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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작(鮑作)>

 

살동은 전복잡이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전복잡이나 해물을 따는 사내들을 한자로 포작(鮑作)이라 썼다.

진서(眞書-한자의 의미) 모르는 상민들은 포작의 의미는 접어둔 , 한자 발음 뒤에 사람 지칭하는 붙여 보자기라 지칭하였다. 표현에는 매우 천한 것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보자기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의 대상으로 각인돼 있었다.

 

보자기들은 말이여. 막장 인생 사는 것이랑께.”

그러지. 쩌놈들은 말이다. 먹을 떨어지면 짓을 르는 개망나니들이랑께. 상종을 하는 것이 상책이랑께.”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포작 일이었다. 당시 생활이 아주 곤궁한 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없이 선택하는 비천한 직업이 백정이었는데, 그들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포작이었다. 백정이야 짐승을 도륙하고 피를 보는 일이니 하는 일이 잔인하다 해서 천대를 받았지만, 포작들은 목숨 걸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임금과 양반들이 즐겨 찾는 좋고 좋은 전복을 바쳤는데도 천대를 받았다.

그렇다고 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천대는 천대대로 받고, 목숨을 걸어도 대가는 별로 없는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직업이었다. 이른바 천예와 다름없는 신세였다.

 

네미 붙을 놈의 세상.”

 

죽도록 고생해도 고단한 삶이 계속되자, 포작들은 이렇게 세상을 원망했다. 해안가에서 빈민으로 태어나 가진 없는 이들은 갈고리 하나만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했다.

하늘에 해가 보이는 날이면 포작들은 벌겋게 녹이 쇠갈고리 하나를 들고, 매일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암초에 납작 붙어 있는 전복이나 해삼 등의 해물을 따내는 그들의 눈동자는 항상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염기가 많은 짜디짠 바다 속에서 혈안이 되어 맨눈으로 해물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워메 자네 눈이 썩은 동태 눈깔이 되어뿌렀네 .”

아따, 사돈 말하고 자빠졌구마. 눈이 썩은 동태면 자네 눈깔은 소곰에 쩌려진 밴댕이 눈깔이여.”

 

시뻘건 눈을 포작인(鮑作人)들은 직업상 주로 남해안과 제주에 많이 살았다. 그쪽에 섬이나 암초가 많기 때문이었다. 해녀들이 주로 연안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비해 포작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일이 많았다. 씨알이 전복을 잡아 좋은 값을 받기 위해서는 연안에 서식하는 것들보다 수심이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굵직한 것을 노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위험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바다의 무인도나 암초를 찾아 나섰다. 운이 좋아 해산물이 잔뜩 붙어 있는 암초를 찾는 날은 그들에게 횡재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뭄에 나듯 했다는 말이 알맞았다

 

워메, 오늘은 해삼하고 멍게뿐이 없구만!”

이게 일이랑가? 여긴 다음 잡을려고 지난번에 부러 손도 대고 놔둔 곳인디. 웜메, 전복은커녕 전복 새끼, 손자도 보였부네.”

우리 말고 놈들이 와서 훑어버린 틀림없당게. 어째사쓰 . 쩌번에 왔을 , 딸라다가 쪼깨 키워 따자는 말에 놔뚜고 갔뜨만은, 엄한 놈이 와서 쌔베부렸구마잉.”

웜메, 지미 씨벌. 한나절이나 걸려 여까지 왔는디, 참말로 성질 나부네.”

어뜬 놈들이 그래쓰까잉? 참말로 썩어 뭉댈 것들이구마잉.”

아따, 바다 괴기가 따로 임자가 있당가? 먼저 먹는 놈이 임자 .”

웜메, 공자, 맹자, 군자 나버렀네! 옘병 동무란 놈이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터져 죽겄는디, 거그다 염장 즐르는구먼. “

그려, 암만 임자가 없다 해도 구역이랑 있는 게지. 참으로 똥물에 튀켜 죽일 놈들이구먼.”

아따, 긍께 보자기 소리를 들으며 땅사람들에게 손꾸락질 받는 아니랑가.”

엥이, 씨부럴 놈들. 전복 파다가 손꾸락이나 뿌라쳐 부러라.”

 

마른 전복은 임금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커다란 전복을 , 해풍에 말려 어물전에 가져가면 그런대로 높은 값을 받을 있었다. 그런고로 자연스레 포작인 사이에서도 새끼 전복은키워서 딴다.’ 암묵의 약속이 있었던 것이었다.

