어리로 보이는 섬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만석이
일어나 노를 잡았다.
“어이차,
어이차!”
만석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의 탈진되어 이젠 죽었다고 생각 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남아 있었던지 스스로도 놀랐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빨리 상륙하고 싶은 마음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노를 저었다.
배가
모래톱에 닿을 무렵 멀리서 해가 떠올라 주변이 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모래톱
안쪽으로 산비탈이 있었고,
경사를
고른 땅에 갈대로 덮은 집 몇 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주
자그만 해안 마을이었다.
“아따,
여그
왜나란가 보네잉.”
“긍게
말이여.
쩌그
집들이 조선집하고 모양이 달라뿌네.”
“워메,
그럼.
클나부렀네.
왜말도
모르고잉.”
“해가
왼쪽에서 올라오고 우리가 위쪽에서 흘러왔응께,
여근
아래쪽이고….
맞아야.
대마도
해류를 탄 게 맞구먼.
그럼,
여긴
왜나라가 틀림없어야.”
살동은
해류에 밀려 일본 땅에 표착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왜나라든
뭐든 아따,
한
번 죽지 두 번 죽겄냐.
일단
물이라도 좀 얻어먹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