 

새끼 전복은 되도록이면 채취하지 말고 크도록 내버려둬야 씨가 마르질 않는 거여. 새끼에 눈이 멀었다간 같이 죽는 거여.”

 

그런데 자신 밖에 모르는 소갈머리 좁은 포작들이 새끼고 뭐고 닥치는 대로 해산물을 훑어갔다. 그런 통에 바다의 불문율이 무너지곤 했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은 다른 포작들의 손때가 암초를 찾아 더욱 멀리 나가야만했다. 하나 달린 작은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는 일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쩐당가?”

긍께 말이여.”

 

달리 방도가 없는 포작들은 오직 먹고살기 위해 외돛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나 불귀의 객이 포작들도 많았다. 포작들에게 바다는 잔잔할 때야 어머니의 양수같이 포근했지만, 조금이라도 하늘이 꾸무럭거리고 바람이 일면 걷잡을 없이 표변하는 폭군이었다.

포작들도 자신들의 생활터전인 바다가 손바닥 뒤집듯 변덕이 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때만 되면 용왕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재물을 바치고 만신을 불러 굿판을 벌였다.

정성이 부족했는지, 바다의 욕심이 컸는지 아무튼 바다는 자주 으르렁대며 화를 냈고, 그때마다 많은 포작들이 맥없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워메, 놈의 바다가 저리도 변덕이 심한가 모르겠구먼.”

그려. 변덕이 영락없이 팥죽 끓듯 했버려싸니, . 암튼 조심하더라고.”

 

바다의 변덕스러움을 아는 그들은 물질을 하다가도, 구름의 움직임이 조금만 이상하거나, 바람이 불어 파랑이 일기 시작하면, 잽싸게 가까운 섬이나 육지로 배를 몰아 몸을 피했다.

그런데 이틀 사이에 바다가 잠잠해지면 다행이지만, 바다는 어떨 사나흘 이상을 요동치며 심술을 부리는 때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포작들은 섬에서 오도 가도 못하거나 육지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옴짝달싹 못하는 그들은 날개 떨어진 꼴이었다. 그들은 떨어져 가는 식량 자루와 하늘만을 쳐다보며 하릴없이 버텨야 했다. 그러 하루살이 같은 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여유가 있을 만무하 였고, 지니고 있던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으니 뭍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그들은 배를 곯는 일이 많았다.

 

사흘 굶어 남의 담장을 넘는 군자 없다.’ 속담처럼, 식량이 떨어진 이들은 가끔 도둑이나 강도로 변했다. 처음에는 배가 고파 단순히 식량을 노렸지만, 견물생심이라고 나중에는 좋고 값나가는 물건도 훔쳤다.

심지어 아녀자를 납치해, 겁탈하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섬이나 해안가 사람들은 이들 포작인들을 해귀(海鬼) 부르며 치를 떨었다. 평소에는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약탈이 시작되면 이들은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남해안의 포작들의 해악이 심해 백성들의 피해가 막심하옵니. 이들을 다스릴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지방관으로부터 이들의 해악이 심하다는 상소가 그치지 않아, 조정에서도 이들 포작들의 패악을 알게 되었다.

 

고을의 수장에게 명령하여 포작들은 관에 등록하도록 하라. 수령들은 포작들이 들고 나는 것과 움직임을 철저히 파악하여 관리하도록 하라.”

 

조정은 중신회의를 거쳐 도서 지방을 관리하는 수장들에게 별도의 어명을 내릴 정도로 포작들의 폐해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였다.

특히 일년 태풍이 잦은 늦여름에서 가을에 이들의 약탈 행위는 기승을 부렸다. 가뜩이나 미운털이 박혀 있는 포작들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싸잡아 냉대를 받았다.

 

보자기 놈들과는 일체 상종 하는 것이 상수여.”

그려, 똥이 무서워 피하는 , 더러워서 피하제. 하여간 그놈들은 근본을 모르는 작자들잉께, 상대를 하는 좋은 일이구먼.”

 

보자기라는 명칭 자체가 조롱과 경멸, 그리고 경계의 대상이었으니, 포작일을 하는 총각에게는 나이가 차도 시집 처녀가 없었다.

혼기가 딸을 두고 있는 포작도 같은 포작에게는 딸을 주지 않으려 했으니, 천대와 괄시가 얼마나 심한 있었다. 막말로 개 돼지와 하등 다를 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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